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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만난 역대 대통령 중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기에 앞서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이들에게 보복하지 않고 화해와 용서로 모든 이를 품었던 인간 김대중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리얼리즘으로 찍으세요. 문예작품 심사 가보면 사진 촬영 때 연출을 해요. 원고지 넘기는 것 같은. 그 자리에서 원고 보고 있으면 미리 안 읽었다는 얘기 아닌가요?”

새해 본지에 칼럼 연재하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김우창(77) 고려대 명예교수는 사진기자에게 있는 그대로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평창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김 교수는 두툼한 점퍼를 벗으며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며칠 전 그의 희수연(喜壽宴)을 겸한 문학선집 체념의 조형(나남) 출판 기념 집담회(集談會)에서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어디까지나 현재에 즉해 사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이 생겼어요. 인생이란 게 알 수 없는 것이고, 허무에 닿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너그럽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지요.”

새해부터 중앙SUNDAY에 격주로 연재할 칼럼의 성격을 묻자 그는 나직이 답했다. “신문사 간 다른 견해, 신문마다 다양한 목소리 있는 것이 좋지요.”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다가 영문학과로 옮기셨던 이유가 있습니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철학과 문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젊을 땐 이것저것 방황하게 되지요. 하고 싶은 과를 선택하는 과정이었어요. 영문학을 하려는데 영어 발음이 나빠 걱정된다는 사람이 있는데 달리 볼 수 있어요. 많은 사람이 하면 발음이 달라지죠. 지금 영어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은 인도 영어가 미래엔 표준어가 될지 몰라요. 말을 통일하려는 건 호감이 안 가요. 지금 영어 어휘가 세계에서 제일 많은 건 각국에서 쓰는 영어를 그냥 놔두니 늘어난 거예요.”

-한·중·일 3국 공통 한자 808자를 선정해 함께 쓰자는 건 어떤가요.
“세 나라의 우호 차원에서 괜찮지만 그것도 규정하는 건 좀…. 제가 다른 지면에 썼던 얘기지만 새해부터 시행한다는 도로명 주소 변경도 그래요. 역사적 배경을 지닌 옛터 이름들을 국가가 나서 바꿔버리는 건 쓸데없는 짓이죠. 4000억원이나 들여 할 만한 합리적인 일도 아니고.”

-17일 집담회에서 최근 북한 장성택 처형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요.
“이북이야 그들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사람을 죽이는 데 있어서 그렇게 섬뜩한 방식으로 처리한다는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거죠. 과거 기록사진에서 장성택을 지우는 행위도 현실 정치가 역사를 무시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가까이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한 겁니다. 정치를 잊을 수 있는 삶이 가능해지기를 바라죠. 글도 정치에서 멀리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대학가 대자보에 등장한 ‘안녕들 하십니까’란 문구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안녕하지 못하다’는 그 저간의 뜻에 대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업·교육·의료·노년복지·청년취업 등 지금 터져나온 여러 문제가 우리 사회가 굉장히 변한 것과 관련이 있어요. 의식주(衣食住) 중에서 의와 식은 그런대로 해결이 됐는데 주는 안 됐죠.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집 없는 사람, 이사 자주 가는 사람이에요. 적당한 세를 내고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집이 확보되면 좋을 터이지만 이 땅의 주택 사정은 불합리하기가 그지없죠. 한마디로 자꾸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결혼하는 자식에게 집 구해줘야 한다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젊을 때는 단칸 셋방에서 시작해도 감지덕지했어요.”

-국민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건 정치인들 탓이 크지 않을까요.
“정당들이 그런 중요 사안은 해결하지 못하면서 문제만 일으키기 때문이죠. 정권욕, 누가 권력을 독차지할 것인가에만 욕망이 뭉쳐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정치가 제일 간단한 흥분제였어요. 사람들을 준동시키죠. 학생들이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독일 기민당과 사민당이 연립정부를 세우며 내놓은 합의서를 찾아봤어요. 정책 입안자로 전문가 70여 명이 달라붙어 190쪽에 달하는 소설 한 권 분량 보고서를 냈어요. 살펴보니 시시콜콜 별것이 다 나와요. 이러니 누가 흥분하겠어요. 정치가가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서 구체적 안을 제시하면 국민이 차분히 그걸 들여다보고 판단하겠죠. 정당이 구체적인 생활 문제는 버려두고 사람들을 흥분만 시키니 이 난리가 나는 겁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언급하신 게 화제가 됐습니다.
“수신(修身) 하다 보면 나라에도 힘을 보태야지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문제는 거꾸로 치국평천하를 논하면 저절로 수신이 되는 듯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 산수화(山水畵)를 보세요. 사람 사는 근본 틀을 알려줍니다. 자연을 보라, 이 얘기입니다. 다른 말로, 벼슬 하려 안간힘 쓰지 말라는 겁니다. 한국 사람치고 벼슬 싫어하는 이들이 없지만, 그걸 하지 않아야 한다고 넌지시 눌러주는 거죠. 자연이 더 큰 거라는 걸 묵묵히 웅변하는 게 산수화죠. 조선시대 큰 선비들이 산수화를 즐긴 이유입니다. 심원(心遠)을 시각적으로 은유한 거죠.”

-50여 년 쓰신 글 중에 서른네 편을 골라 묶은 선집 제목이 체념의 조형입니다. 무슨 뜻인지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전편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인식의 형태이자 삶의 태도랄까요.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나무는 스스로에 금을 긋지 않으니, 그대의 체념의 조형(造形)에서 비로소 사실에 있는 나무가 되리니.’ 말하자면 자신의 주관적 개입을 최소화해 나무를 객관적으로 보도록 하자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물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그렇다고 해서 객관적 인지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객관적 인지에 가깝게 가기 위해서는 주관을 없애는 체념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감정을 버리는 것보다 더 깊은 공감, 원초적 자기를 최소로 만들어 객관에 도달하는 걸 뜻하죠. 좋은 시란 결국 객관성 아닐까요. ‘사물 공감’이라고도 부르는 자기를 비우는 체념이자 감수입니다. 릴케 시를 부르는 ‘사물시(事物詩)’란 명칭은 그런 점에서 우리 문단에 주는 울림이 큽니다. 저는 참여시가 그 시절, 그때 국가 상황의 근본에 대해 깨달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합니다. 시인이 교사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새해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칼럼으로 들려주실 말씀이 궁금합니다.
“정치를 잊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정치를 떠나 살기 어렵게 돼 있는 게 현실입니다. 현대사회는 서로들 너무 얽혀 있어서 말입니다. 민주주의도 최선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그나마 악(惡)이 덜한 방책 아닙니까. 보통 사람의 삶을 웬만큼 보장해줄 수 있는, 아니 다 보장은 못 해도 느낌은 알아야 그게 정치이고 정치가 아니겠습니까. 안거낙업(安居樂業)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최선의 정치라고 봅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내 일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돌봐줍니까. 정치가들을 제대로 일하게 하려면 생활 구석구석 사안들을 구체화하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금 상태에서 가는 방향은 민주사회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인데 우리 현실에 맞는 실험을 자꾸 해야 합니다. 책상에 앉아서는 할 수 없죠. 단칼에도 안 됩니다. 그때그때 한 가지씩 고쳐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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