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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교생 꼭 안아준 근로정신대 할머니

일제 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갔던 양금덕(82) 할머니가 24일 광주시 치평동 NGO센터를 방문한 일본 고교생들에게 강제노역 실상을 들려준 뒤 고노 유타(17)와 끌어안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열시 살(열세 살) 때였어. 지진 땜시 공장이 무너졌는디, 죽기살기로 뛰쳐나와 뒤돌아 본께 건물 입구에 동창 2명이 깔려 죽어 있드랑께. 친구들을 안고 운디(우는데) 몸서리가, 몸서리가 쳐지드만.”

 24일 오후 광주광역시 치평동 NGO센터 교육실. 일제 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끌려가 1년5개월간 강제노역을 했던 양금덕(82) 할머니가 당시 겪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듣고 있던 6명 청소년 중 일부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일본 나고야에서 온 고교생들이었다.

 양 할머니가 얘기를 이어갔다. “중핵교 보내준다는 헌병 말에 속아가꼬 일본 갔는디 왼종일 뱅기(비행기)에 뼁끼(페인트)칠만 시키는 거여. 하도 배가 고픙께 넘(남)의 밭에서 가지를 캐먹기도 혔어.”

 30분 동안 학생들은 양 할머니의 경험담을 숙연히 듣기만 했다. 양 할머니는 “고향 와서도 갖은 멸시를 받음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디, 이참에사(이번에야) 재판에 이겼다”고 했다. 지난달 광주지법이 “미쓰비시중공업은 양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 4명에게 1인당 1억5000만원씩을, 유족에게는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본지 11월 2일자 6면>

 양 할머니는 “반성 않는 일본이 사죄하도록 일본 학상들이 좀 도와무든 좋겄어”라는 말로 얘기를 마쳤다. 얘기를 들은 간베 하루카(17·여·아사히가오카고 2년)는 “공부를 하고 싶다는 어린이를 전쟁에 이용한 옛 일본 제국주의에 분노를 느낀다”며 “60여 년 전 당한 일로 아직까지 가슴 아파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고 말했다. 사토 레이코(17·여·아사히가오카고 2년)는 “언론 등을 통해 한국을 편향된 시각으로 보는 친구들에게 광주에서의 경험을 많이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날 양 할머니와 일본 학생들의 만남은 ‘한·일 청소년 평화 교류’ 행사의 하나로 이뤄졌다. 평화 교류는 2010년부터 광주와 나고야 청소년들이 교차 방문하는 행사다. 일본에서 한국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소송을 돕던 시민단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에 2010년 광주 지역 학생들이 지지하는 편지를 보낸 게 계기가 됐다. 그해 소송지원회가 한국 학생들을 초청했고, 한국에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이 일본 학생을 부르면서 매년 정례 행사가 됐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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