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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알프스, 지중해, 중세의 향기 … 유럽의 알맹이가 모인 땅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의 보물이다. 눈 덮인 줄리안 알프스 자락과 사진 왼쪽의 절벽 위에 우뚝 서 있는 블레드 성, 교회와 우아한 저택 등이 어우러진 풍경이 말 그대로 그림 같다.


슬로베니아(Slovenia)는 낯설다.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본 것 같기도 하지만, 지도에만 존재하는 나라처럼 멀게 느껴진다. 이 나라를 가게 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모를 흥분이 느껴졌다.

'미니어처 유럽'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Ljubljana)는 슬로베니아의 관문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표를 발권하는 직원이 “류블라자냐까지 가시는 거죠?”라고 물었다. 발음이 틀렸다. 항공사 직원도 잘못 발음하는 도시라니. 비행기 안에서 영어로 적힌 가이드북을 들추고 덮기를 반복했다. 설렘·걱정·기대 등 여러 감정에 휩싸여 제대로 잠을 못 잤다. 그렇게 약간은 몽롱한 상태로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공항만 봐도 이 나라가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었다. 류블랴나 국제공항은 제주공항보다도 훨씬 작았다. 슬로베니아 면적은 2만273㎢로 우리의 전라도만 하다. 북쪽에 오스트리아, 서쪽에 이탈리아, 남동쪽으로 크로아티아, 북동쪽으로 헝가리와 접해 있고 약 200만 명이 살고 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 눈 덮인 뾰족 산이 가장 먼저 보였다. 슬로베니아는 국토의 60%가 산지다. 그리고 그 산은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 자락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침엽수가 빽빽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찬 기운이 폐 깊숙한 곳까지 밀려들었다. 낯선 언어로 떠드는 사람들 틈에 섞였다. 완벽한 고립감. 낯선 분위기가 주는 묘한 느낌에 금세 빠져들었다.



슬로베니아 역사를 알자면 이 땅을 지배했던 민족을 보면 된다. 6세기까지는 로마가 주인이었고, 로마가 물러간 뒤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슬라브족이 자리를 잡았다. 슬라브족은 200년 동안 통치하다가 게르만족에게 점령당했고, 이탈리아·오스트리아도 이 땅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슬로베니아는 1991년 독립한 신생 국가다. 독립 직전에는 유고슬라비아였다. 6개 연방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에서 슬로베니아는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자신이 쌓은 부(富)를 다른 연방국가에 평등하게 배분해야 하는 공산주의 체제에 슬로베니아는 반기를 들었다. 국민투표를 거쳐 독립을 결정했고 중앙정부에 맞서 열흘간 전쟁을 치러 독립을 쟁취했다.



슬로베니아를 한마디로 말하면 ‘미니어처 유럽’이다. 게르만·라틴·슬라브 문화가 만나는 꼭짓점 자리에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변 민족의 영향을 받으며 지금까지 왔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수없이 시달렸지만, 고유의 문화와 언어는 잃지 않았다.



동부 유럽은 최근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는 지역이다. 해외여행 업계는 체코·헝가리에 이어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가 다음 주자라고 입을 모은다. 알프스와 지중해의 자연이 있고, 중세의 흔적이 여전한 예쁜 도시가 있는 나라 슬로베니아를 소개한다.



도시는 포근하고 자연은 경이롭고…

알프스 동쪽 끝 작은 유럽, 슬로베니아




슬로베니아는 한국에서 낯선 여행지다. 해서 욕심을 부렸다. 5박7일 동안 둘러본 모든 여행지를 전부 다 소개하려고 애를 썼다. 사실, 뭐 하나 빼놓을 수도 없었다. 빨간 지붕으로 뒤덮인 중세 도시의 포근함, 줄리안 알프스 지역의 아름다운 자연, 포스토이나(Postojna) 석회동굴의 경이로움, 휴양 도시 피란(Piran)이 품은 아드리아해까지 하나하나가 보석 같았다.



1 프투이는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담한 도시다. 집이 놓인 방향, 구조는 전부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빨간 지붕을 얹고 있다.


