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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23) 화가 이현선의 경기도 양평 수능리 '단고재'

화가 이현선의 경기도 양평 수능리 집에선 부엌이 중심이다. 5개의 벽면으로 창문이 뚫린 큼직한 부엌에 이현선이 앉아 있다.




팔각형 지붕 아래 널따란 부엌, 주인과 객 구분 없는 열린공간

북한강을 따라가는 길은 수시로 변한다. 시간대에 따라 물빛이 달라지고 동행에 따라 주목하는 풍경도 달라진다. 내비게이션이 일반화된 후 드라이브의 감각도 전연 달라졌다. 안심을 얻은 대신 호기심을 잃었달까. 운전도 목적 지향적이 되고 만다. 우린 늘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둘 다 가지는 건 우주법칙에 위배되니까!



1 연못에서 올려다본 집의 전경. 팔각지붕 아래가 부엌이다. 2 거실 쪽 벽난로. 집 짓는 이가 벽난로 전문가라 연기 한 점 새지 않게 만들었다. 3 부엌 벽난로 앞에 이현선이 앉아 요가를 하고 있다. 4 별채에 있는 화실은 자그마한 다실과 이어진다. 사람과 어울릴 때도 즐겁지만 혼자 그림을 그릴 때 이현선은 행복하다. 5 장독대 바닥에 조약돌로 새긴 그림. 화가 이현선의 작품이라는 ‘사인’이다.
그런 얘기를 하며 양수리 지나 문호리 지나 수능리로 가는 옛길을 달려간다. 수능리엔 특별한 집 단고재가 있다. 단(丹)은 붉음이고, 고(古), 이 집은 옛 고(古) 곁에 사람인(人) 하나를 더 넣은 글자를 쓴다)는 오래됨이다. 그래서 단고는 깊이 있고 가라앉은 단청의 붉음이니, 집주인인 화가 이현선은 ‘단고’의 기질을 가졌다.



부부가 함께 살 때 집짓기는 대개가 남편 몫이다. 그런데 이 집은 달랐다. 집 지을 땅을 사는 것도 설계도 시공도 온통 아내가 도맡았다.



“당신이 나보다 미적 감각이 나아?” “아니.” “당신이 나보다 공간구성력이 뛰어나?” “아니.” “당신이 나보다 집의 쓸모에 밝아?” “ 아니.” 순하고 신중하고 합리적인 남편은 아내의 세 가지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한 후 집에 관한 전권을 아내에게 위임했다. 그때부터 이현선은 신명이 났다. 자신이 원하는 집을 겁 없이 짓기 시작했다. 스케치북 여러 권에 공간에 관한 꿈을 뜨겁게 펼쳐 나갔다.



따로 눈치 볼 ‘클라이언트’가 없다는 점, 공사기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 돈에도 그다지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점 등이 그녀를 자유롭게 했다.



이 집의 제일 두드러진 특징은 부엌에 있다. 집의 중심이 부엌이고, 가장 크고 가장 밝고 가장 높은 공간이 부엌이다. 무엇보다 부엌 안에 벽난로가 활활 탄다. 부엌에 실제로 불이 이글이글 탄다는 것은 열을 낸다는 것과 음식을 끓이는 것과는 별개의 의미가 있다. 이를테면 신성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마고할미나 조왕신이 부엌 한가운데 턱 버티고 있듯 공간에 힘이 실린다.



동·서·남으로 난 부엌창이 포인트



밖에서 볼 때 단고재는 팔각정 같은 기와지붕을 얹고 있다. 그 높은 지붕 아래가 바로 부엌이다. 팔각형 실내 중 5각은 창이고, 1각은 냉장고, 1각은 거실로 통하는 뚫린 문, 나머지 1각은 벽난로다.



부엌의 다섯 각이 창이란 건 동·서·남 세 방향이 바깥으로 트여 있다는 뜻이다.



창은 서는 위치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공간이 너르니 4인용 식탁 둘을 이어 붙였다. 열둬 명이 너끈히 앉아 함께 바깥을 내다볼 수 있다. 이 집 정원엔 ‘경당원’이란 이름이 따로 붙어있다. 뜰에 공을 들인 건 말할 것도 없다. 처음 터를 살 때부터 늙은 벚나무 수십 그루가 자라는 땅이었고 새로 100그루 넘는 나무를 심었다.



