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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제2의 아이러브스쿨 '밴드' 열풍

밴드 이용자들을 연령대별로 묶어봤다. 왼쪽부터 30대, 20대, 10대, 40대 순서다. 30대와 20대 이용자들은 밴드로 취미나 학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10대는 서울 당곡고 1학년 방송반 30기 학생들. 이들은 밴드를 통해 30년 선배인 1기들과 대화한다. 40대는 중학교 동창들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교회 지인들을 빼곤 만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친구 초대로 우연히 ‘밴드’에 가입했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특히 밴드에 가입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전국 각지의 밴드 친구들이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와서 빈소를 지켜줬어요. 얼마나 고맙던지…. 어린 시절 친구들이 역시 좋구나 했지요.”

졸업앨범 꺼내 보듯 스마트폰으로 친구끼리 시간여행
"사생활 보장 안 되는 페이스북·트위터에 많이 지쳐"



 박종란(42·경기도 부천시)씨는 충북 단양 영춘중 24회 졸업생들의 모임인 ‘뭉치자 친구들’ 밴드에 가입하고 삶이 다채로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밴드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고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맘에 맞는 친구들과 ‘번개’ 모임도 한다. 옛날 추억을 되살리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모임은 새벽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처음 봤을 땐 다들 못 알아봤죠. 어렸을 땐 비쩍 말랐던 녀석이 후덕한 몸매로 나타나기도 하고, 촌스러운 이름의 친구가 세련된 이름으로 개명한 경우도 있고. 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어렸을 때 얼굴이 보여요.”





 #방송통신위원회 최영해(51)씨는 2014년 새해 첫 아침을 밴드 친구들과 함께했다. 지인인 울릉도기지 전투대장이 찍어 올린 동해 일출 사진을 서울대 영문과 82학번 동기 밴드에 올렸다. 때마침 아차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있던 과 동기는 이 사진을 보고 “어, 나도 일출 보고 있는데”라며 즉석에서 해 뜨는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렸다. 덕분에 친구들은 울릉도와 아차산의 새해 첫 일출을 동시에 공유했다. 증권사 임원으로 동기회장을 맡고 있는 이창화씨는 “밴드는 동기끼리 즉각 소식을 전할 수 있어 좋다. 급한 건 문자로 알리지만 웬만한 건 밴드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입한 밴드는 고교·대학·회사 친구 등 모두 7개. 각 밴드에 매일 올라오는 소식을 확인하는 건 그의 주요 일과다. 이씨는 “사진을 공유하고, 채팅도 하고…. 밴드는 평소 자주 만날 수 없는 친구들의 사교장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밴드’가 붐이다. 어느새 2300만 명 이상이 내려받아 사용 중이다. 현재 개별 밴드는 750만 개를 넘어섰고, 지난달 사용자들의 이용시간은 총 20억 분을 돌파했다. ‘제2의 아이러브스쿨’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아이러브스쿨은 1999년 등장한 동창 찾기 인터넷 사이트. 밴드는 네이버가 만든 모바일 기반의 모임 전용 애플리케이션이다.



 2012년 8월 처음 등장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가던 밴드는 지난해 초·중·고 동창 찾기 기능을 더하면서 폭발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출신 학교와 졸업연도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같은 학교 동창들이 개설한 밴드에 가입된다.



 “지난 연말 고교 동창회엔 참석 인원이 두 배로 늘었어요. 원래 20명 남짓 모이곤 했는데 그동안 나오지 않던 친구들까지 해서 40명 넘게 모인 거에요. 밴드 덕분에 동창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친구들까지 참석한 거죠.” 서울 언남고 2회 졸업생 밴드에 가입한 양영민(42·서울 서초동)씨는 대학교와 초등학교 밴드에도 가입해 있다. 초등학교 밴드는 모두 3개다. 두 번 전학해서 다녔던 초등학교가 세 개나 된다. “가끔 기억 안 나는 친구들은 앨범을 보면서 기억을 복원해요.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형사들, 수배자 정보 교류 수단 활용



 밴드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건 편리함 때문이다.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의 단점을 개선했다. 우선 용량이 큰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릴 수 있다.



또 채팅방에 올린 사진을 일일이 따로 내려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없앴다. 사진첩 기능이 있어 사진들을 따로 모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화를 위한 채팅방 외에 공지사항을 위한 게시판을 별도로 둔 것도 호평을 받고 있다. 중요한 공지사항이 대화창에서 흘러가 버리는 일이 없어진 것이다.



 폐쇄성은 밴드의 또 다른 강점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개방형 SNS는 모르는 사람에게 내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밴드는 정해진 사람들만 이용하기 때문에 그럴 우려가 적다. 회사원 문예리(27)씨는 입사 전 시절과 달리 페이스북이 불편해졌다.



 “회사 동료·상사를 비롯해 거래처 등 일로 얽힌 사람들이 친구 신청을 하는데 수락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다양한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가 됐고, 그 모든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글을 올리다 보니 글의 내용이 상당히 한정되더군요. 요즘엔 페북보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끼리 하는 밴드에서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솔직하게 나누고 있어요.”



 일 때문에 만났지만 일을 넘어 진짜 친구가 된 방송 PD 김하나(29)씨와 음악감독 조해인(32)씨도 페이스북을 떠나 둘만의 밴드를 만들었다. 한 케이블방송의 날씨 프로그램 제작 때문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감성이 잘 통한다는 걸 알고 이를 공유할 공간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시, 영상 등을 올리고 대화를 나누며 힘을 얻는다. “일 때문에 페북을 안 할 수는 없죠. 하지만 페북이나 트위터에 올린 정보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공개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일과 관련된 것 외엔 안 올려요.”



