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대법원장에게 손뼉 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뿐일 겁니다"





[사람 속으로]'대법원 사진사' 30년 우형근씨











#“자, 이번엔 파이팅~ 한번 외쳐 보실게요. 하나, 둘, 셋 파이팅”



 “찰칵 찰칵 찰칵~”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오전 8시쯤 강원도 고성의 신선대. 금강산 1만2000봉 중 맨 끝자락 ‘신선봉’으로 가는 길 중턱에 위치한 이곳에 양승태 대법원장과 이인복(법원산악회장) 대법관을 필두로, 물 건너 제주지법 등 전국 각 법원에서 자발적으로 합류한 판사와 직원 220여 명이 모였다. 동해 일출을 함께 본 이들은 이런 날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단체 기념사진을 찍는 중이다. 셔터를 눌러대는 우형근(58)씨의 손놀림도 빨라졌다. 등산 매니어인 양 대법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한 일출 산행의 모든 것은 우씨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내 대법정. 대한민국 산업계와 노동계의 시선이 여기로 쏠렸다. 통상임금 인정 기준을 제시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역사적 판결이 내려지는 순간이었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이 법복을 입고 나란히 입장해 착석하자 디지털카메라를 든 우씨가 법대(法臺)로 다가가 연방 셔터를 눌렀다. 판결 선고 직전 10~15초 사이에 임무를 끝마치고 법정을 빠져나가는 우씨의 뒤로 양 대법원장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정기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됩니다.”



 대법원장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우씨의 직함은 ‘화학사무관’. 생소한 명칭이지만 법원행정처 총무과 5급 공무원이다. 1980년대 초 필름 사진이 주류일 때 인화· 현상 시 화학물질을 취급한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원래는 전국 법원 판사, 직원들의 공용 사진과 각종 행사 사진을 총괄한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주재하거나 참석하는 공식 일정, 행사를 주로 기록해 ‘대법원 사진사’로 통한다.



 대법원에 전담 사진사가 처음 등장한 건 1962년이다. 일본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우씨의 아버지 우영순(작고)씨가 41세 때 입사(?)하면서다. 그가 81년 정년 퇴임(60세)하자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대 50여 년에 걸쳐 우씨 부자가 찍은 공식 사진은 10만여 컷. 분당 대법원 정보화센터 기록보존소에 아버지가 찍은 1만 8000컷과 아들이 찍은 9만 컷이 디지털 사진으로 보관돼 있다. 특히 아버지는 조진만 대법원장(3·4대 연임, 1961~68년)을 시작으로, 민복기(5·6대, 68~78년)- 이영섭(7대) 대법원장까지 3명, 아들은 유태흥 대법원장을 시작으로 김용철- 이일규- 김덕주- 윤관- 최종영- 이용훈 대법원장을 거쳐 현 양승태 대법원장까지 8명의 사진 기록을 담당하고 있다.



 통상임금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한 시간 뒤인 지난해 12월 18일 오후 3시 대법원 청사 2층 작업실에서 우씨를 만났다. 그는 “유태흥 대법원장이 81년 4월 취임하고 2개월 뒤 아버지가 정년 퇴임하셨다”며 “취임식은 선친이 찍고 5년 뒤 퇴임식은 아들이 찍었다”고 말했다.



 - 화학사무관으로서 보람을 느낄 때는.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전국 법원 구성원이 다 대상이다. 전국 서기관 이상 과장급과 판사들 사진은 전부 제가 다 찍었다. 수십, 수백 명을 찍어도 인사 명단 보고 라벨 붙여서 다 보내준다. 지방에 근무하는 분이 사진을 받고 감사 e-메일을 보내올 때 보람을 느낀다.”



 - 업무량이 많나.



 “제가 스틸 사진을, 후배인 김이석(44) 계장(행정관)이 동영상과 외부 촬영을 담당한다. 둘이서 하다 보니 24시간이 모자란다. 예전엔 한가했는데 2000년대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면서 바빠졌다. 올해 공식 행사만 234건이다. 한 해 평균 300건 이상 행사에 출장 간다.”



 - 가장 기억 나는 사진은.



  “대법원 청사 1601호에 빼곡히 걸려 있는 역대 대법관 대법원장 존영(尊影) 액자다. 123명 중 95명은 80년대 중반 대법원이 서울 중구 서소문에 있을 때부터 최근까지 제가 찍은 것이다. 89년 서울 법원종합청사 준공식 때 찍은 사진도 기억난다. 매달 열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는 반드시 찍는다. 대법관들도 은연중에 카메라를 의식한다.”



 - 대법원 역사도 저절로 많이 알게 됐겠다.



 “그렇다. 아버지 때는 대법원장 임기가 5년이었고 연임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진만 대법원장과 민복기 대법원장이 연임했다. 대법원장 임기는 93년 취임한 윤관 대법원장 때부터 6년으로 늘었다. 88년엔 정기승 대법관의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이일규 대법원장이 취임했다. 대법원장 정년이 70세라 1년6개월 재임하다 나가고 90년 김덕주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했다.”



 - 인상 깊었던 대법원장을 꼽는다면.



