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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기금 탄탄 … 여론은 관망 … 2009년과 판이 다르다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3일. 국토교통부는 “교섭 대상도, 파업 명분도 없다”고 했다. 설마 쟁의행위(파업)를 하겠는가라는 낙관이다. 노조는 임금 인상과 같은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철도 민영화 반대’를 파업 목적으로 내걸었다. 설령 파업을 하더라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대응하면 여론이 노조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사태가 길어지면 공권력으로 진압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봤다.

 국토부는 2009년의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철도노조는 ‘귀족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노조에 비타협 기조를 유지했다. 결국 노조는 9일 만에 백기투항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파업 전 “무조건적인 파업 철회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노조에 어떤 대가를 주지 않더라도 파업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정부 예상과 정반대다. 정부는 2009년 당시와 파업 쟁점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4년 전 철도노조는 임금체계 조정에 반대하며 파업했다. 불법파업 논란이 일기도 전에 여론은 싸늘했다. 만성 적자를 내는 공기업의 노조가 ‘평균 연봉 5500만원이 적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감이 ‘귀족 노조의 투정’이라는 질타로 이어졌다.

 이번 파업은 그때와 다르다. 노조는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공익 구호를 내세웠다. 법적으로는 불법파업이다. 그러나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파업으로는 비치진 않았다. 고려대 주현우(경영학)씨가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 해제됐다”고 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는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정부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여론이 흐른 것이다.

 정부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한 것 외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든 여론전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애쓰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24일 국무회의에서 “정부가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확고한 의지를 발표하는 것 이상으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에 참가해 “철도노조는 자회사와의 경쟁으로 자신의 추한 모습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은 포착되지 않는다. 오히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집행부를 만나 설득하는 기회는 갖지 못했다. 아마 했어도 듣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불편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대화 배제 원칙을 천명한 셈이다.

 코레일 내부 사정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코레일 노사협력처장은 전국 12개 지역본부장 등 간부들에게 지침을 보냈다. 이 지침에는 “코레일 간부들이 파업에 심정적 동조를 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고 적시돼 있다. 불법으로 규정한 파업을 간부들이 지원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자인한 것이다. 국토부 산하의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코레일 간부 입장에서도 수서발 KTX라는 알짜 사업을 뺏기지 않기 위해 노조원들이 나서주는 걸 고마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7일째 파업을 이어오고 있는 철도노조는 별다른 동요가 없다. 매년 20억원 넘게 적립해온 기금으로 파업 때문에 임금을 못 받는 조합원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금 고갈로 파업 동력을 상실하는 여느 노조와 다르다. 국토부가 한때 불법파업을 이유로 노조 기금 계좌를 동결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도 이 때문이다. 법원에서 신청이 기각되면 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판단해 백지화했지만 장기 파업에 따른 정부의 부담과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여기에다 조합원 대부분이 철도대(현 교통대) 출신 동문이라는 점과 관사 생활을 하며 다져진 가족들 간의 끈끈한 유대감도 파업 동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지순(노동법) 교수는 “철도의 경쟁체제 도입은 국가경영·통치의 영역으로 정부나 정치권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며 “따라서 원칙은 지키되 노사 갈등으로 번진 이상 현장을 챙기며 대화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도 노사관계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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