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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도 정보기능 중시 … 지금 민주당과 방향 달라”

전옥현 1956년 충남 서천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79년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입부해 유엔공사와 국정원 해외정보국장·제1차장을 역임했고, 주홍콩 총영사를 지냈다. 현재 한림대 초빙교수.
새해 첫날 새벽 국회는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한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년간 최대 정치 현안이던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의 재발 방지 노력이 일단 제도화된 셈이다.

30년 정보맨 전옥현 전 국정원 1차장이 보는 국정원 개혁

 하지만 이를 두고도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개혁 입법이 국정원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의심하는 이들도 적잖다. 또 개혁 내용 자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다. 중앙SUNDAY는 국정원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전옥현(58·사진) 전 국정원 1차장을 만나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국정원 개혁 태스크포스(TF) 팀장으로 개혁을 지휘했었다.

 그는 당시 개혁을 두고 “노무현정부도 국가정보원 직원의 정당·기관 상시 출입이나 대공 수사권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 민주당의 개혁 방향과는 다른 내용이다. 그는 또 “정권이 바뀌어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인사 제도를 정착시켜야 정치 개입 시비가 사라질 것”이라며 “원장을 비롯한 요직에 정치색 없는 정보 전문가를 중용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무현정부에서 국정원 개혁팀을 지휘했는데.
 “노무현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4월 팀장에 임명됐다. 처음엔 사양했다. ‘노무현 사람’으로 찍혀 다음 정부에서 잘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부의 뜻이 워낙 강했다. 고심 끝에 정치색 없는 베테랑 고위 간부 14~15명을 엄선해 팀을 출범시켰다. 국정원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무현정부가 발탁한 서동만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이 청와대와 우리 팀 사이에 다리 역할을 했다. 서 실장은 나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동기(75학번)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잘 몰랐다.”

 -노무현정부도 지금의 민주당처럼 대공수사권을 축소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나.
 “아니다. 오히려 서 실장은 ‘개혁팀의 독립성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고, 고영구 당시 국장원장이나 청와대도 팀에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직파간첩이나 찬양고무죄 혐의자 이외에는 국정원이 수사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공수사권 자체를 폐지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대공수사국’의 명칭을 ‘안보수사국’으로 바꿨지만 공안 외에 산업스파이 사건도 다루게끔 권한을 확대한 점에서 오히려 몸집을 키워준 것으로 봐야 한다. 대신 국정원 직원들은 ‘정치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선서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정신교육도 받았다. 또 1급이던 국내정보실장을 2급으로 낮추고 보안을 위해 ‘서울지부’니 뭐니 하며 수시로 바꿔온 국내정보 파트의 명칭도 ‘정보협력단’으로 바꿨다. 정치권에 대해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도 하는 ‘협력’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청와대와 개혁 범위를 어떻게 조율했나.
 “서 실장과 한 달 넘게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며 토론을 거듭했다. 그는 ‘대공수사권은 왜 있어야 하나’ ‘국정원 직원이 왜 정당에 상주해야 하나’ ‘정치에 관여하는 국정원 직원에겐 처벌 형량을 높이는 게 어떠냐’ 등의 질문을 했다. 우리가 ‘이런이런 문제가 있어서 대공수사권이나 정당 상주는 필요하고, 형량 확대는 안 된다’고 설명하면, 서 실장은 ‘그런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네’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라. 서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가 문재인 민정수석에게 이런 내용을 보고하면 거의 다 받아들여지더라. 그만큼 노무현정부는 합리적이었다. 서 실장이 ‘내가 노 대통령에게 얘기해 국정원 사정을 이해시켰다’고 한 적도 있다.”

 -지금 민주당과는 다른 방향 아닌가.
 “노무현정부는 안보 현실을 고려해 국정원의 정보활동을 순기능적으로 증대시키되, 법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도 중앙정보부 공작정치의 가장 큰 희생양이었지만 집권 뒤 국정원을 직접 찾아와 사기를 올려줬다. 그때 대북전략처장으로 DJ 바로 옆에 앉아 그의 질문에 답변하던 기억이 선하다.”