중세 풍경 화석처럼 간직한 프투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역시 수도 류블랴나(Ljubljana)다. 마리보르(Maribor)와 프투이(Ptuj)도 많이 찾는다. 슬로베니아 가운데 있는 류블라냐에서 어느 쪽 국경을 가든 자동차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구석구석에 박힌 도시를 여행하는 데 용이하다.



류블랴나와 마리보르가 현대와 과거가 잘 어우러진 모습이라면, 중세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프투이는 화석 같은 도시다. 이들 도시를 가장 잘 구경하는 방법은 두 발로 걷는 것이다.



수도 류블랴나는 로마시대부터 이 지역의 중심도시 역할을 했다. 16세기에 지은 류블랴나 성은 도시의 상징이자 구시가지의 중심이다. 구시가지를 둘러보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두 사람이 지나기에 좁다 싶은 골목길은 모두 500~600년 전에 사용했던 것 그대로다. 물고기를 운반하던 골목, 화형식과 공개처형이 진행됐던 광장 등 도시 역사를 보여주는 구시가지는 항상 관광객으로 넘친다.



이튿날에는 류블라냐 북동쪽에 있는 마리보르와 프투이에 갔다. 중세시대부터 서로 경쟁하며 성장한 이 두 도시의 운명을 가른 건, 기차였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에서 슬로베니아로 들어오는 철도가 나면서 마리보르는 슬로베니아 제2의 도시로 성장한 반면에 프투이는 뒤처졌다.



마리보르 중심부 드라바(Drava) 강변의 17세기 건물은 늘 사람이 붐비는 명소다. 저택이 아니라 건물 벽에 서 있는 포도나무를 보기 위해서인데 이 포도나무의 수령이 450년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이 할머니 포도나무에서 지금도 1년에 약 45㎏의 포도를 수확한다. 와인 맛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 “역겨워(Disgusting)!”였다. 일반인은 마셔볼 기회조차 없다. 여왕이나 대통령 정도는 돼야 가능하단다.



프투이는 박제된 도시 같았다.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를 연결해주는 다리를 건너자 500년 전으로 돌아갔다. 흔히 떠올리는 동유럽 풍경 그 자체였다. 유유히 흐르는 드라바강 건너편으로 빨간 지붕 얹은 집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고, 커다란 종이 달린 교회 첨탑과 시계탑이 넓은 광장에 우뚝 서 있었다. 이 사진엽서 같은 풍경을 내려다보는 지점도 사진엽서에서나 봤던 고성(古城)이었다.



2 포스토이나에 있는 프레드야마 성은 높이 123m의 절벽 중간에 지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줄리안 알프스의 보물 블레드·보힌



여행 사흘째는 슬로베니아의 자연을 만끽했다. 슬로베니아 서북쪽으로 알프스 자락인 줄리안 알프스(Julian Alps)가 뻗쳐 있는데, 이 웅장한 산자락에 작은 도시 블레드(Bled)와 보힌(Bohinj)이 있다.



생강 쿠키로 유명한 라도블리차(Radovljica)를 거쳐 블레드로 향했다. 슬로베니아 최고의 휴양지답게 블레드 호수 주변에 고급 별장과 호텔이 가득했다. 벼랑 끝에 서있는 블레드 성의 모습은 지금껏 본 성 중에 단연 최고였다.



빙하가 녹아 형성된 둘레 7㎞의 호수 가운데에 슬로베니아 유일의 섬이라는 블레드 섬이 있었다. 나룻배를 타고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노저어 들어갔다. 호수 선착장에서 불과 500m 거리였지만, 섬으로 들어가는 동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17세기 명화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하얀 돌계단을 오르자 교회가 조금씩 모습을 보였다.



“히틀러가 이 섬에 요새를 지으려고 했어요.”



가이드 미로(47)가 말했다. 이 손톱만 한 섬에 웬 요새? 요새를 짓겠다는 핑계로 이 섬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 아닐까. 블레드 섬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보힌 계곡은 보겔산(Vogel·1535m)을 비롯한 높은 산 사이에 난 계곡으로 길이가 17㎞나 됐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호수인 보힌 호수를 품고 있는데 둘레 12㎞가 넘는 빙하호로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어 블레드 호수보다 낫다는 평도 있다.



