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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보는 눈, 국민들은 현실적

미·중·일·러 등 열강의 각축이 본격화되고 있는 동북아 정세 속에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을 터득해 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대일 관계는 끝없는 수렁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미·중 사이의 공간을 잘 활용했다. 하지만 한·일 관계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한 한·일 간 대화 성사는 불투명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태까지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면서도 “한·일 정상회담은 두 나라 관계발전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런 준비하에 추진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일본의 변화를 촉구했다.


정부, 고위급 대화에 부정적 기류


 외교부도 지난해 한·미, 한·중 관계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이례적으로 정상회담 미개최가 장기화됐다”고 평가했다.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와 집단자위권 행사, 역내 영토·역사 갈등 심화를 이유로 꼽았다. 정부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면서 국내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다”며 “2월에 다케시마의 날, 3월 일본 역사 교과서 검정 발표, 4월 야스쿠니 신사 춘계 예대제 등 일정을 고려하면 당분간 관계개선 시도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과제로 ▶일본의 결자해지 ▶생산적 고위급 대화 여건 조성 ▶북핵 등 전략협력 강화 등을 들었다. 일본의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앞세우긴 했지만 북핵 문제 등을 고려할 때 고위급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인식은 국민들의 생각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연구센터(센터장 김지윤 연구위원)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방문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과의 적극적 관계 개선을 위해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57.8%)는 의견이 “필요 없다”(33.8%)는 쪽보다 높았다. 설문에 따르면 국민들은 ‘아베 총리가 주변국을 고려해 야스쿠니를 방문하지 말았어야 한다’(87.6%)는 의견이 압도적이었고, 일본의 안보 역할 확대에 대해서도 부정적(66.8%) 의견이 긍정적(18.9%)이라는 응답의 세 배를 넘었다. 국민들이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불신과 집단적 자위권 추구 등 군사대국화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국민들은 ‘밉지만 할 건 해야’ 판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49.5%)는 응답이 정상회담 반대(40.7%)보다 높았다. 특히 중국의 부상을 고려해 한·일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63.9%였다. 필요 없다는 응답은 26.2%였다. 밀실처리 논란이 일면서 무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50.7%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필요 없다’는 응답은 37.3%였다. 특히 특히 20대의 경우 69%가 정상회담에 동의해 60대 이상(38.1%)과 30%포인트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이는 아산정책연구원 여론연구센터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9~31일 성인 남녀 10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김지윤 연구위원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직후인데도 국민 10명 중 6명은 일본과의 적극적 관계개선을 원하고 있다”며 “이는 국민들이 ‘미운 건 밉지만 필요한 건 해야 한다’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주도하는 신(新)동북아 전략을 위해선 한·일 관계를 복원해 한·미·일 공조를 공고히 하고 중국을 끌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리하면 친미(親美), 연중(聯中), 용일(用日)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본지 1월 3일자 1, 4, 5면>


전문가 “다양한 일본 활용법 모색을”

 이명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지금은 구한말 격동기처럼 동북아의 거대한 힘의 변화가 이뤄지는 시점으로 대일 외교를 한·일 관계 틀 속에서만 보면 안 된다”며 “일본이 한·미, 한·중 관계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하고 경제적 분야, 안보적 분야를 비롯해 통일에서 일본의 역할 등 다양한 일본의 활용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도 “한·일 관계의 악화는 중국에만 유리한 일”이라며 “지금 악화된 한·일 관계가 지속되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중·일 사이에서 가지는 전략적인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봉 선임연구원은 “국민들도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이익을 고려하는 만큼 여론에 기대 한·일 관계를 단절시킬 일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용일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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