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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때려도 못 잡는 '두더지' 보조금



지난 6일 오후, 서울의 한 휴대전화 판매점 K사. 이동통신 3사의 휴대전화를 모두 취급하는 이곳에 A통신사로부터 ‘정책’이 떨어졌다. “리베이트(보조금)를 더 태우라”는 지시였다. 순식간에 A통신사의 보조금은 G2는 43만원에서 52만원, 갤럭시S4는 50만원에서 60만원으로 올랐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보조금 가이드라인(27만원)보다 최대 23만원 더 많은 보조금이 A통신사로 갈아탄 소비자들에게 뿌려졌다.

과징금 비웃는 이통사 '쩐의 전쟁'
"다음 단속까진 여유" 불법 악순환, 실시간으로 40만~90만원 출렁
보조금 지원액 통신비로 만회 탓, 정보 꿰찬 '빠꼼이' 고객만 싸게 사
요금 인하 등 개선 가능성 없애



 다음 날인 7일 오전, 전날 A통신사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B통신사가 갤럭시S4와 G2에 보조금 20만원을 추가하면서 ‘쩐의 전쟁’은 더 뜨거워졌다. K사 관계자는 “조만간 C통신사에서도 정책이 나올 것”이라며 “한 곳에서 리베이트를 주면 다른 곳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통 3사 제품을 모두 취급하는 판매점을 통해 각사의 보조금 정책이 실시간 모니터링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보조금이 오르는 ‘보조금 에스컬레이팅’ 현상은 심해지고 있다.



 K사 관계자는 “실시간으로 통신사 보조금 액수가 출렁이다 보니 ‘호갱님’(호구와 고객님의 합성어로 어수룩한 고객을 뜻하는 은어)에겐 책정된 보조금보다 적게 주고, ‘빠꼼이’ 고객들에겐 보조금이 많을 때 즉시 연락하는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연초부터 이통시장이 들썩거리고 있다. 지난해 말 이통 3사가 방통위로부터 1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받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불법 보조금 경쟁을 시작한 것이다. 2012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년간 방통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총 1906억원에 달한다.



 이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번호이동 건수가 하루 평균 4만 건을 웃돌면서 방통위가 시장과열 기준으로 삼고 있는 2만4000건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이통 3사는 방통위의 제재가 있던 지난달 27일 저녁부터 일제히 40만∼90만원의 휴대전화 보조금을 사용, 80만∼90만원대 최신 스마트폰을 20만∼50만원에 판매했다. 일부에선 출고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최신 스마트폰 가격이 10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나까마’로 불리는 일부 온라인 판매점에서는 옵티머스G(번호이동·34요금제 사용 조건)가 0원에, 베가 아이언(번호이동·69요금제)이 1만원에 등장하기도 했다.





 보조금 지급 방법도 갈수록 음성화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인터넷에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모바일 앱이 새로운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는 이들 앱에서는 이통사의 보조금 정책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알림을 통해 이용자에게 공지한다. 인터넷으로 회원을 모집한 뒤 카카오톡이나 메신저로 정보를 제공하면서 단속을 피하기도 한다. 불법 보조금 감시가 강화되자 나온 ‘꼼수’들이다.



 사실 이런 보조금 문제는 이동통신과 단말기 상품을 결합해 판매하는 독특한 휴대전화 유통구조에서 비롯됐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자신들이 직접 휴대전화를 유통한다. KT에 가입하려면 KT의 대리점에서 파는 휴대전화를 사는 방식이다. 고객은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통화를 하거나 데이터 서비스 비용을 매달 통신사에 내는데, 통신사는 여기서 수익을 얻는다. 보조금을 많이 뿌리더라도, 통신요금을 통해 만회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득을 본다는 것이다.



 보조금 지급 구조도 복잡하다. 여러 유통단계에 걸쳐 제조사 장려금, 판매 및 정책 수수료 등이 복합적으로 뿌려진다. 대리점의 실적에 따라 장려금이 차등지급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국내 단말기 시장은 단말기의 성능이나 디자인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되는 게 아니라 보조금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제조사가 우수한 단말기를 만들어도 이통사가 시장을 움직이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이론적으로는 휴대전화 제조사가 유통을 맡고 이통사들은 네트워크의 질, 요금인하 경쟁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수년간 고착화된 유통관행을 한꺼번에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통신사도 보조금의 유혹을 떨쳐내기가 힘들다. 가입자를 늘리는 데 가장 쉬운 수단이 보조금이기 때문이다. 고려대 이동원(경영학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2005년 2조8000억원 수준이던 한국 이통시장 마케팅비는 2012년 6조8000억원으로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번호이동 규모만 294만 건에서 1260만 건으로 4.3배로 늘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보조금 덕에 비싼 스마트폰을 싸게 살 수 있는데 뭐가 나쁘냐”는 것이다. 하지만 보조금은 시장을 왜곡시킨다. 어떤 고객은 100만원 가까이 내고 스마트폰을 샀는데, 다른 사람은 같은 기기를 10만원에 샀다고 하면 이는 전형적인 ‘복불복’이다. 결국 일부는 혜택을 누렸지만 그 비용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는 결과를 불러온다. 이동원 교수는 “설비투자, 통신요금 인하 등 이용자 편익을 늘리는 데 사용돼야 할 재원이 소모적인 경쟁에 투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보조금 경쟁을 억제하면 장기적으로 가계는 통신비 부담을 줄이고, 사업자도 투자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이 시행되면 이런 부작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조사는 단말기에 지급하는 장려금 규모와 판매량을 공개하고, 이통사도 각 단말기에 붙는 보조금 규모를 구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보조금을 투명화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돕는다는 취지다. 일부 제조사가 “영업비밀을 침해한다”고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나 이르면 2월 임시국회, 늦어도 4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 시행은 6개월 뒤인 하반기부터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시장 변화에 맞게 보조금 정책을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년 약정에 199달러’ 식으로 어느 곳에서나 같은 가격에 단말기를 살 수 있는 미국이나 일본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상일 의원은 “오랫동안 27만원에 묶여 있는 보조금 상한선을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규제보다는 자율에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한편 올해부터 보조금 관련 제재는 강도가 세진다. 과징금 부과 상한액이 현행 매출액의 1%에서 2% 수준으로 오르고, 과징금 부과기준율도 현행 0∼3%에서 1∼4%로 변경된다. 상습적인 위반 이통사는 과징금도 더 많아진다. 방통위 관계자는 “단기적인 대책보다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며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일정 기준 이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이통사에 과징금·영업정지 등 행정처분뿐만 아니라 징역·벌금 등 형사처벌도 가능토록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손해용·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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