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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행도 서툰데 신호 보랴, 무전 치랴 … 죽을 맛”

26일 오후 4시쯤 서울 구로역 1호선에서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승무원이 출입문 개폐를 확인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 25일 오후 4시32분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 상행선 서울역 방향 열차가 도착했다. 검은 외투의 사복을 입은 대체 철도 기관사가 교대를 위해 기관사실에서 내리자마자 스크린 도어가 닫혔다. “출입문이 닫힙니다”라는 안내멘트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직 열차에 타지 못한 승객들이 우왕좌왕하자 스크린도어가 다시 열렸다. 열차 문은 세 차례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한 뒤 3분이 지나서야 다음 역으로 출발했다. 이중기 지도운영팀장은 “열차 뒤에 탄 승무원이 신호가 빨간색인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출입문을 닫아버린 거다. 이럴 때 기관사가 신호를 못 보고 출발해버리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열차 지연 과정을 지켜본 승객 이민호(54)씨는 “철도 파업 때문에 아마추어들이 열차를 운행하니까 그런 것 아닌가. 얼마 전에 지하철 문에 걸려서 끌려가다가 죽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나서는 지하철 탈 때 보통 때보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대체인력 투입된 철도운행 현장 가보니

 # 26일 오후 경기도 병점 승무사업소. 열차 승무원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김모(39)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연신 하품을 하며 “밤차를 타게 되는 날에는 업무가 끝나는 지역 합숙소에서 자는데 잠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역할은 객실 내 방송, 출입문 및 스크린도어 개폐 관리, 안전 확인 후 출발신호 등 운전 외의 나머지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다. 김씨는 “출입문 상황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낮에는 잘 안 보여 노하우나 감이 중요한데 나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렵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며 “매일 업무표를 받을 때 특히 사람 많은 출퇴근 차만 안 걸리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3주 동안 단 3일을 쉬었다. 그러나 쉬는 날에도 업무를 보기 위해 원래 직장으로 출근했다. “어차피 파업이 끝나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관사들의 안전 관리가 원래 내 업무인데 부서 인원 대부분이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상태다. 공백이 계속되면 안전에 진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28일을 기준으로 철도파업은 20일을 넘어섰다. 철도 승객의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코레일은 파업에 참가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한 필수 유지 인력(코레일 인력의 약 60%)에 대체인력 1677명(전체의 31.8% 정도)을 투입해 철도 운행률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군 장병, 퇴직 기관사, 내부 기관사 자격증 소지자 등 투입된 대체인력 중에는 기관사·열차 승무원 업무에 서툰 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기다 파업이 사상 초유로 길어지면서 대체인력의 피로도가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지선 못 맞추고, 문 수차례 여닫고
대체인력 중에는 일반 승객이 탄 전동차는 처음 운행해보는 사람도 많다. 특히 파업 후 운행률이 90% 가까이 되는 수도권 전동차의 경우 기관사 면허를 딴 내근 직원이나 인재개발원 교수, 군인 등이 총동원되면서 서툰 대체인력이 투입된 것이다. 코레일 본사에서 영업 업무를 담당하는 대체 투입 기관사 김모(41)씨는 “2009년 철도 기관사 면허를 땄는데 교육용 열차 말고 일반 승객이 탄 열차는 처음 운전해본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파업 직전 사흘 동안 교육을 받고 대체인력으로 투입됐다. 일반 기관사가 자격증을 딴 후 3개월간 베테랑 기관사 옆에서 직접 타고 견습을 하거나 교육용 열차를 모는 일대일 교육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김씨는 “KTX와 새마을·무궁화호, 지하철 전동차가 모두 다니는 구로~회기역 구간이 특히 어렵다”며 “운행 자체가 힘든 나 같은 미숙련자들은 신호 체크, 무전 송신까지 동시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고 말했다.

