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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역사] 한명기 "한반도에 외세 불러들이는 숙주는 북한"

-미우나 고우나 북한 끌고 가야 4강 해법
-G2시대 한반도…병자호란 파국서 배워야
-말과 행동, 이념·실천 괴리…망국 지름길

■방송 : JTBC 정관용라이브 (15:00-16:30)
■진행 : 정관용 교수
■출연진 : 한명기 교수

◇정관용-방금 보셨다시피 한반도 주변의 정세, 매우 시끌시끌하고 어지럽습니다. 우리가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할지 참으로 고민이 깊어지는 그런 시점인데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오늘 한 분의 역사학자를 모셨습니다. 지난해 역사평설 병자호란이라고 두 권짜리 책을 내셨는데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선정한 2013 올해의 좋은 책 10권 안에 드셨고요. 명지대학교 사학과의 한명기 교수를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한명기-안녕하십니까?

◇정관용-저희가 교수님을 모신 게 병자호란 책 서문에 이렇게 쓰셨어요. 우리가 반추해 봐야 할 G2시대의 비망록이다. 여기에 저희가 살짝 꼬였습니다, 사실. 병자호란과 G2시대.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습니까, 우선?

◆한명기-G2 그러면 1945년 이후에 세계 패권을 좌지우지했던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중국이 그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이제 앞으로의 세계질서를 두 강대국이 이끌어간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나 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일방적으로 미국 입김 속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오다가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떠올라서 주변의 정세가 변하게 되면 아마 상당히 한반도에 큰 파장이 밀려올 텐데.

◇정관용-최근에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이니 또 집단적 자위권이니 하는 게 다 미국의 힘을 일본이 대신 발휘하는 그런 양상이고.

◆한명기-네, 맞습니다.

◇정관용-그것은 곧 중국을 겨냥한 것이고 바로 그것을 지금 분석해 주신 건데.

◆한명기-그러니까 병자호란이라는 전쟁도 기본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명나라라고 하는 유일한 강대국이 동아시아 질서를 좌지우지하다가 만주족에서 일어난 청나라가 명나라에게 도전하면서 한반도가 그 양자 사이의 갈등구조 속에 끼어들었다가 결국 굉장히 크게 얻어맞았던 전쟁이기 때문에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하고 오늘날 이제 G2시대가 개막되는 양상하고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는 거죠.

◇정관용-명나라가 그러면 오늘날의 미국, 청나라가 오늘날의 중국. 너무 단순대입입니까?

◆한명기-그렇게 기계적으로 대입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마는 전체적으로 한반도 주변에서 파워시프트라고 해서 어떤 열강간의 힘의 교체가 생기게 되면 그 교체 때문에 한반도로 밀려오는 여파 때문에 우리가 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라고 하는 사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건 없는 셈이죠.

◇정관용-제가 조금만 더 틀을 넓혀보면 병자호란 이전에 임진왜란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한명기-네, 맞습니다.

◇정관용-임진왜란이 선조 때 있었고 선조 다음에 광해군을 지나 인조 때 와서 병자호란이 나왔단 말이에요.

◆한명기-네, 그렇습니다.

◇정관용-그러면 일본이 또 임진왜란을 일으킬 만큼 커진 과정부터 사실 조금 더 길게 분석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그 대목 어떻게 보십니까?

◆한명기-명나라가 건국된 것이 1368년, 정확히 14세기 후반입니다. 그래서 14세기 후반부터 대충 한 16세기 중반까지는 팍스 시니카의 입장에서 동아시아 최강국의 위치를 유지를 했는데.

◇정관용-명나라 하나가?

◆한명기-그렇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중반쯤 오면 명나라가 크게 쇠퇴하거든요. 그런데 이에 비해서 일본은 16세기 중반부터 조총 전래라든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전반적인 군사력이나 국제 감각이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리고 은 생산량이 대폭 확대되면서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굴기하죠. 그런데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자가 16세기 후반에 한 100년간 분열되어 있던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나니까.

◇정관용-일본 최초의 통일이라고 볼 수 있죠?

◆한명기-그렇습니다. 전반적인 국력의 향상에다가 통일 이후에 생긴 자신감이 지금 쇠퇴해가고 있는 명나라에게 우리가 도전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 야망이 바로 중국을 향하게 되고 중국과 일본 사이에 다리처럼 끼어 있는 한반도로 이른바 임진왜란이라고 하는 전쟁이 폭발하게 된 것이죠.

◇정관용-그 당시에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우리는 명나라를 치러 갈테니 조선은 길만 내다오.