집 지을 땅만 남기고 원래 있던 나무들은 전부 그대로 살렸다. 거실 앞쪽에 있는 늙은 뽕나무 한 그루는 차마 베어낼 수 없어 베란다에 구멍을 뚫어 살렸다. 백 살은 넘겼을 듯한 나무로, 봄이면 가지가 찢어지게 오디가 열리는 놈이었다. 집에 바짝 다가온 오디나무는 그늘과 푸름뿐 아니라 이 집과 이웃이 일 년 내내 먹을 뽕잎차와 오디 엑기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음전하게 잎을 떨구고 선 뽕나무를 내다보며 그 나무가 지난해 길러낸 자줏빛 오디차를 마셨다.



“오디가 익는 철엔 이쪽 가지와 저쪽 베란다 천장 아래로 커다란 망사 천을 걸어놔요. 아침마다 달콤한 오디들이 저절로 묵직하게 떨어져 내려요. 그걸 커다란 그릇에 주르륵 쏟아붓기만 하면 끝이죠.”



이현선은 자기 집에 사람이 오는 것을 대환영한다. 그래서 부엌은 커다랄 필요가 절실했다. 이 부엌에 앉은 사람은 누구든 주인이다. 식탁에 앉았다 말고 문득 싱크대 앞으로 다가와 그릇을 설거지하고 솥에 국을 안친다. 부엌을 키운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럿이 한 솥에 지은 밥과 국을 퍼 먹으며 얘기하고 웃는 것, 주인과 객의 구분이 따로 없는 것, 서로의 눈빛을 들여다보며 행복해지는 것!



하긴 삶의 목적을 요약하면 바로 그것 아니랴. 돈도 명예도 이데올로기도 부질없다. 눈앞에 오디가 수북이 떨어지는 축복이나 바람결에 솔 향기가 자욱이 날아드는 기쁨을 외면하고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목을 매고 산다는 것인가.



“이 앞으로 길이 나기 전에는 여기가 ‘숭악한’ 오지였어요. 원시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었죠. 마을 이름이 샘말이었고 이름 그대로 물이 많은 땅이었죠. 질퍽질퍽해서 농사가 되지 않으니까 땅값도 아주 싸더라고요. 내가 누굽니까. 미래예측력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몸 아닙니까. 웅덩이를 싸게 샀지요. 그곳을 깊이 파서 저렇게 연못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주변 땅이 다 보송보송해지더라고요.”



마당 연못 한가운데엔 작은 동산도



전체 땅은 3300㎡(1000평). 그중 연못이 660㎡(200평)이다. 거기서 오리도 놀고 각종 연도 자란다. 못 가운데 조그만 동산을 만들어 어린 솔도 심었다. 내년엔 자그만 섬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다리도 하나 걸쳐놓을 예정이다.



“도대체 이런 땅은 언제 얼마를 주고 산 겁니까?” 웬만한 탐욕 따위 거의 내던져 버렸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대는 나지만, 이런 사람을 만나면 부글거리는 질투심을 누를 길 없다. “2005년요. 밭은 3.3㎡(1평)에 40만원, 대지는 한 60만원 줬어요. 근데 길이 생기고 집이 늘어나고 하면서 요새는 그런 값으로는 어림없을 걸요.”



단고재는 딸 둘을 키워 독립시킨 장년의 부부가 은퇴 후의 삶을 새롭게 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도시적 삶 대신 자연 속에 녹아든 공간을 꿈꿨다. 원래는 여기보다 서울이 한발 가까운 문호리에 집을 지었으나 시행착오가 있었다. 부엌을 숨겨둬 주부가 소외되는 구조였다. “나중엔 너른 거실을 비워두고 다들 부엌으로 몰려들더라고요.” 다시 집을 지으면 부엌을 중심에 놓기로 다짐했고 기어이 이뤘다. 물론 이 집에 부엌만 있는 건 아니다. 밝은 침실도 있고 북쪽 어둑한 서재도 있다. 뜰엔 화실과 다실이 나란히 놓여있기도 하다. 다실의 굴뚝과 장독대의 바닥은 이현선의 또 다른 작품이다. “보세요. 여기 조약돌로 사인을 해둔 거! 집 앞에 건 현판도 사실은 제 사인이에요. 집이 제 작품이거든요. 꽃필 때, 낙화할 때, 단풍들 때, 잎 질 때, 눈 내릴 때, 날마다 철마다 내다보는 풍경이 달라져요. 사진 보실래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니깐요.” 노트북을 꺼내 단고재의 사계를 술술 넘기는데 일행들은 사진마다 탄성을 질러댔다.



날이 저물자 눈앞에 또렷하게 상현달이 걸린다. 포도알 같은 샛별도 떠오른다. 맞다! 집이 작품이다. 지금 몸담고 사는 공간 말고 다른 먼 곳에서 예술을 논하는 건 말짱 헛짓인지도 모르겠다.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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