 이 같은 폐쇄성 덕분에 가족 밴드나 커플 밴드도 활발하다. 가천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손태희(21)씨는 군대 간 남자친구와 밴드를 통해 일상을 공유한다. 손씨는 자신의 하루하루 기록이나 둘이서 함께했던 추억을 담은 사진과 글을 밴드에 모아 언제든 볼 수 있게 한다. “남자친구가 군인이라서 주말에만 PC로 밴드를 해요. 페이스북은 너무 많은 사람이 보니까 싫은데, 밴드는 우리 둘만 볼 수 있어 안심이 돼요. 둘만의 추억을 날짜별·행사별로 모아놓고 있어요.”



 서울 방배동에서 초등학생 대상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이세라(28)씨의 밴드는 3개다. 미술학원 밴드, 가족 밴드, 애견 밴드다. 미술학원 밴드는 학원생의 부모들에게 자녀들의 작품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만들었고, 가족 밴드는 가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공유하는 곳이다. 애견 밴드는 자신이 키우는 강아지에 대한 밴드다. “사랑하는 강아지의 성장기를 남기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심지어 경찰도 밴드를 쓴다. 한 경찰서 관계자는 “밴드는 보안이 좋다. 검색으로 걸리지 않고 전에 쓴 글을 개별적으로 삭제할 수도 있어 편하다. 수배자들을 잡기 위한 정보교류도 동료들과 밴드에서 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엠브레인의 윤덕환 콘텐츠사업부장은 ‘불특정 다수와 통제 불가능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불안감이 신뢰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회귀로 이어진 현상’으로 밴드 열풍을 해석했다. “휴대전화, TV, 가전제품 등 주변의 모든 물건이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사람들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과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밴드는 분명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프라인 관계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통로라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PC통신 ‘나우누리’ 창립멤버로 iMBC 미디어센터장 등을 지낸 임문영 IT 컨설턴트는 밴드 열풍의 또 다른 이유로 중장년층에게까지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대용량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LTE 서비스가 구축된 모바일 환경을 꼽았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PC 통신이 90년대 말 다음 카페에 대표 온라인 커뮤니티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은 인터넷의 등장 때문이었다.



싸이월드 전성기는 휴대전화에 카메라가 장착되고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와 일치한다. 싸이월드는 사진을 올릴 수 있는 미니홈피로 한때 큰 인기를 얻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등장은 스마트폰이 국내에 보급된 2009년 이후다. 임 컨설턴트는 “1999년의 아이러브스쿨이 최초의 인터넷 기반 동창 찾기 서비스였다면, 2014년의 밴드는 최초의 모바일 기반 동창 찾기 서비스”라고 말했다.





‘응답하라 1994’ 복고 열풍과 닮은 꼴



밴드로 동창을 찾은 친구들은 오프라인에서의 만남도 이어간다. 위로부터 언남고 2회, 한양초 14회, 영춘중 24회 졸업생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개방성과 폐쇄성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측면에서 밴드의 인기를 해석하기도 한다. 신동희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PC통신이 폐쇄적인 커뮤니티였다면 다음 카페 등 인터넷 기반 커뮤니티는 그에 비해 훨씬 강하게 개방성을 표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다 유대감을 강조하며 ‘일촌’을 내세운 싸이월드가 등장했고, 같은 사람들과 노는 것이 지루해진 사람들이 다시 개방형 서비스인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떠나갔다는 것이다. “밴드 같은 폐쇄형 커뮤니티가 뜨는 것은 개방형 서비스에 대한 반작용”이라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너무 오래돼 처음의 신선함이 사라지고 서비스가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동창모임으로 급격히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밴드의 인기는 얼마나 더 지속·확산될까.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불러일으킨 복고 열풍이 잦아들 때쯤 밴드의 동창 찾기도 끝나게 될까.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동창 찾기 기능은 금세 지루해지지만 자신의 업적을 어느 정도 이룬 중장년층들은 향수에 젖어 있기 때문에 동창들을 만나는 것이 상쾌하고 신선한 경험이며 중독처럼 빠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창회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한두 번 만나고 흐지부지되거나 순수하지 않은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동창들 때문에 반가웠던 감정이 희석될 수도 있다. 예전 아이러브스쿨이 그랬던 것처럼 불륜 같은 부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2001년 아이러브스쿨 기술이사를 지냈던 고진석 ‘스터디코드’ 이사는 “당시 아이러브스쿨의 별명이 바로 불륜조장 사이트였다”며 “집 나간 아내를 찾아내라, 고소하겠다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곤 했다”고 회상했다. 1999년 창립된 아이러브스쿨은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했지만 대주주가 여러 번 바뀌는 등 경영상 혼란을 겪으며 2년여 만에 후발주자인 다모임·프리챌에 커뮤니티 최강자의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고 이사는 “당시 아이러브스쿨 운영자들은 대부분 아마추어였고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성공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밴드의 경우 갑작스러운 성공이라기보다는 카톡·페이스북·트위터 등 앞선 서비스들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로 나온 서비스이기 때문에 아이러브스쿨의 전철을 밟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밴드 동창회 이용자들 스스로도 불륜 같은 부작용에 대한 경계심이 있다. 특히 중장년층 이용자들의 경우 젊은 시절 아이러브스쿨에서 동창을 만났던 경험을 갖고 있다. 20~30대 젊은 시절 ‘아이러브스쿨’ 덕분에 몇 번 만났다가 헤어졌던 동창들을 밴드 덕분에 최근 다시 만나게 된 경우가 많다. 영춘중 24회 동창회 밴드 운영자 허은주(42·경기도 안성)씨는 “그런 부작용이 생길 경우 동창회는 지속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동창회의 이상용씨는 “밴드는 뻑뻑한 일상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그런 즐거움을 지속하기 위해선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덧붙였다.



글=박혜민·구혜진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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