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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 '스펙 모범생' 만 뽑는 대기업 공채 확 바꾸고 …

능력 중심의 채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도입된 마이스터고는 ‘스펙 과잉 시대’를 해결할 대안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26일 만난 서울 수도전기공고 학생들. 마이스터고인 이 학교의 올 2월 졸업예정자 취업률은 94%에 이른다. [김성룡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개포동의 마이스터고인 수도전기공고. 방학을 하루 앞둔 3학년 2반 교실은 왁자지껄했다. 이 학교는 입시 경쟁의 정점인 서울 강남에 있다. 그러나 대학에 떨어졌다고 풀 죽은 학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입학할 때부터 입시를 머리에서 지웠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3년간 직업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다. 정태웅(18)군은 “중 3 때는 외고에 간 친구가 부러웠지만 지금은 창업·유학 같은 더 큰 미래를 또래보다 먼저 그릴 수 있는 내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해 3학년이 되는 김가람(17)양은 중3 성적이 상위 5%에 드는 우등생이었다. 마이스터고를 간다고 하자 주변에선 고개를 저었다. 김양은 “여성 대통령이 나왔듯 기술 분야에서도 여성에 남아 있는 유리천장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마이스터고생 “창업·유학에 더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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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의 당찬 꿈이 커가고 있는 마이스터고는 2010년 생겼다. 올해로 두 번째 졸업생이 나온다. 전국 마이스터고 1회 졸업생 전체의 평균 취업률은 92%다. 인문계 고등학생이 4년제 대학을 거쳐 취업하는 비율(약 42%)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수학능력 시험과 대기업 공채라는 뻔한 길을 벗어난 도전에 대한 보상이다. 마이스터고가 한국에선 특이한 길 대접을 받지만 외국인에겐 한국의 학력 인플레와 스펙 과잉이 더 낯설다. 세계적인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떠오르는 태양』에는 주인공이 인구 대비 박사학위 소지자가 가장 많은 도시를 “(미국) 보스턴”이라고 하자 상대가 “한국의 서울”이라고 고쳐주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한국IBM 셜리 위 추이 대표는 “스펙 쌓기에 몰두하면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기르기 어렵다”며 “그래서 우리는 스펙보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갈 능력이 있는지, 얼마나 빨리 업무를 습득할지 등을 보고 직원을 뽑는다”고 말했다.

 수능에서 공채로 가는 외줄타기 속에서도 과감하게 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20~30대도 늘어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 기업인 ㈜비타민하우스에서 개발업무를 맡고 있는 박다정(26)씨는 부산대 원예생명학과 석사 출신의 재원이다. 영어 등 스펙도 남부러울 게 없다. 주변에서 모두 대기업 취업을 권했다. 그러나 박씨는 평소 눈여겨보던 이 회사를 지원했다.

“대기업엔 없는 책임·권한에 자부심”

그는 “대기업은 제한적이고 틀에 박힌 업무만 보게 된다”며 “내가 제품을 직접 개발하고 마케팅까지 도맡아 세계적 히트작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합성수지 바닥재를 만드는 녹수의 김해인(27) 주임은 미국 섬유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 유턴했다. 그는 “매년 30%씩 성장하는 매출, 진취적인 최고경영자 등을 보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어 입사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찬밥 취급을 받지만 외부 시각으로 보면 한국 강소기업은 썩 괜찮은 직장이다. 소프트웨어 강소기업인 마이다스아이티의 김승진(29)씨는 미국 동부의 명문 보스턴칼리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부모의 권유로 귀국했지만 곧 미국으로 돌아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인간적인 사내 분위기, 자유로운 의견교환이 가능한 조직 문화에 반해 미국으로 갈 생각을 접었다”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중소기업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한국 젊은이 실력 안 밀려

