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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중천인데 시계는 새벽 … 인도 동부 "표준시 쪼개자"

한여름 오전 4시30분, 인도 뭄바이가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북동쪽으로 수천㎞ 떨어진 아삼 지방은 해가 중천이다. 그런데도 시간은 오전 4시30분이다. 동서 너비가 3200㎞에 이르고 면적이 한반도의 15배나 되지만 인도는 그리니치표준시(GMT)+5:30이라는 하나의 시간대(time zone)를 쓴다. GMT+9를 쓰는 한국보다 3시간30분 늦다.

 최근 타룬 고고이 아삼 주지사는 아삼 표준시를 1시간에서 90분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해가 머리 위에 떴는데도 시각은 한밤중인 불일치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고고이 주지사는 “아삼의 차(茶) 생산을 증진시키고 에너지를 절약할 뿐 아니라 주민들이 더욱 활기차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도의 대표적 차 주산지인 아삼에는 생래적인 ‘가든 타임(농작 시간)’이 있는데, 현재 표준시와 맞지 않아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15배 인도, 단일시간대 분리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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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삼주의 주장을 놓고 찬반이 엇갈린다. 찬성하는 쪽은 미국 같은 영토 대국도 4개의 시간대로 산다는 걸 강조한다. 반대파는 자국 안에서 시간대를 변경하는 불편함을 지적한다. ‘더 힌두’ 같은 신문은 시간대 변경이 대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에너지 절약을 위해선 차라리 인도 전체가 표준시를 30분 앞당기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GMT+6으로 변경할 경우 시간당 20억㎾의 전기 절약 효과가 있다는 2012년 연구도 인용했다.

 인도와 달리 효율을 위해 시간대를 통합한 나라도 있다. 동서 길이 9000㎞에 이르는 러시아는 2010년 3월 그간 사용했던 11시간대의 시차를 9시간대로 줄였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이 “넓은 국토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다. 메드베데프는 5시간대로 줄이길 바랐지만 반대 여론에 부닥쳐 시간대 2개만 없애고 서머타임을 해제하지 않음으로써 각 표준시를 1시간 앞당겼다.

 지금은 몇 만 분의 1초까지 다투는 시대이지만, 농경사회 때만 해도 시간 개념이 엄격하지 않았다. 시간 관리 필요성이 커진 것은 철도가 놓이고 선박 여행이 활발해진 19세기 이후다. 1884년 미국 워싱턴 국제회의에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본초자오선으로 하는 GMT와 세계표준시 개념이 정해졌다. 광활한 영국 제국주의 식민지 관리의 필요성도 반영됐다.

“이웃나라 싫다” 억지로 시차 두기도

 일반적으로 각국은 GMT 기준으로 경도 15도마다 1시간 차이가 나는 표준시를 둔다. 예외도 많다. 베네수엘라·이란·아프가니스탄·미얀마·인도·스리랑카 등은 30분 시차가 난다. 네팔은 45분 엇박자가 난다.

 이 중 베네수엘라는 2007년 국민에게 보다 많은 ‘적절한’ 자연채광 시간을 준다는 명분으로 표준시간대를 30분 늦췄다. 그리니치 천문대의 데이비드 루니는 이와 관련, 영국 BBC에 “시간이 정치와 얽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우고 차베스 당시 대통령이 완강한 반미주의자였다는 점에서 국제기준을 거부한 ‘삐딱 사례’의 하나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30분 엇박자 국가들이 이란·미얀마·아프가니스탄처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라는 점에서 독재자의 일방 성향이 반영됐다고도 분석했다. 이른바 ‘틱톡(tick tock·똑딱똑딱)의 정치학’이다.

 표준시의 정치는 근대 국민국가 성립기에 특히 두드러진다. 인도는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30분 엇박자를 뒀고, 네팔 왕국은 접경국가 인도에 예속되기 싫어서 인도보다 15분 빠른 표준시를 채택했다.

 중국이 베이징 단일시간대의 표준시를 쓰는 것도 비슷하다. 1912년 중화민국 성립 당시엔 5개의 시간대가 있었다. 그러나 49년 공산당 정부가 성립하면서 베이징 단일시간대로 통일됐다. 시차를 인정하면 분열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정치논리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요즘에 표준시를 변경하는 것은 경제적인 논리다. 남태평양 사모아는 2011년 12월 30일 하루를 영원히 없애버림으로써 표준시를 1일 앞당겼다. GMT 기준 날짜변경선 근처에 위치한 사모아는 원래 북미 날짜를 공유하는 GMT-11 시간대를 썼다. 그러나 인근 호주가 쾌조의 성장세를 보이고 아시아 국가와의 교역이 늘어나면서 영업일이 맞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표준시 변경으로 호주와의 시차는 종전 21시간에서 3시간, 뉴질랜드와의 시차는 23시간에서 1시간으로 줄었다. 덕분에 지구상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나라’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는 나라’가 돼 관광상품도 바뀌었다.

스페인, 시에스타 없애려 “1시간 늦추자”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스페인도 GMT 변경을 논의 중이다. 지도상에서 스페인은 영국과 비슷한 경도에 위치해 있지만 시간대는 중부유럽 표준시(CET)인 GMT+1을 쓴다. 프랑코 독재정부 때 독일 히틀러 정부와 군사협력을 위해 시간대를 맞췄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에 출근하게 됐고 금세 피로를 느끼다 보니 특유의 시에스타(낮잠) 문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지난해 의회 ‘근로시간 합리화 위원회’는 “점심시간을 줄이고 시에스타를 없애 스페인 비즈니스 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자”며 GMT 변경안을 공론화했다.

 무역 활성화를 위해 다른 나라 표준시에 통합하려는 시도도 있다. 2001년 태국의 탁신 친나왓 정부는 지역경제 중심인 홍콩·싱가포르의 표준시에 맞추자고 제안했다. 최근엔 베트남이 교역이 잦아진 중국과 표준시를 맞추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지난해 일본의 이노세 나오키(猪瀨直樹) 당시 도쿄도지사는 도쿄 금융시장을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문을 여는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표준시를 2시간 앞당기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국제정치와 경제 역학에서 시간은 거꾸로도 앞으로도 흐른다.

강혜란 기자

◆일제 때 바뀐 한국 표준시 … 복원 목소리도

한국의 현재 표준시(GMT+9)는 일본 표준자오선인 동경 135도 기준을 따른다. 표준시를 처음 정한 1908년엔 한반도 중앙부를 지나는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했다. 동경 135도보다 30분 늦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조선총독부 지시로 일본 표준시에 맞췄다. 광복 후 54년 동경 127.5도로 복귀했지만 61년 8월 국제관례를 따른다는 이유로 한 시간 간격인 동경 135도에 다시 맞췄다. 동경 135도선은 울릉도 동쪽 350㎞ 지점을 남북으로 지나는 자오선으로 국토 최동단 독도에서도 278㎞나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주권국가의 정체성을 위해 고유 영토에 맞는 표준시로 복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왔다.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관련 법률이 발의됐다. 가장 최근엔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이 지난해 11월 ‘표준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은 지난해 말 회기를 넘겨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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