◆한명기-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정관용-이래서 시작된 전쟁 아니겠습니까?

◆한명기-예, 맞습니다.

◇정관용-그런데 조선은 그럴 수 없다 하다 보니까 전쟁이 된 거죠.

◆한명기-그러니까 당시 조선은 사실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군사적으로 그렇게 갑자기 확 커졌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정관용-몰랐죠.

◆한명기-전통적으로 문화적 우월의식이 크다 보니까 히데요시의 그런 가도입명이라고 해서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달라, 이런 얘기를 상당히 하찮게 들었던 것이죠.

◇정관용-그만큼 명의 쇠퇴라고 하는 게 기본에 깔려 있던 거군요.

◆한명기-그러니까 명의 쇠퇴와 맞물려서 상대적으로 일본의 힘이 커지다 보니까 역시 그것도 전체적으로 한반도 주변에서의 열강의 파워시프트라고 할 수 있겠죠.

◇정관용-그러면 그 당시에 일본을 오늘날의 어디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조금 어려운가요, 그건?

◆한명기-그건 조금 다르다고 보는데 오늘날 중국이 그 당시의 일본이고 그 당시의 명나라가 오늘날의 미국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하죠.

◇정관용-임진왜란이 끝난 후의 일본은 병자호란 당시에는 큰 변수가 안 됩니까? 이제 병자호란은 명, 청, 조선 사이만 분석하면 됩니까? 일본까지 포함시켜야 됩니까?

◆한명기-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일본이 명을 정복하겠다라고 하는 시도가 결국 한반도에 대한 침략으로 일어났는데 명나라가 조선에 참전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단 일본군을 조선에서 저지 하는데는 성공을 하죠.

◇정관용-성공했죠.

◆한명기-그런데 그 과정에서 명나라는 어마어마한 전비를 소모합니다. 그 당시 주요 화폐가 은인데 은으로 쳐서 어떤 학자에 따르면 대략 한 1200만냥 정도를 소모했다.

◇정관용-우리나라도 요즘 돈으로 말하면 얼마나.

◆한명기-요즘 화폐가치로는 따지기 상당히 어려운데요. 대신 하나 준거 틀이 뭐냐하면 1600년대 초반에 명나라가 토지에서 거두는 1년 세입이 400만냥 정도 됐다고 하니까 거의 3년치 세입에 해당할 만큼 어마어마한 액수죠.

◇정관용-중국 전체의 세입?

◆한명기-그렇죠.

◇정관용-대단하군요.

◆한명기-그러니까 그 돈을 조선전쟁에서 소모하다 보니까 명나라의 국력이 전반적으로 쇠퇴하죠.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이른바 만주지역에서 여진족들이 커가지고 나중에 청나라가 되는 세력을 확장시키니까 이제 임진왜란 끝나고 나면 명일구도에서 명청구도로 바뀌게 되죠. 그러니까 이제 어떤 구도가 형성이 되냐하면 조선은 사실상 임진왜란을 계기로 해서 일본에 대한 원한이 극도로 높아졌는데 이것이 다시 왜란 끝나고 나서도 만주 쪽으로부터 밀려오는 외압에 직면하다 보니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나 원한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또 아닌 거죠. 일본하고 만약에 관계가 이렇게 될 경우에는 이게 양쪽에서 적을 만드는 셈이 되니까.

◇정관용-협공 당하는 거죠.

◆한명기-그렇습니다. 어떤 구도로 놓고 보면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이 일어나면서 조선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존재감이 오히려 더 커지게 된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정관용-어쨌든 임진왜란 이후에 명나라는 국력쇠퇴가 가속화되고 그 틈을 타고 청나라는 훨씬 더 세졌는데 그로부터 광해군을 지나 인조시대에 와서 병자호란이 벌어진단 말이죠. 어떤 과정을 겪어서 전쟁까지 오게 된 겁니까?광해군 때는 어땠고 인조 때 어땠습니까?

◆한명기-역사의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청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에 설사 조선이 아무리 외교를 잘했다고 하더라도 청의 침략을 끼어 있는 나라가 피할 수 없었을 거다,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어떤 아주 상세한 흐름을 보면 광해군 정권 무렵에는 광해군 자신이 임진왜란 자체를 몸으로 직접 경험했던 사람이다 보니까 명나라하고 너무 밀착해서 만주, 청하고 관계가 화되면 속절없이 명청 대결구도 속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서 양자 사이에서 상당히 양다리를 걸치는, 이른바 중립적인 행보를 보였죠. 그런데 문제는 이 광해군이 내정에서 상당한 실정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실정 때문에 1623년에 자신의 조카인 인조에게 쿠데타를 만나서 쫓겨나게 되죠.

