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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온실가스 감축, 속도 조절 필요한가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최근 경제5단체 등 산업계가 202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 재조정과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 연기를 건의하고 나섰다. “2009년 목표 설정 당시와는 달라진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기본 뼈대까지 허물자는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과도한 감축은 산업경쟁력 약화시킬 뿐이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2008년 우리나라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선포하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2009년에는 온실가스를 2020년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2년부터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시행해오고 있고, 2015년부터는 온실가스를 사고팔 수 있는 배출권거래제도를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최근 온실가스 감축 관련 국내외 환경이 크게 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이를 외면한 채 기존 정책을 고수하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먼저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는 실제 배출량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0년 온실가스 실제 배출량은 6.69억t으로 목표 수립 당시 예측치 6.44억t보다 4% 정도 초과했다. 실배출량 기준으로 추계 분석한 결과 2020년 예상배출량은 8.99억t으로 당초 예측치인 8.13억t보다 10% 이상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BAU 대비 30% 감축 목표도 설정 당시와는 여건이 많이 변화됐지만 국제적 체면을 의식한 정부는 조정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목표 설정 당시 제시했던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의 상용화 지연과 원전 비중 축소 등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490억t)의 약 1.4%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나라가 2020년에 가서 전 세계 감축목표치(30억~70억t)의 3~8%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은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다.



 국제사회의 흐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교토의정서 체제가 선진국의 잇따른 이탈로 사실상 와해돼 실효성 없는 상징적 체제로 전락했다. 지난달 열렸던 제1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구속력 있는 감축목표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중국·인도는 처음부터 교토체제에 들어가지 않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일본·러시아·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은 자국 산업의 경쟁력 보호를 위해 2011년부터 더 이상의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배출량 상위 10대 국가 중 감축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나라는 독일과 영국뿐이다. 특히 일본은 원전 사고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당초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25% 감축에서 3.1% 증가로 방향을 전환했다.



 교토체제의 핵심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배출권거래제 기반의 유럽연합(EU) 탄소시장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붕괴 직전이다. 2008년 7월 t당 34유로이던 배출권 가격은 올 1월 한때 2.81유로까지 떨어졌다가 현재는 4유로 후반 수준이다. 유럽과 탄소시장 연계를 꿈꾸던 호주도 2012년 고정가격 거래제(탄소세)를 도입했으나 지난 11월 탄소세 폐지법안을 상원에 제출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국제 탄소시장의 미래가 불확실하고, 교토체제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우리만 과도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국가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궁극적으로 산업경쟁력만 훼손할 수 있다. 정부는 변화된 국내외 환경에 맞게 감축 정책 조정에 나서야 한다. 202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대폭 축소하고 배출권거래제도 2020년 이후로 연기해야 할 것이다.



박태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



국제 신뢰 잃으면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안병옥
기후변화
행동연구소장
지난 19일 산업계가 정부와 국회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재조정과 배출권거래제 시행 연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가 기후변화 대응 관련 입법 저지와 온실가스 감축정책 무력화에 총력전을 펴왔다는 점에 비춰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률이 정하고 있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의 기본 뼈대까지 허물자는 것은 상식에 어긋날뿐더러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제에도 큰 부담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수정하게 되면 국가가 욕을 먹더라도 기업들의 부담은 당장 줄어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국가 간 협상은 2015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은 이미 나와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과 견줘 2도 이상 상승하는 것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배출량, 역사적 책임, 지불 능력 등 어떤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과감한 감축을 요구받게 돼 있다. 이런 조건에서 국제사회의 신뢰까지 잃게 되면 숙제를 하지 않은 책임은 나중에 더 큰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된다.



 산업계는 감축목표 수정의 근거로 201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예측치를 초과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하지만 2009년까지 연평균 1.5% 증가에 그치던 배출량이 2010년 들어 전년 대비 9.8%나 폭증한 것은 철강산업의 호황에 따른 대대적인 설비 증설에 기인한다. 불과 3년 후인 지금은 어떤가. 정반대의 상황이다. 현재 세계 철강업계의 과잉설비는 5억t가량으로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과잉공급 구조는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는 감축목표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거의 비정상적인 배출량 증가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전 세계 배출량의 약 1.4%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감축목표가 국제사회가 목표로 삼고 있는 감축량에 비해 과도하다는 것도 착시효과를 노린 주장이다. 한 국가의 감축 책임은 단순히 세계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마다 인구와 경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1인당 배출량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0t으로 독일(9.7t)과 일본(10.4t) 등 경제대국들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속도가 GDP 성장률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나라는 고비용·비효율 경제를 대표하는 ‘갈색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은 우리보다 훨씬 기민하다. 미 오바마 정부는 의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명령으로 화력발전소에 대한 탄소배출량 규제에 나서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보다 훨씬 강력한 방식이다. 중국은 올 6월 선전시를 시작으로 11월 말에는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개시했다. 내년이면 중국은 EU에 이어 세계 2위의 탄소 거래시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최근 바르샤바 기후변화 총회에서는 2020년 이후 감축목표를 2015년까지 제출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시간표가 짜였다. 경주 시작을 알리는 방아쇠가 당겨진 셈이다. 이런 마당에 우리는 늦게 출발하자는 산업계의 태도가 과연 현명한 것일까. 정부와 독자들의 냉철한 판단을 기대한다.



안병옥 기후변화 행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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