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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은 개인·도덕 차원 아닌 구조·권력의 문제"

라자라토 그의 관심사는 다양하다. 그는 ‘비물질 노동(immaterial labor)’ ‘생명 정치(biopolitics)’ ‘인지 자본주의(cognitive capitalism)’ ‘임금 체계의 붕괴’ ‘포스트사회주의 운동’을 다뤄왔다. 주저로는 『부채인간』 외에도 『발명의 힘』(2002), 『자본주의의 혁명들』(2004), 『정치 실험』(2009) 등이 있다.


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제국이나 왕국이 망하면 새로운 제국·왕국이 들어섰다. 세계 경제가 ‘망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1980년대는 제3세계 부채 위기로 시끄러웠다. 이제는 부채가 전 지구적 보편성을 띠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가 부채가 원인이 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금융위기가 낳은 스타 '부채(負債) 논객'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에 성공한 것도, 프랑스혁명이 발발한 것도 부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Shutdown·부분폐쇄)은 대참사를 예고하는 경고음처럼 들리기도 한다.

세계 경제의 파국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기는 기회를 낳는다. 세계 경제 위기 덕분에 부채 문제에 대한 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부채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책들이다. 원인도 해법도 다양하다.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상충되기도 하는 것들이다.



부채발(發) 경제 위기의 주범이거나 위기를 악화시키는 요인은 욕심·교만·아둔함·비합리성·부패와 같은 인간의 본성·특질, 무책임한 금융·재정 정책을 쏟아낸 미국 공화당 혹은 민주당 정부, 뉴딜 정책을 실시한 플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금(金)본위제 시대의 막을 완전히 내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천문학적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으로 상징되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온정적 보수주의’의 실패, 금융 패권국인 독일의 이기주의, 각국 국가주의의 실패, 미국 헌법을 무시하고 경제 문제에 끼어든 의회, ‘뱅크스터(bankster=banker+gangster·은행가+갱)’로 상징되는 ‘탐욕스러운’ 은행들, 개인의 삶이나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부족한·잘못된 개입, 정치적인 꼼수로 감행한 부자 감세, 지나치게 오래 그리고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된 금리, 주택가격이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헛된 기대, 과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신자유주의 등이다.



『부채인간』의 표지.
낙관적으로 보면, 원인만 알게 되면―쉽지는 않겠지만―원인을 제거하는 게 해결의 출발점이다. 이미 늦었다는 사람들도 있다. 비관적이거나 조소적인 사람들은 ‘미국은 이미 파산했다’ ‘파산도 해법이라면 해법이다’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수메르나 바빌로니아의 왕들, 기독교 성경의 희년(禧年)의 경우처럼 주기적으로 부채를 탕감한 선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쪽저쪽 이야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특히 금융의 책임에 대해서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는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Good Society)』(2012)에서 금융자본주의는 번영의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금융가들을 포함해 부자들이 대다수 사람을 경제적으로 부정한 방법으로 예속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좌파 쪽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도 있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사진)는 프랑스를 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다. 그 또한 금융 위기가 낳은 세계적인 스타라고 할 수 있다. 라자라토가 쓴 『부채인간(La fabrique de l’homme endette, The Making of the Indebted Man)』(2011)은 우리말을 비롯 프랑스어·영어·스페인어·터키어 등 11개 언어로 번역됐다.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를 배출한 이탈리아에서 라자라토는 1급 마르크시스트 이론가다. 그가 『부채인간』에서 수행한 일은 니체·마르크스·푸코 등의 논의를 넘어서는 종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주장은 마르크시즘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라자라토는 영화·영상 분야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내년 3월 2일까지 계속되는 애니미즘 전시회(일민미술관)에 참가한 자신의 영상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미술관 복도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기자가 영어로 질문하면 라자라토가 이탈리아어 억양의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그는 섣부른 예측을 하지 않는 신중한 철학자였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내게 왜 이 질문을 하는가.”



-한국의 화두 중 하나는 창의성·창조성의 문제다.

“1970년대 중반 시작된 신자유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20세기 후반 이후 포스트포드주의(Post-Fordism)는 노동자들에게 창의성을 요구한다. 인적 자본의 개념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은 신자유주의다.”



