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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원한 실탄 1만 발, 아베 야심에 디딤돌?

올 초부터 남수단에서 평화 유지 및 재건 활동을 벌이고 있는 우리나라 한빛부대 장병들이 지난달 29일 임무를 마친 뒤 캠프로 복귀한 모습. [사진 합참]


23일 오전 11시53분 일본 도쿄의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 공관. 공휴일(일왕 탄생일)을 맞아 사저에 머물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허겁지겁 공관으로 들어갔다. 이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뒤를 이었다. 지난 4일 새롭게 출범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4인 의사결정기구’에 의한 사실상의 첫 회의였다. 긴급안건은 한국으로부터의 ‘실탄 1만 발 지원 요청’.

 정부군과 반군이 내전 중인 아프리카 남수단의 보르 지역에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하고 있는 한국군 한빛부대(공병대 280명)가 22일 오전(한국시간) “치안 악화에 대응할 탄약이 부족하다”며 유엔에 SOS를 쳤다. 유엔은 “급히 제공하지 않으면 (한빛부대 주둔 구역 내) 피란민들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 정부를 다그쳤다. 한국 정부도 같은 날 오후 11시20분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주변에 한국군과 같은 구경 5.56㎜ 소총 총탄을 대량으로 갖고 있는 곳은 일본 자위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 NHK도 한빛부대장인 고동준 대령이 21일 밤 남수단에 파견된 일본 육상자위대의 이가와 겐이치(井川賢一) 부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탄약 지원을 급히 요청했다고 24일 보도했다. 이가와 부대장이 오노데라 방위상에게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고 대령은 “현재 보르 지역 숙영지의 피란민 1만5000여 명을 지키는 부대는 한국군뿐”이라면서 “주변에는 적군밖에 없다” 고 했다.

 회의의 결론은 “사안의 긴급성·인도성이 극히 높은 만큼 즉각 지원한다”는 것. 오후 2시(현지시간 오전 8시) 남수단 수도 주바의 자위대 부대에서 실탄 1만 발을 실은 헬기가 한빛부대를 향해 이륙했다. 한국의 공식 요청으로부터 15시간 남짓만의 조치였다.

 그러나 하루 뒤인 24일 오전 한국 국방부는 전혀 다른 발언을 내놓았다. 김민석 대변인은 “(한빛부대 주둔지인) 보르 지역은 현재 군사적으로 안정돼 있고 교전도 없다”며 “(일본 자위대로부터 실탄 1만 발을 지원받은 것은) ‘보충(예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임시로 빌린 것이며 (실탄은) 부족하지 않다”고 말했다. 다른 군 관계자도 “빌린 실탄은 우리 군이 공수해오는 대로 곧 (일본 자위대에) 돌려줄 것”이라고도 했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한빛부대가 자체적 방호를 위해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고, 유엔 쪽이 일본에 지원을 요청해 탄약을 받은 것으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탄약을 받은 것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군비 증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교도(共同)통신은 “한국에서는 일 자위대의 활동영역 확대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많다”며 “한국군이 필요한 실탄을 준비하지 않고 자위대로부터 제공받은 데 대해 비판이 나올 것을 피하기 위한 발언”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복수의 외교 관계자는 이날 “당시 현장(남수단)에서 사안이 긴박하다고 판단했던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결과적이긴 하지만 아베 정권이 내걸고 있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정당성을 한국이 ‘홍보’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PKO협력법의 해석에 있어 “탄약 제공은 상정하지 않고 있으며 만에 하나 요청을 받아도 제공하지 않는다”(1998년 무라오카 겐조 관방장관 국회 답변)는 원칙을 고수해 왔다. 아베 정권이 지난 17일 처음으로 책정한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보다 적극적인 국제공헌을 지향한다”고만 표기하고 ‘총탄 제공’을 명기하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한국군에 실탄 제공’으로 너무나 쉽게 이 원칙이 무너졌다. 또 분쟁지역에 무기 제공을 금지하고 있는 ‘무기수출 3원칙’에 대해서도 ‘이번 건은 긴급사태에 있어서의 예외”라며 ‘예외 인정’의 길을 트는 결과를 제공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일본이 전 세계의 안전에 공헌하려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있는 아베 총리에게 있어 이번 (한국의) 요청을 거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권으로선 ‘운 좋게도’ “한국군의 위기상황을 도왔다”는 명분과 ‘적극적 평화주의’의 필요성을 일본 국내와 국제사회에 어필하는 실리를 동시에 챙기게 됐다.

  한국군 군수체계의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다. 한빛부대가 공병 임무를 맡고 파견됐다고는 하지만 허겁지겁 실탄을 빌려야 하는 상황까지 방치한 것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남수단의 일본 육상자위대 또한 비전투부대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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