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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 나야 제맛 욕지 감귤, 고흥 유자 그리고 벌교 참다래

1 욕지 감귤은 제주 감귤에 비해 못생겼지만 그 맛만큼은 훨씬 진하다
과일은 보통 가을에 가장 많이 수확된다. 사과가 그렇고 배가 그렇다. 가을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포도 역시 빼놓을 수는 없고 늦가을의 진미 단감과 홍시 역시 가을을 가을답게 만들어주는 과일들이다. 겨울에 제철을 맞이하는 것은 오직 제주에서 수확하는 감귤밖에 없다. 여기까지가 도시 사람들의 상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본격적으로 찬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어야 새콤달콤해지고 과육이 탱글탱글해지는 남해안의 과일들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정환정의 남녘 먹거리 <8> 남해안 과일

현지인도 잘 모르는 귀한 욕지 감귤
감귤은 제주에서 난다. 아니 많이 난다. 한반도의 모든 감귤이 제주도에서만 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살고 있는 통영에서도 아주 적은 양이지만 분명히 감귤을 수확한다. 그래서 심지어 통영 사람들조차 그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올해는 특히 더 그럴 기다. 워낙에 바람이 많이 불어가 나무들이 자꼬 죽었으이 수확도 많질 않아. 그래 밖으로 내갈 게 있겠나. 알고 주문하는 사람들한테 보내주기도 모자란 판이니.”

‘고작’ 감귤을 사러 1시간 남짓 배를 타고 찾아간 욕지도에서 나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20여 년 전부터 욕지도에서 감귤농사를 지어 오셨다는 할아버지는 올해 작황이 영 좋지 않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아버지가 가리킨 곳을 돌아보자 정말 가지가 뚝뚝 부러진 나무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감귤밭은 피해가 크질 않았단다.

“욕지라 해서 다 감귤을 지을 수 있는 것도 아이고 딱 여 도동에서밖에는 안 자라지. 그러니 밖으로 내갈 것도 벨로 없고.”

그건 사실이었다. 나와 아내도 우연히 시장에서 본 ‘못생긴’ 감귤을 보고는 신기한 마음에 사먹었는데 그 맛이 일반적인 제주 감귤과는 천양지차였던 터라 매년 겨울이면 잊지 않고 욕지 감귤을 찾아온 터였다. 그런데 올해는 시장에서 욕지 감귤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종자야 제주에 심은 거랑 다를 게 없지. 나무를 전부 제주에서 갖고 왔으니까. 근데 흙이 다르다 안 카나. 거는 모래랑 화산재로 이뤄진 기고 여는 전부 황토니까 그리 맛이 다른 기다.”

욕지 감귤의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진하다’. 새콤한 맛뿐 아니라 달콤한 맛 역시 굉장히 도드라진다. 입안에서 여운이 오래가고, 그래서 보통의 감귤을 까먹듯 한 박스를 옆에 두고 내내 먹기엔 부담이 된다.

“그래도 제주 것보다는 오래간다. 약을 아예 안 친다카믄 건 거짓말이고, 키우는 내내 딱 두 번만 치는데, 그거 말고는 나무에 손을 안 대도 이리 건강하게 큰다.”

제주 감귤이 박스 속에서 며칠을 보내면 물러지는 게 여럿 생기는 반면, 제주의 그것보다 못생겼지만 욕지 감귤은 그 싱싱함을 꽤나 오랫동안 간직한다. 그래서 제주에서도 직접 주문이 들어온단다. 하지만 가격은 비싸다. 제주 감귤 중 상품으로 치는 것보다도 비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비싼 감귤을 몇 박스나 사서 차에 실었다.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2 오랫동안 욕지 감귤을 키워온 할아버지와 할머니 3 고흥 유자는 경남지방 유자보다 표면이 울퉁불퉁한데, 그래서 맛과 향이 더 좋다고 한다 4 참다래에 대한 선입관을 바꾸어준 달콤한 보성 참다래
크고 달고 부드러운 벌교 참다래
욕지 감귤이 2년 전 알게 된 겨울 보물이라면, 벌교에서 만난 참다래는 올해 새롭게 발굴한 성과다. 오랜만에 전남으로 가는 길에 제철을 맞은 꼬막을 구경하기 위해 들른 벌교시장에서 우리는 커다란 망을 가득 채우고 있는 알이 굵은 참다래를 만났다. 그렇다고 흥미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참다래, 그러니까 ‘국산 키위’로 불리던 것을 몇 번 먹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리 큰 인상을 받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게 시큼했을 뿐 아니라 과육이 너무 단단했기 때문에 먹는 즐거움이 반감되었던 터였다. 하지만 아내가 무심코 물어본 가격이 상상했던 것보다 많이 쌌던 터라 얼른 한 묶음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별 기대 없이 입에 넣었는데, 맙소사!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과육 역시 먹기 좋게 부드러웠다. 게다가 그 크기란 뉴질랜드 등에서 수입되는 것보다 월등하게 컸으니, 껍질을 벗겨 먹는 보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제야 아내가 참다래를 팔던 아주머니와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벌교, 보성에서 참다래 농사 지은 지가 좀 됐제. 못 해도 20, 30년은 됐응께. 12월부터 1월까지가 딱 제철이니 질로 맛있을 때지라.”

꼬막과 함께 맛이 들기 시작한다는 남도의 참다래는 신기하게도 많이 먹어도 신맛 때문에 속이 거북해지거나 신물이 넘어오지는 않는다. 순하기 이를 데 없는 달콤함이었다. ‘주먹 자랑 마라’던 벌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움이었다.

고흥 유자로 만든 향주의 상큼한 맛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남쪽의 겨울 과일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자다. 오래전부터 설탕을 버무려 유자청을 만들어 왔으니 그 유명세야 두 번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과일. 하지만 유자로 만든 술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을 해야겠다. 특히 일반적인 막걸리가 아니라 ‘유자향주’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새로운 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유자청을 3년 동안 발효시킨 담에 당귀나 감초 같은 약초를 넣어 숙성을 시킨 것이지요. 일부러 흔들지 않으면 요로콤 투명한 색이 납니다.”

고흥을 지나던 중 들른 휴게소에서 유자로 만든 술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은 양조장에서 우리 부부는 아주 새로운 술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유자향주였다. 알코올 도수는 4도니 부담없이 마실 수 있었는데, 상큼한 맛이 거슬리지 않고 술에 잘 녹아들어 있는 게 무엇보다 반가웠다.

특히 현재로는 고흥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매력적이라 얼른 두 병을 사서 차에 실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통영 시장의 싱싱한 굴과의 궁합을 맞춰 보았다. 아내의 제안에 따른 것이었다.

아아, 그것은 정말이지 절묘한 맛이었다. 해산물과 쌀로 빚은 술의 궁합은 워낙 좋은 데다 새콤한 감귤류와 굴의 조화는 두말할 것도 없었으니 그 이상 더 좋은 마리아주를 찾기도 힘들었다. 여수 교동시장에서 사온, 말린 삼치와의 조합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좋은 술이 있으니 독한 주정에 감미료를 섞어 만드는 대량생산 소주 따위는 댈 게 아니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꽤나 즐거운 겨울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아기 때문에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매년 겨울 우리는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즐거워졌다. 남쪽의 겨울이 맛있게 깊어가고 있었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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