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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과반수 서명 받아 내년 초 개헌안 발의”

27일 국회 의정관에서 열린 개헌 추진을 위한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의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민주당 이석현 의원, 김원기 전 국회의장, 민주당 우윤근 의원, 정종섭 서울대 교수, 민주당 박지원·새누리당 이재오·민주당 유인태 의원. [뉴시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통치불능 상태를 해소하려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 올 한 해 국회 내에서의 각종 개헌 논의를 통해 분출하고 있다. 여야 의원 116명이 가입한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과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소통과 상생을 위한 헌법연구모임’이 대표적이다. 두 모임은 27일 국회에서 합동 워크숍을 열고 개헌 추진 활동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 초 국회의원 과반수 서명을 받아 개헌안을 국회에 발의하고 6·4 지방선거 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통치불능’ 해소 위한 정치권 개헌 논의

정치권과 학계는 현실적 한계를 드러냈던 기존의 개헌 논의와 달리 여야를 망라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엔 뭔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워크숍에는 예결위와 철도파업 관련 상임위 등 산적한 현안에도 50명이 넘는 여야 의원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내년 상반기 분권형 대통령제 등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가 거세게 일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중앙일보가 지난해 7월 19대 국회의원 233명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도 ‘개헌에 찬성한다’는 의원이 202명으로 개헌선(200명)을 웃돌았다.

대통령제 승자 독식 구조 바꿔야
이날 워크숍에서 의원들은 ‘왜 우리 정치는 극한 대립과 투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를 화두로 3시간 넘게 난상토론을 벌였다. 선거 때마다 절반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바뀌는데도 정치는 늘 제자리걸음만 하는 현실에 대한 반성도 뒤따랐다. 발제에 나선 정종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지나친 권력 집중과 1인 독주 현상을 초래하면서 국정운영의 위험성을 고조시켰고 이는 사회통합 실패로 이어지곤 했다”며 “또한 승자 독식의 정치문화가 고착화되면서 대선 때마다 전 국민적 권력투쟁이 빚어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근본적 해결책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제도적으로 분산시키는 것뿐”이라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총리로 권력을 분권화해야 배제의 정치에서 공존의 정치로 나아가고 국민통합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의 민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도 발제에서 “1987년 헌법에 따른 현 대통령제는 권력과 인적·물적 자원을 승자가 독식하는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며 “정치개혁은 ‘all or nothing’의 통치구조를 과감히 바꾸는 헌법 개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다 보니 국회도 입법부 역할보다는 제왕적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베이스 캠프’로 전락하기 일쑤고, 여당은 정권의 방패막이에 급급하게 되며, 이에 맞서 야당도 극한 생존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참석 의원들도 개헌의 당위성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여야가 싸움을 안 하려면 문화를 바꿔야 하고, 그러려면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워크숍에는 새누리당 정몽준·정의화·이재오남경필·이주영·진영·성완종 의원과 민주당 원혜영·박지원·신기남·유인태·추미애·박영선·김진표 의원 등 여야를 대표하는 중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재오 의원과 박지원 의원은 나란히 앉아 귀엣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들 모임은 올해 국회 내에서 개헌의 당위성을 전파하는 데 주력해 왔다. 지난 3월부터 의원들을 초청해 다섯 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열며 의견 수렴에 나섰고 강창희 국회의장과 여야 지도부와 잇따라 접촉해 국회 개헌특위 구성 문제도 조율했다. 이에 강 의장도 지난 7월 제헌절 경축사에서 “내년 초부터 개헌을 본격적으로 공론화해 19대 국회에서 마무리하는 게 옳다”며 힘을 실었다.

의원들 사이에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각종 의원모임에서도 개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은 지난 19일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를 초청해 개헌 토론회를 열고 권력구조 개편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내년 상반기가 개헌 최적기
개헌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최근의 정치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권이 바뀌어도 여야의 첨예한 대립 구조는 전혀 바뀌지 않는 정치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 논의의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야 강경파가 주도하는 강대강 대치정국에 지친 중도파 의원들 사이에서 개헌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민주당 손학규 전 대표와 김황식 전 총리 등 여야의 대권 잠룡들이 올해 잇따라 독일로 연수를 떠나 분권형 리더십을 연구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이번 개헌 추진 모임에 여당 의원 56명과 야당 의원 60명이 회원으로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이렇게 여야가 거의 동수로 참여한 모임은 전례가 없다. 초당적으로 개헌론이 힘을 받을 환경이 조성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개헌이 현실화되기까지는 많은 난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만만찮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국회 차원의 개헌론이 순수성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개헌의 실질적 키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개헌에 적극 나설지도 의문이다. 개헌론이 본격화하는 순간 정국의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내에서는 최근 정치권의 개헌 움직임을 비(非)박계와 야당의 박 대통령 포위 전략으로 의심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여야 지도부가 당을 장악하지 못한 지금은 개헌을 추진할 상황이 아니며 내년 6월 지방선거 뒤 여야에 실세 지도부가 들어서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장으로 삼으려는 야당 입장에서도 개헌안 동시투표가 선거 프레임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막상 개헌특위가 구성돼도 분권형 대통령제와 순수 내각제, 4년 중임제 등을 놓고 단일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난제다. 시간적 한계도 넘어야 할 산이다. 지방선거 이후 차기 대선주자들이 본격 부상하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안은 벽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개헌 추진 의원들은 시민단체와 적극 연대해 개헌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한편 전국 순회 대토론회도 공동 개최해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우윤근 의원은 “현실적으로 내년 상반기가 개헌 최적기”라며 “다음달까지 개헌안 발의선인 150명의 의원을 확보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개헌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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