 해외에도 길은 열려 있다. 윤지은(27)씨는 미국 뉴욕의 한 식품회사에서 매출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영어 점수도 높지 않았다. 해외 취업에 눈을 돌린 이유도 스펙을 쌓기 위해서였다. 윤씨는 “부족한 영어 점수를 올리려 공부를 하다가 외국 회사에 이력서를 보내기 시작했다”며 “그러다가 지금 회사에 영상으로 만든 이력서를 보냈는데 합격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엄청난 스펙의 경쟁자에 기가 죽어 있지만 해외에 나가면 한국 젊은이의 실력이 절대 밀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독일 기업 한트만에서 일하고 있는 강주연(37)씨는 한국 중소기업에서 일한 경력을 토대로 독일 기업으로 이직했다. 전 직장의 거래처이던 한트만에서 그의 독일어 능력과 근무 태도를 높이 평가해 특채했다. 강씨는 “독일은 학생 때부터 기업에서 실습을 할 정도로 현장 경험을 중시한다”며 “한국처럼 성적만 올리고 스펙만 쌓은 뒤 취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직접 부딪쳐야 이룰 수 있는 창업도 청년의 특권이다. 종이를 이용한 장난감인 ‘페이퍼 토이’를 만들어 현재 디즈니의 라이선시 파트너로 성장한 모모트의 박희열(30) 대표는 취업을 못할 것 같아 창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호서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다니며 받은 장학금 50만원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스펙이 좋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끈기 있고 열정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했다. 소셜데이팅 업체 이음의 박희은(27) 대표도 대학 시절 창업에 뛰어든 대표적인 여성 벤처인이다. 그는 “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게 청년들의 특권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처럼 ‘책상 스펙’이 아닌 ‘현장 스펙’이 인정받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부의 몫이자 부모 세대의 책임이다. 박철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한국은 유치원부터 입사까지 약 30년간을 시험에 치여 산다”며 “젊은이가 중소기업·창업·외국취업 등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세훈 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대출을 받으려면 같은 신용도라고 해도 중소기업 직원은 대기업보다 금리가 높고 대출 금액도 작다”며 “이런 불합리한 점부터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 ‘스펙 과잉 시대’를 벗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직원을 채용하는 기업도 용기를 내야 한다. 1인당 4269만원인 스펙 쌓기 비용을 감안하면, 지난해 하반기 삼성그룹 공채 지원자 10만 명이 쓴 사회적 비용은 4조원이 넘는다. 삼성의 직무적성검사(SSAT) 등 인·적성 검사는 ‘신종 고시’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적성 검사 관련 수험서는 300종에 육박한다. 뽑는 사람이 바뀌지 않으니 뽑히려는 사람의 부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02년 청년층이 꼽았던 취업 5대 스펙은 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이었다. 2012년 조사에선 여기에 봉사·인턴·수상경력이 추가됐다. 한 기업 관계자는 “튀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직무와 아무 관련 없는 아프리카 연수까지 갔다 오는 지원자가 있다”고 말했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원자들이 준비 없이 SSAT를 본다면 역량 평가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고시 준비하듯 SSAT를 보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부속품처럼 쓸 사람을 뽑을 것인지 창조적인 사고와 기술력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인재를 뽑을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실패 경험 채용할 때 반영을”

정지훈 명지병원 IT융합연구소장은 “기업들이 대졸 ‘스펙 모범생’이 아니라 실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 창업을 해본 경험, 도전해서 실패해본 경험 등을 파격적으로 채용에 반영해야만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일률적인 공채에서 전문성 있는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대기업이 먼저 변해야만 채용 시장 전체가 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지는 있지만 알짜 회사를 몰라서 못 가는 정보 부족은 정부가 메워야 할 틈이다. 김종우 마이스터고 지원센터장은 “한국에는 2만 개 이상의 직업이 있지만 일반 학생이 알 만한 직업은 10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진화 부산대 인력개발원장은 “새로운 산업 영역에서 강소기업이 속속 생기고 있지만 학생들, 특히 지방 학생은 상대적으로 정보가 늦다”며 “구인·구직 사이의 미스 매치를 해소할 수 있는 정보 인프라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이스터고=미래 유망 분야의 전문 인력을 키우고 청년층의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됐다. 독일어로 장인(匠人)을 뜻하는‘마이스터’에서 따왔다. 학생들은 3년간 산업맞춤형 직업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한다. 100%에 가까운 높은 취업률 덕분에 마이스터고의 평균 입학 경쟁률은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특별취재팀=김영훈·윤창희.손해용·정선언·김영민 기자, 뉴욕=이상렬 특파원, 파리=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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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