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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덕현의 귀촌일기] 새로 사 주든가!

귀농수필가
남덕현
애비야! 애비다. 새해가 밝았다고 곧 인사 오겠구나. 벌써 마음이 설레고 기다려진다.



 아무리 손자·손녀가 귀엽다 해도 나는 내 새끼 얼굴 보는 게 제일 좋더라. 너 혼자 내려와도 섭섭지 않다는 애비의 말은 진심인 줄만 알거라.



 그런데 제발 빈손으로 오거라.



 네 주머니 사정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사정 좀 봐달라는 애기다. 네가 들으면 서운할지도 모르겠지만 할 말은 하련다.



 도시에서 쓰던 물건 좀 가져오지 말란 얘기다. 네가 다녀갈 때마다 필요 없는 물건이 하나 둘 늘어서 이제 감당이 안 된다.



 시골에서 옷 다려 입을 일이 뭐가 있다고 다리미가 웬 말이며, 식기세척기는 또 뭐고, 두 늙은이 얼마나 어지르고 산다고 청소기는 또 웬 말이냐. 소용도 없거니와 시골집과 궁합도 맞지 않는 생뚱맞은 물건이 아닐 수 없다. 손자가 신던 신발, 며느리가 입던 코트, 네가 입던 양복, 하나같이 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패션이다. 그렇다고 멀쩡한 물건을 버릴 수도 없어서 여기저기 쟁여 놓다 보니 시골집이 터져 나가기 일보 직전이다. 묵혀 두기 아까워서 어쩌다 한 번 그 물건들을 신고 걸치고 나서면 내가 봐도 민망하다. 도대체가 위아래로 어울리는 구석이 한 군데가 없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작년에 네 아들 녀석을 데리고 시골 장에 같이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이 시골 노인네들 옷차림새를 보더니 나한테 그러더구나.



 -할아버지, 시골 사람들은 패션을 몰라! 패션의 사각지대야, 사각지대!



 어찌 아니 그렇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군가 입기도 싫고 버리기도 아까운 옷을 받아다가 치장을 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애비야! 도시에서 뭐 가져다주면 시골 사람들이 다 고마워하며 껌벅 죽는 줄 안다면 그건 오산이다.



 도시에서 필요 없으면 시골에서도 필요 없고, 도시에서 버리기 난감하면 시골에서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 주기 바란다. ‘시골에나 갖다 주지 뭐!’ 하는 고약한 마음이 온전히 그 물건에 깃들어 온다는 사실을 너는 아느냐? 그동안 네 마음이 상할까 봐 내가 한 말들은 진심이 아니다. 멀쩡한 물건을 왜 버리느냐, 시골 노인네들 아무거나 입어도 상관없다 등등의 말들은 애비의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 주기 바란다.



 그런 줄만 알고, 이번에는 제발 빈손으로 오거라. 시골집이 고물상도 아니고 당최 처치 곤란이요, 기분도 썩 좋지 않구나. 그래도 섭섭하게 어떻게 빈손으로 가느냐고?



 그럼 새로 하나 사 주든가!  



남덕현 귀농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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