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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라이벌, 스트레스인 동시에 자극제

2009~2010 국제빙상경기연맹 ( ISU )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 참가한 아사다 마오 (왼쪽) 와 김연아 선수.




피겨 여제(女帝) 김연아 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입니다. 피겨 스케이트 선수라는 공통점 외에도 같은 나이, 세계 최정상급의 실력 등 비슷한 점이 많아 이 둘을 늘 함께 떠올리곤 합니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런 관계를 ‘라이벌’이라고 부릅니다. 라이벌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어느 때보다 심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신문과 교과서는 라이벌과 경쟁의 의미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요.



박형수 기자



생각해볼 문제



 “안녕들 하십니까.”



 이 평범한 인삿말이 지난 연말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라며 담담하게 안부를 묻는 듯한 한 대학생의 대자보 제목이었죠.



 첫 번째 대자보가 세상에 알려지자 대학생, 고등학생, 직장인까지 줄줄이 대자보를 써붙이며 응답하기 시작했습니다. 100여 장의 대자보를 들여다보니 대학 입시, 토익 점수, 입사 시험 등 ‘산 너머 산’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경쟁에 지쳐 ‘안녕하지 못하다’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어찌보면 청소년의 생활은 경쟁은 끝이 없고 라이벌은 실체가 없어 보입니다.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는 모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옆에 앉은 친구, 나를 가르치는 교사, 부모에게까지 까닭없이 적의를 보이기도 하고, 나와 아무 관계도 없는 TV 속 연예인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쏟기도 합니다.



 스포츠에서 승부가 아름다운 것은 정정당당히 펼치는 맞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태환이 빠진 2013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쑨양이 손쉽게 우승하자 왠지 김빠진 것처럼 보인 것도 라이벌끼리 펼칠 수 있는 뜨거운 승부가 빠졌기 때문 아닐까요. 서로를 자극하며 게으름에 빠지지 않게 하는 라이벌이라는 존재는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는 자극제이기도 합니다.



 입시라는 좁은 문 앞에서 경쟁을 벌이는 청소년은 누구를 라이벌 삼아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을까요. 또 이들에게 교과서에서는 경쟁과 라이벌을 무엇이라 설명하고 있을까요.



자기 한계를 뛰어 넘어야 진정한 승자



교과서 속 대안과 해결책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산 오르기 경쟁’이라는 글은 조선 전기의 학자 강희맹이 쓴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삼형제에게 “산을 오른 뒤 돌아와 무엇을 보았는지 얘기하라”고 시키죠. 막내는 발이 빠르고 힘이 장사라 산에 금방 오를 수 있을 거라 자만합니다. 막상 산에 도착하자 겁 많고 경솔한 성격 탓에 정상에 오르기를 포기하고 맙니다. 둘째 역시 건장하지만 이곳저곳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결국 정상에 오르지 못합니다. 첫째는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어 산을 오르지 못할까봐 걱정스런 마음에 잠시도 멈추지 않고 산을 탑니다. 결국 큰아들만이 꼭대기에 올라 일출의 절경까지 보고 돌아옵니다.



 세 아들의 공동 목표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산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는 세 아들이 자신의 성향대로 산에 갔다 돌아옵니다만, 만약 이들이 동시에 산타기를 시작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발이 빠른 막내가 산 정상을 밟았을까요.



 아마 세 아들이 같이 출발했더라도 큰아들만 산정상에 올랐다는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유는 각자 경쟁하는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막내와 둘째는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고 미리 포기하거나 스스로 한계를 긋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큰아들은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고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쉬지 않고 정진했기에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겁니다. 강희맹이 생각한 ‘경쟁 상대’란 내 옆에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한계’인 셈이지요.



 경쟁의 모습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분야가 스포츠일 텐데요. 고등학교 체육 교과서에서는 스포츠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정해진 규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해 공명정대하게 경기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페어플레이 정신, 협동심, 책임감, 자신감, 자기 절제 등을 기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스포츠 정신이라고 얘기합니다.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 강령에서는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잘 싸우면 되는 것’이라고 결과가 아닌 과정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강희맹이 산을 오르는 방법에 빗대 ‘공명을 성취하는 길’을 설명한 것이나, 스포츠에서 ‘자신과의 싸움’이라며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것은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승자 독식 구조’니 ‘1등 지상주의’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사회에서는 결과가 과정보다 중요하게 평가받는 게 사실입니다. 수능 시험 점수가 발표되는 날 어김없이 수험생의 자살 소식이 전해지고, 1등이 아닌 모든 사람이 ‘잉여’로 취급을 받는 게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이죠.



 이런 현실에 대한 대답으로 중학교 도덕 교과서 속에서 설명한 ‘인간의 존엄성’을 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언가를 이뤄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겁니다. 모두가 존엄한 가치를 가진 만큼 상대방을 멸시해서도, 내가 멸시를 받아서도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상대보다 나아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고 상대를 더욱 존중해주기 위해서가 되겠지요. 나의 한계와 생각을 라이벌 삼아 나와 경쟁을 하는 것, 한번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자료 제공=명덕외고 김영민, 최서희(국어) 교사, 한민석(사회) 교사, 청운중 천은정(사회)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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