 -이번 개혁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국정원의 손발을 묶어 정보기능을 위축시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우선 정당·기관 등에 국정원 직원의 상시출입을 사실상 금지한 건 정보활동을 하지 말라는 소리다.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의원 사건을 보자. 이 의원은 정당(통합진보당)에, 그의 조직원들은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연구소에 소속돼 있다. 이들을 연결해 조각을 맞춰야 전모가 밝혀진다. 그런데 정당이나 조직에 출입하지 못하면 수사를 전혀 할 수 없지 않겠나. 선진국들은 법으로 정보기관의 상시 출입 활동을 규제하진 않는다. 상시출입이 정 안 된다면 연락관을 두는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국정원은 외교부에 연락관을 두고 서로 정보를 교환한다. 연락관은 소극적인 정보 수집만 하기에 기관장의 비리는 캐지 않는다. 또 국정원은 담당관을 통해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필요한 경우에는 정보를 제공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도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

 -국정원이 민주당에도 정보를 제공해 왔나.
 “여야를 막론하고 국법 질서를 존중하는 정당에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적절히 제공해 온 것으로 안다.”

 -어떤 정보를 민주당에 줬나.
 “예를 들면 북한의 장성택 처형이나 체제 위기 징후 같은 국가안보상 중요한 정보가 있을 경우에는 정보위 보고와 별도로 야당에도 제공해 온 것으로 안다. 앞으론 야당이 국정원에 ‘당사 대신 제3의 장소, 예를 들면 호텔 같은 데 와서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뒷말이 나올 수 있는데, 국정원이 가려고 하겠나.”

 -국내 정보도 야당에 줬나.
 “정치·안보 상황이나 원장·차장의 성향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다.”

 -개혁안은 국정원 예산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국회 정보위원회를 상설화하기로 했는데.
 “2010년 봄 김정일 방중설이 무성했을 때 우방국 정보기관이 김정일 전용열차가 북한에 머물고 있는 걸 포착하고 우리 측에 방중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줬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정보가 국회에 보고되자마자 바로 언론에 보도됐다. 그 뒤 우방국 정보기관은 ‘믿고 정보를 줬는데 이러면 어떻게 협력하겠나’라고 유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정보위가 상설화되면 이런 기밀누설 사고가 훨씬 자주 일어날 것이다. 국정원 직원이 정치에 관여할 경우 최고 형량을 5년에서 7년으로 높였는데, 국회의원이 비밀을 누설할 경우에도 처벌 수위를 높여야 누설을 막을 수 있다. 또 정보위 소속 의원은 진짜 정보·안보전문가들이 맡아야 한다. 미국은 다선 원로 의원들이 수 년간 정보위원으로 재직한다. 비밀을 누설하면 정치 생명이 끝장날 만큼 엄벌을 받는다.”

 -개혁안은 국정원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했고, 사이버심리전도 대북심리전으로 제한했다. 국정원의 정치 관여 때문이 아닌가.
 “내부고발자 보호 규정은 가장 심각한 문제다.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하며 진행 중인 수사 상황을 공개해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보호를 받는다면 국정원은 어떤 사건도 해결할 수 없는 식물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다. 대북심리전과 관련해선 현재 북한이 국내에 직접 운영하는 사이트가 80개가 넘는다. SNS도 400개에 달한다. 이들에 맞서 심리전을 하다 보면 국내 정치와 어느 정도 겹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공격하면 국정원은 반박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슬로건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외교정책이기 때문이다. 정권 홍보가 아닌 심리전의 일환으로 봐줘야 하는데, 이런 것도 금지한다면 곤란하다. 다만 댓글 사건 같은 일을 막기 위해 국정원이 정교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직원들을 감독해야 한다. 이 역시 법으로 제어하면 심리전 능력이 위축된다.”

 -그래도 무소불위의 국정원을 개혁하려면 법이 필요한 게 아닌가.
 “2007년 일심회 간첩단 사건 당시 용의자 일부가 우리 정부 기관에 침투해 있다는 단서가 포착됐다. 그러나 김승규 당시 원장이 경질되면서 조기 종결됐다. 이렇게 정권이 바뀌거나 정권에 불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정원 사람들을 쳐내니 불안해져 정치권에 줄을 서다 보니 댓글 사건 같은 게 터지는 거다.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특히 원장에 리더쉽과 정보감각이 핵심이다. 결국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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