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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희망 꿈꾸며 그들은 메밀국수를 먹었다

일러스트=홍주연


추운 겨울날 따끈한 국물이 그립거나 연말이 되면 생각나는 동화가 있다. 일본 작가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 그릇』이다.

[박신영의 명작 속 사회학 (25)]『우동 한 그릇』



섣달 그믐날(음력 설날 전날) 밤 10시, 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유명한 우동집인 북해정에 허름한 차림새의 어머니와 두 아이가 들어선다. 어머니는 우동을 1인분만 주문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어본다. 주인은 그들의 딱한 사정을 눈치채고 1.5인분의 우동을 준다. 다음 해에도 세 모자가 찾아와 우동 한 그릇을 주문한다. 그 다음 해에는 2인분을 시킨다.



주인은 2인분 같은 3인분을 담아 준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진 빚을 이제 다 갚았으며 이날 먹는 북해정의 우동 한 그릇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그들의 대화를 들은 주인 부부는 부엌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후 주인 부부는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면 탁자를 비워두고 세 모자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14년 후 섣달 그믐날, 드디어 세 모자가 북해정을 방문한다. 그동안 그들은 외가 쪽 지방으로 이사해 살았던 것이다. 의사와 은행원이 되어 고향에 방문한 아들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우동 세 그릇을 시킨다. 이 사연을 들은 북해정의 손님들은 모두 감동한다.



이 동화는 1989년 일본 국회에서 한 의원이 낭독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다 울린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는 IMF 체제 몇 년 후 소개돼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배려의 힘을 알려주는 필독서가 되었다. 그런데 이야기에 나오는 그 세 모자는 왜 해마다 우동집에 갔을까? 외식할 만한 형편도 아니면서? 그날 꼭 우동을 사먹어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그들은 꼭 그날 우동을, 아니 메밀국수를 먹어야만 했다. 우리나라에는 『우동 한 그릇』으로 번역됐지만 이 동화의 원제는 『한 그릇의 메밀국수(가케소바)』였다. 일본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이면 메밀국수를 먹는데, 해를 넘기면서 먹는 메밀국수라는 뜻에서 ‘해넘이 메밀국수(도시코시 소바)’라고 부른다. 17세기 무렵 에도시대부터 생긴 풍습인데, 지금도 섣달 그믐에 반드시 메밀국수를 먹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요새는 식당에 가서 먹기보다 섣달 그믐에 대청소를 하고 집으로 배달시켜 온 가족이 다 함께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먹기도 한다. 아마 어린 친구들은 만화영화 『짱구는 못 말려』에서 이 장면을 본 적도 있을 것이다.



이 풍습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일이나 잔치에 국수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긴 국수 가락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는 설도 있고, 훌훌 국수 가락을 넘기듯 한 해를 모두 넘겨버린다는 의미에서 먹는다고도 한다. 또 메밀국수는 질기지 않고 잘 끊어지기에 지난 한 해의 나쁜 일들을 다 끊어버리고 새롭게 신년을 맞이하는 뜻에서 먹는다는 설도 있다. 한편 에도 시대의 도시 상인들 사이에서 시작한 풍습이어서 돈과 관련한 설도 있다. 예전에는 금은세공사가 작업장에 흩어진 금가루를 모을 때 메밀 반죽을 이용했다.



메밀 반죽으로 경단을 만들어 금가루가 떨어진 곳에 굴려 금가루를 묻힌 후, 이 경단을 물에 넣어 금가루만 바닥에 가라앉히거나 불에 구워 금을 빼냈다. 그래서 메밀은 금, 즉 돈을 모으는 성질이 있다고 여겨 새해의 행운을 비는 의미로 메밀국수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유래를 생각해 보니, 아마 『우동 한 그릇』의 가난한 세 모자는 메밀국수를 먹으며 고생한 기억을 끊어버리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훌훌 넘겨버리고, 어서 빚을 갚고 생활이 여유롭게 되기를 빌었을 것 같다. 아아, 그들은 새해의 새 희망을 위해 꼭 메밀국수를 먹어야만 했다.



자, 그 기원이야 어떻든, 이제 2013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시간, 우동이건 소바건 라면이건,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며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길.



박신영『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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