-부채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는 세계화의 핵심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정치적인 구조물인 부채의 일차적 책임은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전략이 구사하는 가장 근본적인 무기다. 채무-채권 관계는 자본과 노동이라는 관계를 대체하는 성격도 있다. 채무관계가 생산을 둘러싼 관계에 선행한다. 이제 계급투쟁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착취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채무-채권이라는 이분법을 무대로 형성되고 있다. 임금 노동자와 비임금 노동자, 취업자와 실업자,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차이도 이제 의미가 없다. 구분이 무의미할뿐더러 불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관계는 개인 차원에서 내면화돼 인간의 본질을 규정한다. 부채가 도덕적 가치로 내면화되면 삶을 통제하게 된다. 이제 채무-채권관계는 서구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사회관계다.”



-부채 문제와 관련한 문화적 차이는 어떻게 보는가. 크레디트 카드 사용을 꺼리는 국민, 문화적 환경도 있다. 같은 국가 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부 사람들과 다르지 않나.

“물론 문화적 차이는 있다. 일본·독일, 개신교·가톨릭 문화 등 차이는 있다. 독일인들은 그리스 사람들이 게으르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부채 위기는 국가의 차이나 문화적 차이를 초월하는 것이다. 부채 위기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이 있다. 일본의 경우도 부채 부담이 심각한 나라다.”



-『부채인간』은 부채와 죄책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동양의 ‘수치심 문화(shame culture)’가 서양의 ‘죄책감 문화(guilt culture)’와 상이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동양의 상황은 잘 모르겠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부채를 진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한다. 게르만 계통의 언어, 예를 들면 독일어의 경우 죄(Schuld)와 부채(Schulden)는 어원이 같다.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게 되면 죄의식을 갖게 된다. 니체도 이점에 주목했다. 그는 『도덕 계통학(Zur Genealogie der Moral)』(1887)에서 채무관계가 교환관계에 선행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부채 없이 저축하고 재산을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내 경우에도 부채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국가 부채 때문에 빚을 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신생아들은 2만2000유로의 빚을 지고 태어난다. 이탈리아 사람이건 미국 사람이건 국가를 통해 부채를 떠안고 있다.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채 문제에서 개인은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가. 맨해튼칼리지의 찰스 가이스트 경제학과 교수는 크레디트 카드를 제대로 못 갚은 사람들을 위해 의무적으로 카운슬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려면 부채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부채는 개인과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와 권력의 문제다. 부채-채무관계는 왜곡된 권력 관계다. 기술적·경제적, 혹은 금융 차원의 손쉬운 솔루션은 없다. 그 대신 우리가 할 일은 부채라는 체계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부채 탕감을 해법으로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신자유주의하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신자유주의 다음에는 뭐가 오는가.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혁명이 일어나게 되나.

“모른다. 매우 복잡한 문제다. 확실한 것은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리스크,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원인을 위기에 대처하는 치료약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위기의 원인에 대한 진정한 토론, 논의가 없었다. 그래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당신은 마르크스주의자인가.

“항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작업해 왔지만 30년대나 60년대식의 마르크스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단점을 해부해 오히려 자본주의를 구원했다는 말도 있는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는가.

“1929년 위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노동·국가·자본이 타협과 개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론적·운동적 차원에서 마르크시즘은 지극히 약하다. 소련도 공산당도 사라졌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힘이 없다. 전 세계 차원에서도 조직화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과 노동을 중심으로 논의됐는데 오늘은 채무 관계가 중심이다. 노동자 수가 증가했지만 말이다. 이제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혁명의 정의 자체가 새로운 논의를 요구한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가.

“내가 알기로는 중국에 그런 움직임이 없다. 사회민주주의적 해법을 가능케 한 조건도 유럽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부채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의미한다.”



-『부채인간』에 대해서는 입증보다는 선언(manifesto)적 성향이 더 강하다는 비판도 있다. 해결책도 약하다는 의견이 있다.

“마르크스가 수행한 역할처럼 내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술하는 것이다. 또한 내게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책을 여러 권 냈는데 어떻게 작업하는가.

“책을 숙독하고 논점을 비교한다.” 



온라인 중앙일보·김환영 중앙 선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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