◇정관용-인조반정.

◆한명기-예, 맞습니다. 그런데 유교정치에서는 아무리 국왕이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신하가 병력을 동원해서 왕을 쫓아내는 것은 패륜이거든요. 그래서 인조정권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족한 정권의 정당성을 명의 어떤 승인을 통해서 아무래도 커버하려고 하겠죠. 그러다보니까 여기서 어떤 문제가 생기냐면 명은 이렇게 정당성이 희박한 인조정권을 승인하는 대가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정책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인조정권은 사실상 어떤 대세하고는 거리가 멀게 친명적인 방향으로 가면서 청하고는 이렇게 되는 정책으로 사실은 추구를 하다보니까.

◇정관용-구체적으로 인조에 넘어오면서 균형, 중립외교가 사라지고 청나라랑 갈등이 더 빈발하게 됩니까?

◆한명기-우선 친명정책이 확고해 지니까 청하고의 관계에서는 사사건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큰데 특히 문제가 된 것은 1622년 무렵에 지금 북한 미사일 발사하는 곳이 철산이라고 있지 않습니까? 철산 앞바다에 가도라고 하는 섬이 있는데 그 섬에 명나라 장수가 한 수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가도의 동강지기라고 하는 군사기지인데요. 그 군사기지를 명이 설치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청을 견제하기 위한.

◇정관용-그렇죠.

◆한명기-그런데 명나라는 인조반정 이후에 가도에서 소요되는 군수물자를 전부 조선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이 친명정책을 쓰는 과정에서 가도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하다 보니까 청하고 관계는 날이 갈수록 악화될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친명정책이라고 하는 정책의 추구가 궁극적으로는 언젠가 청의 침략을 부를 가능성이 높은 대단히 농후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정관용-그래서 결국은 청의 침략을 당하게 되고 두 차례나 침략을 당했죠.

◆한명기-네, 맞습니다.

◇정관용-그리고 왕이 머리를 내리찧는 최고의 굴욕이라고 하는 그 과정의 대처 과정에서는 제대로 했습니까, 조정이?

◆한명기-지금도 우리가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약소국일 수밖에 없는데 당시에도 그 구도는 바뀌지가 않았죠.

◇정관용-그렇죠.

◆한명기-청이나 명이나 일본에 비해서는 조선이 군사적으로 상당히 약자였는데 문제는 군사적 약자가 강대국들끼리의 패권다툼에 아무런 준비 없이 말려들 경우에는 이건 우리의 의지나 의사하고는 전혀 관계없이 그 흐름 속에 빨려들어가서 침략을 받게 되는데 인조정권은 아쉬운 점이 뭐냐하면 정권을 잡은 이후에 겉으로 내세운 표방은 청나라하고 싸우겠다, 이런 표방을 했습니다.

◇정관용-준비를 안 했어요?

◆한명기-그렇죠. 문제는 그러한 표방을 하면 이게 군사적, 재정적으로 나름대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인조정권 역시 광해군 정권을 비판하면서 등장했지만 집권 직후에는 집권층의 여러 문제 때문에 내정을 추스르는데에도 상당히 곤란을 겪게 되죠. 그 와중에 사실은 어떤 재정적 준비나 군사적 준비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구호만 난무하다가 결국은 침략으로 휘말리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됩니다.

◇정관용-임진왜란이라고 하는 7년에 걸친 뼈아픈 그런 걸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광해군 때도 인조 때도 내부의 군사력을 키우고 이런 게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왜 못합니까?

◆한명기-그 전체적인 틀로 보면 역시 임진왜란의 피해가 너무 크다 보니까 7년 정도의 전쟁 피해를 입었으니까 그걸 복구하는 데 최소한 50년 정도는 걸리겠죠.

◇정관용-전후복구 하느라 군사력 확충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명기-네, 맞습니다. 그런데 국제정세라고 하는 게 우리 의사와는 관계 없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급변해버리니까 내정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외적인 국방력 강화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이제 그야말로 속절없이 말려들어갔다.

◇정관용-병자호란을 당할 때 인조정권 내부에 이른바 당파싸움 이런 건 어땠습니까? 척화파, 주사파 이런 게 있지 않았었나요?

◆한명기-척화파.

◇정관용-주화파.

