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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말 속에 없는 것들

김형경
소설가
연초에 지인 남성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그는 근황을 이렇게 말했다.

 “1박2일 정도 꼼짝없이 누워 있었다. 온몸의 365개 관절이 모두 해체되었다가 재조립되는 것 같았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는 데 1초쯤 걸렸다. 저 문장을 여성의 언어로 번역하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감기몸살에 걸려 꼼짝없이 이틀을 앓았어. 온몸의 관절 마디가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아팠어.” 하지만 저 남자의 언어에는 병명이나 통증에 대한 표현이 없다. 주의를 기울여 배제한 듯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그가 고의로 저런 표현을 사용하는 게 아님을 알고 있다. 그는 자주 통화하는 내 남동생이며, 누나에게나 저 정도 개인 정보를 내놓을 뿐이라는 사실도 짐작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감정을 억압하면서 산다.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 기 때문이다. 인명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 때, 위험한 수술을 할 때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그 일을 완수할 수 있다. 가족을 위해 매일 힘겨운 노동을 하면서도 자기가 가엽다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야 가장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남자들은 내면 감정에 이르는 길을 차단해 놓고 강한 남자가 되고자 애쓴다. 그리하여 그들의 말에는 감정이나 정서가 묻어나지 않는다. 관념적인 언어, 형이상학적 표현 영역에 머무르면서 자기들의 언어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반면 여자들의 말하기는 개인적이고 산만하다고 판단한다.

 여자들은 자주 남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많은 여자가 대화가 통하는 남자를 이상형으로 꼽는다. 그녀들에게 나는 가끔 말해 준다. “남자들의 이상형은 섹스가 통하는 여자야.” 청춘기 여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섹스는 언어 대신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통로이며, 의미 있는 타인과 소통하는 길이 라고 부연한다. 그녀들은 다시 눈을 껌뻑인다.

대화든 섹스든 그것을 통해 남녀가 원하는 것은 실은 동일하다. 의미 있는 타인과 친밀한 관계 맺기, 그로부터 인정·지지 받는 느낌 경험하기, 내면에 쌓인 불편한 감정 해소하기 등이다. 그러니 돈 주앙이 되는 방법은 아주 쉽다. 여자 말에 귀 기울여주고 여자가 원하는 달콤한 말만 날리면 된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그 일이 가장 어렵다.

김형경 소설가

◆약력 : 소설가. 창작집 『담배 피우는 여자』, 장편소설 『꽃피는 고래』, 심리 에세이 『만가지 행동』 『남자를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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