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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최악의 순간, 찌푸려진 눈살 … 펴지지 않던 그때



①“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

커버스토리



12월 13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면 기사. 제목은 ‘천만군민의 치솟는 분노의 폭발. 만고역적 단호히 처단’이었다. 만고(萬古)란 오랜 세월을 말하며, 역적(逆敵)은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사람을 말한다. 기사 옆엔 두 손이 수갑에 묶이고 호위 군관에 의해 뒷덜미가 잡힌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사진이 있었다. 이 기사의 맨 마지막은 “판결은 즉시 집행되었다”고 돼 있다. 그는 40여 년간 북한 정권의 핵심인물이었으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매제, 현재 김정은 정권의 2인자였으나 사진에 나온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이미 조사 과정에서 얻어맞은 듯 왼쪽 눈두덩은 부어올라 있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재판관 세 명이 그에게 부과한 죄명은 국가전복음모행위(나라를 뒤집는 음모를 벌였다). 단 한 번만의 재판으로 처형이 진행된 것이다. 왕조국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야만적인 행위였다. 이 장면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잔인함을 전 세계에 알리는 끔찍한 사례였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②“모든 게 사라졌다.”



11월 8일 오전 8시 필리핀 중부 타글로반 지역에 태풍 하이옌이 상륙했다. 거센 비바람에 지붕은 날아가고, 집 안으로 밀려 들어온 바닷물은 금세 가슴 높이까지 차 올랐다. 손끝에서 놓쳐 파도에 휩쓸려간 아이를 찾는 부모의 울부짖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태풍 가운데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것으로 꼽히는 태풍이었다. 중국어로 ‘바다제비’를 의미하는 하이옌은 순간최대풍속이 초속 105m를 기록한 수퍼태풍이다. 초속 35m를 넘으면 기차가 탈선할 정도니 그 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강풍과 건물 2층 높이를 넘길 정도의 해일로 61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1800여 명이 실종됐다. 가옥은 무너졌고, 시신은 도처에 쌓였다. 400만 명의 이재민, 140억 달러(약 14조830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필리핀 중남부 도로와 전력망 등이 초토화되는 등 모든 게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하이옌을 올해 세계 최악의 재해로 꼽으며, 하이옌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의 결과로 분석했다.





③“숭례문은 대한민국의 얼굴”



5월 4일 오후 2시 서울 숭례문 앞. 박근혜 대통령이 노란 한복을 입고 연단에 섰다. 박 대통령은 숭례문 복구사업 완공식에서 “숭례문은 우리의 민족혼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며 “숭례문 복구가 우리 문화의 저력과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08년 2월 10일 한 노인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불탄 숭례문은 5년간 240여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우리에게 되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준공 5개월 만에 숭례문 부실 복구의 실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20여 곳의 단청이 떨어져 나갔으며, 목제 기둥과 일부 추녀(처마와 처마가 만나는 부분에 걸치는 건축부재), 사래(추녀 끝에 잇댄 짧은 서까래) 등이 갈라지는 문제점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게다가 최근엔 금강송이 아니라 러시아 소나무 목재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부실 복구의 책임자를 찾아 엄중 문책하라”고 지시했다.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이 일로 물러났다.



뉴스1


④“소풍 가고 싶어요.”



10월 24일 오후 8시40분. 울산 울주군 이서현(8)양의 집. 계모 박모씨는 32분 동안 서현양의 머리와 가슴, 옆구리를 닥치는 대로 때리고 있었다. 2300원을 훔치고도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9시45분쯤 “친구와 아쿠아리움에 소풍 가고 싶다”는 딸의 말에 박씨는 다시 폭행을 시작했다. 이렇게 서현양은 계모에게 맞아 목숨을 잃었다.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졌고, 그 가운데 몇 개가 폐를 찔러 사망했다. 심지어 박씨는 딸이 사망한 후에도 몸에 남은 멍을 없앤다며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서현양이 당한 학대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비일비재한 아동학대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아이의 마음과 미래까지 망가뜨리는 아동학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피해자는 2003년 2900여 명에서 지난해 6400여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동학대를 일삼는 부모는 친권을 박탈하고 최고 무기징역형을 받게 하는 아동학대 범죄 특례법이 만들어졌다.



뉴스1


⑤“국정원이 ‘트윗봇’을 썼다.”



11월 21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이정회 부장검사는 기자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을 브리핑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를 비난하는 등 선거에 관여한 흔적이 있는 트위터 글이 총 121만228건이라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 중 86%인 104만 2116건에서 같은 내용 글이 2개 이상 동시에 등록된 흔적이 발견됐다. 국정원 직원들이 글 여러 개를 한꺼번에 올리기 위해 자동 프로그램, 즉 트윗봇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트위터에서 수십 개의 계정을 만들어 신문 기사 등을 수십~수백 개씩 퍼 나른 것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올 한 해 동안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이를 근거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이 일을 계기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받는 등 개혁의 대상이 됐다. 또한 국정원 댓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사 책임자와 서울지검장이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낯 뜨거운 싸움을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⑥“뒷줄부터 들어가!”