◆한명기-맞습니다. 지식인들 자체가 어렸을 때부터 청나라 만주족은 오랑캐고 오로지 한족만이 중화라고 하는 인식을 머릿속에 콱 박힐 정도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청나라가 명에 버금갈 정도로 군사력이 커져가지고 우리 역시 명과 마찬가지로 황제국을 칭하겠다 이렇게 얘기했을 때는 이 사람 머릿속에서는 그걸 용인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전체 신하의 한 97, 98% 정도는 청나라 오랑캐를 황제라 칭하는 것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

◇정관용-준비도 안 해 놓고?

◆한명기-이런 주장이 한 98%였고 대충 한 1, 2% 정도가 우리가 현실적으로 놓고 볼 때 저 청나라의 무력을 당할 능력이 있느냐. 섣불리 전쟁에 돌입했다가는 나라가 결단날 것이다. 이런 소수파의 목소리가 있었습니다마는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현격하게 비중 차이가 나다 보니까 인조가 최종적으로 교통정리를 해 줬어야 하는데 인조는 사실상 다수파의 의견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었죠.

◇정관용-태생부터 인조반정을 하면서 그런 걸 명분으로 내세웠으니까.

◆한명기-맞습니다.

◇정관용-1, 2% 소수파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신하가 있나요?

◆한명기-역시 최명길이라는 인물이 가장 병자호란 국면에 조선에서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죠.

◇정관용-어떤 일을 했습니까?

◆한명기-이렇게 얘기를 하죠. 조선이 어차피 무력 상으로는 청을 당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왕이나 98%의 척화파는 청하고 지금 싸우자고 얘기하는 거고. 그런데 이제 싸우자고 얘기하면서도 어떤 모순을 드러내느냐 하면 청군이 쳐들어올 경우에는 강화도로 들어가서 항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최명길은 거기에 반대를 하는 거죠. 싸우려면 제대로 싸우자. 이게 무슨 얘기냐면 청이 만약에 조선을 침략할 경우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곳이 압록강 아니겠습니까?

◇정관용-그렇죠.

◆한명기-그런데 압록강에서 방어를 하지 않고 왕과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간다는 얘기는 청을 깊숙이 끌어들인다는 의미하는데 최명길이 어떻게 생각했냐면 그렇게 될 경우에 강화도로 들어간 왕과 조정은 버티겠지만 육지에 남아 있는 백성들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든지 죽든지 알아서 해라, 이런 차원의 얘기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최명길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예 진짜 싸우겠다라고 하는 것이 본심이라고 한다면 온나라의 정예병을 이끌고 압록강변으로 가서 거기서 진짜 한번 결사적으로 싸워보자. 그러면 승부가 거기서 날 테니까 그 상황에서 이후에 협상이 이루어지니까 조선이 최소한의 피해를 보면서 청하고의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데 정작 병자호란 당시에는 인조나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정관용-맞아요.

◆한명기-그러니까 말과 행동, 그리고 이념과 실천 사이의 괴리가 사실 당시 인조정권에게는 상당히 큰 문제였다, 이렇게 진단할 수밖에 없는 거죠.

◇정관용-교수님 방금 말씀 들어보니까 백성들을 얼마만큼 생각하는지도 드러나는군요. 조정만 생각하느냐, 백성을 먼저 생각하느냐, 그 대목도 인식 차이에서 드러나는 것 같고요. 그러다가 병자호란의 치욕까지 가게 된 그 과정을 오늘날 G2시대에 다시 한 번 곱씹어보자 이 말씀이신데 오늘 교수님의 말씀 쭉 들어보면 현실적으로 주변강국들, 우리 보다 세다는 거 인정하자. 또 그들의 미묘한 변화, 우리가 정확히 현실을 간파해야 한다. 또 전통적인 어떤 혈맹관계 등등에 너무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런 주장하신 것 같은데 좀 구체화시키면 우리는 그러면 미국하고 일본하고 중국하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명기-지금 한미동맹이 유지되고 있으니까 한미동맹을 가장 큰 틀로 삼아야 되겠죠. 그런데 이게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과정과 병자호란으로 말려들어가고 있던 역사적 현실을 놓고 보면 사실 어느 순간이 되면 강대국들은 자기들이 추구하는 세계전략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이 전략을 바꿀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사실 강대국들의 어떤 동맹관계를 기본적으로 믿어야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한국이 가장 심각하게 피해야 될 건 강대국들의 갈등구도 속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그러려면 외교를 잘해야 되는데 그 외교를 잘한다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추상적이고 이게 구체성이 떨어지는 일이죠. 그러면 미국, 일본, 중국 모두하고의 관계를 잘 유지하자.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스스로의 어떤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노력을 해야 되는 거고 그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시간을 확보하면서 평화의 시간 동안 능력을 키워서 이 능력을 키운 것에 입각해서 나타나는 존재감이 높아지게 되면 강대국의 조정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상당히 상식적인 얘기입니다마는 제가 볼 때는 그런 대처 외에는 우리가 특별히 생각할 게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관용-일단은 미국, 일본, 중국 등과 다 개별 관계에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리고 그 시간을 길게 갖는다. 그런데 현재 걸림돌은... 일본과는 일본이 요즘 과거사 문제라든지 평화헌법 등 도발을 해서 거기가 조금 변수지만 미국, 중국과는 우호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고요. 그 안에서 우리의 힘과 위상을 키우자. 그 말씀은 어떤 방법입니까? 국방력 키워서 가능할까요? 저는 우리 국방력 아무리 투자해봤자 일본, 중국 절대 못 따라가는데요.