 대체인력들이 미숙련자이다 보니 안에서는 우왕좌왕이다. 열차가 정지선을 못 맞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경우도 많고, 기관사와 승무원 사이에 사인이 맞지 않아 열차 문을 수차례 여닫는 경우도 다반사다. 승무원 교육 업무만 하다가 이번 파업 때 열차 승무원 업무에 직접 투입된 윤모(38)씨는 “사람 손가락이 문에 끼이면 시스템상으로 열차 출발이 안 되게 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번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 사고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몰리면 패닉 상태가 된다”고 말했다. 윤씨는 “나도 열차 승무원 일은 처음인데 지금은 나보다 더 모르는 군인들이 나에게 자꾸 물어본다. 이러다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군 장병의 경우 전시상태 등에 대비해 일년에 한두 차례 15~20일씩 교육용 열차 운행 교육을 받았지만 일반 열차 운행은 낯설다.

하루 12시간 넘게 일해 … 나흘마다 24시간 근무
대체인력들은 이미 녹초 상태다. 하루 12시간 이상씩 기본적으로 근무를 하는 데다 나흘에 한 번씩은 24시간 근무를 하기 때문이다. 쉬는 날에도 원래 하던 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원래 하던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이 없으니 1인 2역을 하는 셈이다. 대체 기관사 최모(46)씨는 “7일부터 하루도 집에 못 갔다. 긴장이 돼 밥도 자주 굶고 입술도 다 터졌다”고 말했다.

 기관사 등의 피로를 방지하기 위해 법적으로 3시간 이상은 운행하지 못하게 돼 있지만 평시가 아닌 파업 기간인 만큼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대체인력 기관사로 투입된 김모(41)씨는 “운전이 미숙하다 보니 앞 차가 늦으면 뒤 차가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늦어지는데 차에서 내릴 수가 없으니 한번에 3시간 반 이상씩 운전하게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스크린 도어가 없는 수도권 전동차 운행에서 사상 사고가 많이 일어난다는 점이 복병이다. 사상 사고가 생기면 기관사·승무원이 응급처치에 나서야 하고 최소 40분간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 코레일 관계자는 “파업 이후 벌써 5명이나 자살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차가 고장 날 경우다. 특히 겨울철에 기온이 낮아지면 차체 고장이 잦아진다. 일반 기관사들은 차체 점검 업무를 병행해 왔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도 대응이 가능했지만 이번 파업 때 급히 투입된 대체인력은 이러한 대응이 쉽지 않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흘 교육받은 대체인력이 정규직 기관사와 똑같이 차체 고장을 수리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지금까지는 잘 버텼지만 파업이 더 길어지면 언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차체 고장 잦은 강추위가 또다른 복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철도 운행 현장에 투입된 대체인력들은 파업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대체인력을 관리하는 손창익 코레일 수도권 서부본부 구로승무사업소장은 “노조원들 집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국민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복귀해달라’고 사정했다”며 “대통령, 총리, 장관이 나서서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파업을 하고 있는 노조원들이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파업에 참여한 김용진(47) 기관사는 “철도파업은 노사문제인데 국가가 개입한 것”이라며 “요즘처럼 북한이 불안한 시기에 전시에 전동차 운전을 하는 엘리트 군인을 후방으로 파견한 건 문제”라고 말했다. 또 수서발 KTX 논란에 대해서는 “지하철 1호선은 코레일과 서울메트로가 공동 운영하고 있지만 승객들은 그냥 먼저 오는 차를 탄다. 수서발·광명발 KTX는 어차피 노선이 같기 때문에 ‘두 회사가 경쟁하면 더 좋아진다’는 논리는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27일 수서발 KTX 운영법인의 철도사업 면허를 전격 발급하고 민주노총이 이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서면서 노사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가세하면서 문제해결은 더욱 요원해지는 모양새다. 파업이 길어지고 비정상적인 철도운행이 계속되면 안전사고 등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노조가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철도정책기술본부장은 “정부와 코레일, 노조가 3자회의를 열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해결점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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