7월 18일 오후 5시30분 충남 태안 안면도 앞바다. 충남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 198명이 해병대 캠프 훈련을 받고 있었다. 보트를 타는 훈련을 마친 80명은 구명조끼를 벗고 바닷가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때 한 교관이 “수영 한 번 하자”며 학생들을 한 줄에 10명씩 세웠다. 그리고 뒷걸음으로 바닷가에 들어가게 했다. 뒷줄부터 바다에 들어가던 학생들은 갑자기 갯벌의 깊은 웅덩이인 ‘갯골’에 빠져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이때 높은 파도가 치면서 23명이 물에 빠졌다. 교관은 호루라기를 불 뿐 구명장비를 던져주지도 않았다. 결국 고교생 5명이 물에 휩쓸려 실종됐다. 사고 당시 교관은 인명구조 경험도 자격증도 없는 아르바이트생이었고,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교사와 교장은 인근 식당에서 회식을 벌이다 오후 8시쯤 나타났다. 시신은 그 다음 날 발견됐다. 지난 23일 현장 교관과 업체 대표 6명 모두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유족들은 형량이 대부분 가벼운 금고형에 그친 법원의 판결에 반발했다.



뉴스1


⑦“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



4월 26일 국무총리실 산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인터넷 홈페이지(www.nssc.go.kr)의 국민신문고엔 익명의 제보가 들어왔다. “신고리 1·2호기에 설치된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는 내용이었다. 제어케이블이란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신호를 주는 안전장치다. 원안위는 한 달 후인 5월 28일 신고리 1·2호기, 신월성 1·2호기에서 문제점이 있음을 밝혀냈고, 신고리 2호기, 신월성 1호기의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검찰은 원안위의 고발 내용을 바탕으로 수사를 벌여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새한TEP와 케이블을 제조·공급한 JS전선, 그리고 원전을 운영·관리하는 공기업 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관계자들의 비리를 밝혀냈다. 이들의 비리로 온 국민은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사태) 공포 속에 더운 여름을 참아야 했고, 국가적 피해액만도 9조9000억원이 넘을 정도였다. 현재 원전 23기 중 6기가 가동중단 상태여서 고통은 올겨울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⑧“HASTATI(하스타티·로마군의 중무장한 창병)”



3월 20일 오후 2시 KBSㆍMBC 등 방송사와 농협ㆍ신한은행 등 금융사 전산망이 일제히 마비됐다. 누군가 이미 8개월 전부터 전산망 시스템에 몰래 침투해 악성 코드 70여 종을 심어놓은 것이었다. 오후 2시가 되자 방송사·금융회사의 PC와 서버 4만8000대가 파괴됐다. 시민들은 극심한 불편을 겪어야 했고, 금융업무가 중단되는데 따른 피해도 당했다. 전산 서버에 심어진 악성코드를 분석한 결과 컴퓨터의 부팅 관련 영역(MBR)이 파괴된 부분에서 ‘HASTATI(하스타티)’라는 로마어가 나왔다. ‘하스타티’는 로마 군대의 전투대형에서 가장 선봉인 1열에 서는 중무장 창병(槍兵)을 뜻한다. 1열이 무너지면, 2열이 나서기 때문에 추가 공격을 예고하는 문자였다. 실제로 6월 25일엔 청와대 홈페이지가 변조되고, 일부 언론사의 서버가 파괴되는 등 또다시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이와 같은 사이버 테러의 배후는 북한으로 밝혀졌다. 공격을 당한 서버에서 북한의 IP가 발견된 것이다.



문화일보
⑨“피의자 이석기씨, 계십니까?”



8월 28일 오전 8시10분 국회 의원회관 520호. 국정원 직원 20여 명이 통합진보당(통진당) 이석기 의원실에 도착했다.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려 한 것이다. 국정원 직원이 문을 열고 “피의자 이석기씨, 계십니까”라고 묻자 의원실 직원들은 “국정원 직원 나가세요” “가서 (인터넷)댓글이나 달아”라고 말하며 영장집행을 막았다. 하지만 영장집행 전인 이날 오전 7시50분쯤부터 이 의원실의 창문엔 블라인드가 쳐졌고, 안에선 직원 한 명이 문서를 파쇄기에 넣어 잘게 조각 내는 모습도 포착됐다. 결국 이틀간에 걸쳐 압수수색은 이뤄졌다. 현직 국회의원 사무실에 대한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사상 처음이었다. 이 의원을 비롯한 통진당 관계자들은 정부를 뒤집으려는 모의를 했다는 이유로 현재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11월 5일 통진당의 설립 목적과 강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신청했다.





⑩“허리 툭 한 차례 쳤다.”



5월 9일 오후 4시 55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혼자 귀국했다. 수행원도 없이 손가방 하나만 든 모습이었다. 윤 전 대변인은 5월 5일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동행했다. 한국시간으로 5월 10일 오후까지 예정된 일정이었다. 중도 귀국한 윤 전 대변인은 주미 대사관의 인턴으로 근무하는 여대생을 성추행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윤 전 대변인은 해외순방 수행 중 경질됐다. 윤 전 대변인은 귀국 후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허리를 툭 한 차례 치면서 ‘앞으로 잘해’라고 말했다”고 말한 것이다. 피해 여대생이 미국 경찰에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 her buttocks without her permission)”고 진술한 것과 상반된 해명이었다. 윤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은 아직 처리되지 않았으며 그는 여전히 김포 자택에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이 지난 19일 선정한 ‘세계 8대 굴욕 사건’에도 이름을 올렸다.



글=강홍준 기자·황유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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