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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 별세

김재춘 전 중앙정보부장(가운데)이 1961년 5·16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오른쪽에서 둘째)을 수행해 지방순찰에 나선 모습. 정확한 시기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는다. [중앙포토]


제3대 중앙정보부장(현 국정원장)을 지낸 김재춘(사진) 5·16 민족상 총재가 2일 오후 7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고인은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해 6관구 참모장, 중앙정보부장, 8·9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6관구 참모장 시절이던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도와 5·16을 주도했다. 5·16 전날 육사 동기생인 장교 30여 명을 모아 대책회의를 하고 부대를 진두지휘해 거사를 성사시켰다. 60년 발생한 4·19로 어수선한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군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낸 곳이 6관구 참모장실이었다. 이 때문에 6관구 참모장실은 소위 ‘혁명의 산실’로 기록되고 있다.

박정희·육영수 인연 맺어준 '5·16 동지'
4·19 때 진압 명령 어겨 사형선고
이승만 하야로 곡절 끝 풀려나



 김 전 총재는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을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6·25 당시 평소 친분이 있던 육 여사의 사촌오빠 송재천씨를 통해 부산 송도에서 두 사람이 선을 보는 자리를 만들고 이는 결혼으로 이어졌다. 이후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어가며 5·16의 주체가 됐다.



 고인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풀려난 적도 있다. 4·19 당시 군인들에게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라는 경무대의 명령을 어기고 실탄을 지급하지 않은 채 출동명령을 내려 총격전을 막았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결정은 군에서도 정권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이로 인해 고인은 당시 명령불복종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3·15부정선거의 책임을 지고 하야하는 바람에 풀려났다.



 박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그에게 곡절도 있었다. 5·16 이후 그는 “군인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혁명 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며 박정희 국가재건회의 의장에게 건의해 “민정이양 후 쿠데타 주체세력은 군으로 다시 돌아가고 민정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위 2·27선서를 이끌어 낸다. 하지만 초대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종필(육사 8기) 전 총리가 비밀리에 공화당을 사전에 조직해 정치를 하려 하자 방첩대장 자격으로 철저한 조사를 실시했다. 고인은 63년 2월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된 직후 새나라자동차 사건, 빠찡꼬 사건, 워커힐 사건, 증권파동 등 공화당 창당 자금마련을 위한 4대 의혹사건을 밝혀내 김 전 총리를 해외로 내보내기에 이른다. 이른바 육사 5기와 8기의 갈등 사건이다. 고인은 이후 한국사회연구소 이사장, 한국산업기술개발연구소 소장, 민중당 국회의원, 한중 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맡았다. 유족은 김희방 여사와 태호(충북대 교수), 정호(재 영국), 용호(연세대 교수)씨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특1호. 발인은 5일 오전 7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장군묘역.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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