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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김정은의 신년 독백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서른 살이다. 이젠 남조선 노래 ‘서른 즈음에’를 부를 수 있는 나이다. 애연가인 나로선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이란 대목이 제일 좋다. 사실 요즘 담배가 많이 늘었다. 며칠 전 마식령스키장 리프트에서도 줄담배를 피웠다. 고모부 장성택 때문이다. 후계자 시절부터 건성건성 대하며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눈에 거슬리긴 했다. 그래도 처형까지 한 건 좀 심했다며 꿈결에 나타나는 바람에 자꾸 밤잠을 설친다. 젊은 시절 그와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눴던 경희 고모. 황혼에 나어린 조카 때문에 과부가 돼버린 그녀의 두문불출도 부담스럽다.



 물론 충격요법의 효과도 컸다. 날 은근히 깔보던 노간부들 모두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다. 허리가 꺾인 채 끌려나간 장성택이 시신도 수습 못할 정도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걸 지켜봤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젠 누구도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저 머리를 박고 내 교시를 메모하느라 정신이 없다. 공포정치로 권력기반은 훨씬 탄탄해진 듯하다.



 그런데 정말 잘한 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분명한 건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준 통치 노하우 제1장은 ‘장성택 제대로 다루기’였다는 점이다. 적당히 먹고살게 해주되 2인자라며 기어오르려 하면 혼쭐을 내주란 얘기였다. 때론 고모인 김경희 비서도 무시하라는 가르침이다. 아버지는 나의 ‘장성택 사형’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지, 저승에서 나에 대해 어떤 뒷담화를 매제 장성택과 나누고 있을지 궁금하다. 할아버지 김일성 수령이 뭐라 뭐라 나를 나무라지나 않을지도 걱정이다.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2014년 새해가 밝았다. 집권 3년차다. 처음엔 서울과 서방 언론은 나를 ‘미숙하고 어린 지도자’라고 얕봤다. 그렇지만 이설주라는 예쁜 부인도 있고 딸 둘을 둔 아빠라는 사실에 날 좀 어른스럽게 대해줬다. 장성택까지 치고 나니 “깔봤다간 큰일날 인물”이란 말도 나온다. 좀 마음이 놓인다.



 올해엔 분위기를 확 바꿔야겠다. 우선 신년사에 ‘북남 관계개선’을 슬쩍 띄워봤다. “북의 지도자가 대화용의를 표명했다며 기대하는 눈치”라고 김양건 비서가 남쪽 분위기를 귀띔해준다. 일단 성공이다. 그래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지난해 4월 개성공단 문을 닫아걸던 때와 같은 패착은 금물이다. 입주기업과 국민여론에 떠밀려 ‘제발 공단을 열어달라’고 애원할 줄 알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깐깐하게 나오는 바람에 골치 아팠다. 베테랑 대남일꾼인 양건 비서도 그런 오산을 하다니, 아버지가 왜 개성공단만은 손대지 않았는지 계산했어야 한다.



 비난을 일삼다 갑작스레 당국대화를 제안하면 낯뜨거울 수 있다. 작년 9월 미뤄놨던 ‘추석 상봉’을 써먹어 볼까 생각 중이다. 이달 말 설 명절 계기 이산상봉으로 슬쩍 포장만 바꾸면 될 테니까. 그런데 박근혜의 생각과 예상 반응이 궁금하다. 오늘밤엔 2005년 평양을 방문했던 박근혜와 아버지가 나눈 대화 녹취록이나 들춰봐야겠다. 그때 배석한 장성택은 또 뭔 얘기를 했을까 궁금하다.



이영종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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