3 블레드 옆에 있는 라도블리차는 생강 쿠키로 유명하다. 수많은 언어가 적혀 있는데 한국어도 있었다.
산과 호수로 막힌 보힌 계곡의 풍경은 ‘신이 숨겨놓은 땅’이라는 이름처럼 신비로웠다. 호수 주변으로 겨우 민가 서너 채가 보였고, 드넓은 호수는 전부 청둥오리 차지였다.



보힌의 백미는 해가 진 다음부터였다. 오후 4시가 지나자 석양이 드리웠고 물안개가 마을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오후 5시 보힌 계곡은 완전히 안개에 파묻혔다. 안개는 오전 10시까지 온 마을을 점령했다. 계곡 가장 안쪽의 마을은 하루에 단 20분만 햇볕이 든단다.



아가사 크리스티(1890~1976)도 보힌에 매료당했다고 한다. 그녀는 1967년 남편과 함께 보힌에서 3주 동안 머물렀는데, 그때 한 기자가 “보힌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이 아름다운 마을에 살인자가 있을 리 없다”고 거절했단다.



4 자연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 포스토이나 동굴.

5 블레드 섬은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이다. 자잘한 돌계단을 밟고 올라 동화 속으로 들어간다.
기차 타고 동굴탐험 포스토이나



포스토이나와 피란은 슬로베니아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여행지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200만 년에 걸쳐 형성된 석회동굴로 유럽에서 가장 크다. 동굴은 12㎞ 길이지만 관광객에게 허락된 건 5㎞ 구간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기차로 2㎞를 이동하고 1㎞는 탐방로를 따라 걸었다.



좁고 낮은 동굴을 통과하자 갑자기 뻥 뚫린 세상이 나왔다. 초대형 심해 생물에 통째로 삼켜진 뒤 위 정도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높이 60m가 넘는 커다란 기둥, 바닐라 아이스크림, 늘어진 커튼, 스파게티처럼 얇고 길게 뻗은 것 등등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종유석이 동굴 안에 가득했다.



종유석이 모여 만들어진 산도 있었고 심지어 강도 흘렀다. 1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광장에서는 90년대 초반까지 사교파티도 열렸단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고 미니 농구게임도 벌였다.



동굴탐험을 마치고 12세기에 지은 프레드야마 성으로 갔다. 이 성도 동굴만큼 불가사의했다. 성은 123m 높이의 절벽 중간에 박혀 있고, 입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절벽 속에 들어가 있었다. 쳐들어 가는것도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또 유사시에 산 반대편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까지 갖춘 천혜의 요새였다.



포스토이나가 땅속의 보물이라면 피란은 아드리아해의 빛나는 보석이었다. 피란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영향을 특히 많이 받았는데, 아직도 이 지역은 이탈리아어를 슬로베니아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한다. 슬로베니아에서 피란은 작은 이탈리아로 통한다.



6 슬로베니아 제2의 도시 마리보르의 중앙광장.


가이드 티나(38)는 “피란을 제대로 즐기려면 길을 잃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했다. 지도를 내려놓고 성당에서 시작해 발길 닿는 대로 내려갔다. 베니스 풍으로 지은 저택, 주거지를 비집고 들어선 작은 예배당, 건물과 건물 사이가 2m도 안 되는 좁은 길을 걸었다. 갈림길을 여러 번 지나고 길이 막혀 돌아 나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해안가에 도착했다. 피란에 머무는 이틀 내내 안개가 자욱해 아드리아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피란은 그래도 인상적이었다.



●여행정보=인천공항에서 슬로베니아까지 직항 항공은 없다. 터키항공이 이스탄불을 경유해 류블랴나까지 가는 항공을 매일 운항한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류블랴나 공항까지 모두 21시간 걸린다. 슬로베니아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하다.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2도 정도로 서울과 비슷하다. 유로화를 사용한다. 슬로베니아 관광청 홍보대행사 Geocm 070-4323-2561.



글·사진=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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