 “9대 김용철 대법원장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진에 관심이 많고 저더러 사진 기록을 잘 보관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제게 카메라를 한 대 선물해줬다. 퇴임 몇 년 후 당신의 영정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 찍어서 액자로 만들어 드렸다. 윤관 대법원장은 좌천된 저를 9개월 만에 원상 복구시켜 줬다. 법원에서 사진 취재 행사 도중 모 방송국 기자와 다퉜다가 일주일 만에 사법연수원으로 전보 조치됐다. 갔더니 사진 촬영 기자재는 전혀 없고 영사와 시청각 영화 돌리기 업무를 주더라. 그러다 강원도 속초에서 열린 법관 연수회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윤 대법원장을 만났고 이후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윤 대법원장 퇴임 직전인 99년 6월 아태 대법원장회의 사진도 맡겼다.”



 - 속상했던 적은.



 “스펙을 떠나서 ‘대법원 사진 하면 저’라는 자부심이 있다. 한 대법원장이 취임 직후 사진 촬영을 외부의 사진학과 교수에게 맡겨 속이 많이 상했다. 후임 대법원장이 ‘내부 정식 직원에게 맡기라’고 정리해 제가 다시 맡게 됐다.”



  - 아찔했던 경험은.



  “서소문에 사무실이 있었을 때다. 89년 초 서울 법원종합청사 준공을 한 뒤 그해 연말에 서울고법 청사 20층 라운지에서 역대 대법관, 대법원장 참석 송년 만찬이 있었다. 당시 기계식 ‘니콘F3’ 카메라를 갖고 갔는데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고장이 났다. 큰일났다 싶어서 슬그머니 나와 택시를 타고 동네를 다 뒤졌다. 간신히 한 사진관에 뛰어들어가 신분증을 보여주고 뺏다시피 빌렸다. 만찬 장소로 돌아가는데 아들 얼굴이 저절로 떠오르더라. 최종영 대법원장 시절인 2002년 신임- 예비 판사 200명씩 기념 사진 찍을 때 ‘린호프 45’로 원판 사진을 찍었다. 당시 유선이 끊어져 조명이 터지지 않았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안 돼 결국 단체 사진은 못 찍었다.”



 -‘부자(父子) 사진사’라서 좋은 점은.



 “이회창 전 총리가 대법관 시절에 저를 불러서 현장 검증 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현장에서 찍는 걸 보더니 ‘부친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봐’라고 격려했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지난해 7월 폴란드 대법원장과의 공관 만찬장에 사진 찍으러 갔더니 폴란드 대법원장에게 영어로 ‘저분의 파더(아버지)가 같은 직업이었다’고 소개하더라. 알게 모르게 도움받은 게 적지 않다.”



 - 대법원 사진사만의 특권이라면.



 “사진 찍을 때 대법원장에게도 손뼉 치라거나 파이팅을 외치라고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일 것이다. 어떤 분은 못마땅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럴 때 사진 찍는 게 조심스러워진다.”



 우씨의 사무실 겸 작업실엔 조명 기구와 현상실 등 스튜디오 시설이 갖춰져 있다. 입법·사법·행정부를 통틀어 사진 스튜디오가 있는 곳은 유일하다고 한다. 벽쪽 책장에는 먼지가 묻은 검은색 스크랩북이 수십여 권 꽂혀 있었고 거기엔 60~70년대 찍은 사진들이 들어 있었다.



 - 어떤 사진들인가.



 “지금과는 달리 아버지 때는 별 데를 다 가서 찍었다. 62년 전국 법원장 회의 끝나고 전부 청와대로 인사를 갔는데 동행해 찍은 사진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재건 최고회의의장으로서 입법·사법·행정 등 3부 체육행사를 열었을 때 야구 경기하는 사진도 있다. 민복기 대법원장이 박 대통령 옆에 보인다. 워런버거 전 미국 대법원장 방한 사진도 있더라. 대민봉사 나가서 모내기, 벼베기, 물주기 작업하는 사진과 대법관들이 비닐우산을 들고 송충이 잡는 사진도 있다.”



 -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천거해 76년 20세 때 대법원에 고용(임시)직으로 들어왔다. 마이크로필름 기능사 자격증 따고 들어왔다. 판결문을 마이크로 필름화하는 일을 맡았다. 휴직하고 군대 갔다 복직한 뒤 카메라 담당이 됐고 부친 퇴임 후 제가 이어받았다. 당시 따로 사진 학원을 다녔다. 모 대학 사진학과 입시에선 떨어졌다. 그때나 가능했지 지금 같은 오디션 세상이라면 저 같은 사람 못 들어온다.”



 - 건강은 어떻게 챙기나.



 “자전거 매니어다. 큰 사고도 두어 차례 당했다. 부상을 숨기려고 비비크림으로 분장하고 행사에 나가기도 했다. 올해 3~7월 천안- 군산- 목포- 통영과 동해, 남해, 서해까지 8차례에 걸쳐 2000㎞를 달리는 전국일주를 마쳤다. 분당 집에서 대법원까지 편도 30~40㎞ 되는데 일주일에 2~3회 출퇴근한다. 자전거는 인생처럼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다. 자칫 방심하면 사고 나기 십상이다.”



 - 아쉬운 점은 없나.



 “주변에서 작품 사진이 없다는 얘길 한다. 하지만 제가 찍은 게 다 작품이다. 카메라가 없을 때는 대법원장이 지나가면 무슨 말을 할지를 몰라 쭈뼛쭈뼛하지만 카메라만 매면 스스로 당당해진다. 저만의 성역이자 천직이다.”



글=조강수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