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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인 줄 알았다 … 다시 달렸다 … 한 달 뒤가 끝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이규혁은 벌써 여섯 번째 겨울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있다. 4년 전 은퇴를 결심했던 그는 “마지막 올림픽이고, 목표는 메달이다”라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규혁이 2011년 1월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 1000m에서 역주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0년 2월 18일 캐나다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겨울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은 차가운 얼음 위에 풀썩 쓰러졌다. 그는 누운 채 가쁜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올림픽 레이스를 끝내는 게 너무나 아쉽고 힘들었다. 이규혁은 조명이 다 꺼지고 나서야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틀 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안 되는 걸 알면서 도전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메달 획득에 실패한 그는 4년 내내 밴쿠버 대회만 준비했다. 1년 전부터는 한국에서도 밴쿠버 시간에 맞춰 생활했다. 15년 동안 세계 정상권에 있으면서 올림픽과 유독 인연을 맺지 못했던 이규혁에게 올림픽 메달은 너무나 간절했고, 그만큼 어려웠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고 다섯 번째 올림픽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했다. 11년 후배인 모태범이 500m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규혁은 차가운 빙판에서 다시 일어났고, 다시 달렸다. 만 16세이던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던 그는 만 36세 나이에 한국 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여섯 번째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다. 이규혁은 “올림픽 메달을 따내기 위해 소치로 간다”고 말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의 ‘살아 있는 화석’이 된 그를 지난달 29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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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 연속 올림픽에 나가는 심정은.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뛰는 것에 감사하지만 올림픽에 그냥 나가는 게 아니다. 올림픽 메달이 필요하다.”

 -밴쿠버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줄 알았다.

 “어머니가 ‘너무 힘드니까 그만 해라’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이후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20년 가까이 똑같은 스케줄로 살다가 다른 걸 해야 한다는 게 힘들더라. ‘이렇게 우울증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1년 정도 선수 생활을 더 하면서 은퇴를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그 시즌(2011년 1월)에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종합우승을 했다. 그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릴레함메르 시절을 가끔 떠올리나.

 “모든 게 재미있었다. 준비하고 나간 게 아니라 그냥 나갔다(웃음). 지금 어리니까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 편했다. 선수촌에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고, 오락도 하면서 어린 나이에 누릴 수 없는 걸 많이 누렸다. 올림픽 우승자가 참 멋있게 보였다. 언젠가는 저 주인공의 자리에 서야겠다고 다짐했다.”

 -유독 올림픽 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실패 속에서 교훈도 얻었다. 1998년 나가노 대회 때는 어린 나이에 굉장히 기고만장했다. 전년도에 세계신기록도 세웠기 때문이다. 거기서 실패한 뒤 정말 반성을 많이 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선 500·1000m뿐 아니라 1500m에도 출전해 부담이 컸다. 반대로 2006년에는 1000m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3위와 0.05초 차로 4위를 했다. 2010년엔 오랜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내 모든 것의 결정체인 상태로 도전했지만 또 실패했다.”

 -대표팀 코치인 캐나다 출신 케빈 크로켓(40)과는 1998년 나가노 올림픽에서 경쟁한 사이다.

 “나와 경쟁했던 친구가 지금 뚱뚱해지고 머리가 벗겨졌다. 애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신기하다(웃음). 예전에 술도 함께 마시고 재미있게 놀았다. 지금도 같이 장난 잘 친다.”

 -가수 싸이가 지난해 12월 24일 콘서트에서 특별 이벤트를 열어줬다.

 “싸이 형은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다. 많은 팬에게 ‘올림픽 6회 출전하는 국가대표 이규혁’이라고 소개하는데 낯뜨거웠다(웃음). 시간을 투자해 나를 위한 노래까지 불러준 모습에 정말 많이 감동했다. 나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소치 올림픽이 꼭 한 달 남았다.

 “ 이번 올림픽을 마치고 은퇴를 준비할 것이다. 2018년에도 도전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그때는 마흔 살이 넘는다. 올림픽 메달이 목표이고, 더 큰 목표는 내 마지막 올림픽에서 얻을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게 내가 원하는 마지막 올림픽이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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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