◆한명기-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한반도 주변에서 힘의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가 위기에 빠지거나 전쟁터로 내몰린 것이 조선시대에만 크게 세 번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청일전쟁. 크게 보면 러일전쟁도 그 범주에 들어가는데 그 시기에 비해서는 우리의 역량이 커진 게 사실이죠.

◇정관용-물론 그때보다는 커졌죠.

◆한명기-저는 그렇게 생각하죠. 지금도 우리가 커졌다고 하지만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굴기로 인해서 야기되는 변화를 거스르거나 막아낼 정도의 능력은 갖고 있지 않죠.

◇정관용-없죠.

◆한명기-문제는 뭐냐하면 저는 예를 들면 이렇게 예를 듭니다. 농구경기에서 한 2분 정도 남겨놓고 A팀, B팀이 싸우는데 A팀이 B팀에게 10여 점을 지고 있다. 그러면 그 10여 점을 어떻게 뒤집어보려고 노력을 해 보고나서 지는 것하고 해 보지도 못하고 어 하다가 지는 것하고는 전혀 다른데.

◇정관용-다르죠.

◆한명기-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위정자들이 근본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져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맹자라는 책에 제가 책에도 썼습니다마는 7년 된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해서 먹어야 낫는다, 병이. 이런 얘기가 나오거든요. 환자하고 보호자는 절망합니다. 지금 집에는 한 달 묵은 쑥도 없는데 어디 가서 3년 묵은 쑥을 구할 거냐. 그리고 문제는 3년 묵은 쑥이 없다고 한탄만 하면서 세월을 보내겠습니까? 그건 아니겠죠. 당장 나가서 쑥을 뜯어 와야 그게 하루 지나면 하루 묵은 쑥이 되는 거고 한 달 지나고 1년 지나고 3년 지나면 3년 묵은 쑥이 되는데 설사 우리 세대는 그걸 못 먹고 죽는다 하더라도 뜯어놓으면 다음 세대는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위정자들이 생각을 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디어라든가 비전이 생기지 않을까.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관용-그만큼 절박한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할 것을 해야 한다.

◆한명기-네, 맞습니다.

◇정관용-2분남은 농구경기의 감독들은 작전타임을 10초마다 부르더라고요. 그렇게라도 해야 된다는 말씀이신데. 우리가 시간관계상 북한과의 관계 문제를 거론 못했습니다마는 아마도 거기서 남북관계를 잘 활용하면 우리의 힘과 준비를 키운다는 면에서 어떻게 활용가능한지, 아니면 오히려 더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지 정말 정밀하게 분석해 봐야 될 대목인 것 같고요. 너무 직접적으로 여쭤봅니다마는 지금 쭉 말씀하신 그런 견지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난 1년, 몇 점 주시렵니까? 외교, 남북관계.

◆한명기-글쎄요. 저는 현실외교 전문가는 아닙니다마는 역시 지금의 4강 구도에 동아시아의 격변 상태에서 외세의 입김을 불러들이는 어떤 기본적인 숙주가 북한인데 결국 미우나 고우나 북한을 어쨌든 우리가 대한민국 주도로 해서 끌고 가는 방향으로 해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 이 4강구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관용-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지난 1년 몇 점?

◆한명기-좀 바꿔야 되지 않겠습니까? 한 60점 정도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정관용-60점?

◆한명기-네.

◇정관용-역사 속에서 얻는 이런 지혜가 오늘날 앞으로를 대비하는 곳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고요. 오늘 귀한 말씀 주신 한명기 교수 자주 모시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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