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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행복들 하십니까

권석천
논설위원
크리스마스다. 세상은 철도파업이다, 북한 도발 가능성이다 시끄럽지만 오늘만큼은 모든 걸 잊고 가족과, 연인과 즐겁게 보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불편해할지 모를 얘기를 꺼내려고 한다. 화려한 트리 불빛에 가려져 있는 서울의 어두운 반쪽 얘기다.

  월간지 ‘신동아’의 논픽션 공모(11월호)에서 언론사 시험 준비생 6명의 르포가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남(男), 혼자 죽는다-무연고 사망자 83인의 기록’. 서울에서 아무도 시신을 찾아가지 않거나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는 이들의 삶을 역추적한 내용이다.

 르포에 등장하는 83인은 쪽방촌이나 여인숙 같은 서울의 가장 후미진 공간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가 77명이었다. 서울대를 나온 공무원 출신도, 수억원을 기부했던 전직 사업가도 있었다. 삶의 입구는 달랐지만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았다.

 청년들은 그들의 궤적을 좇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은 실마리를 따라 서울 곳곳을 헤집고 다녔던 성유진(26·연세대 졸업)씨와 이수진(25·성균관대 4년)씨를 만났다.

 -무연고 사망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취재팀원 중 한 명이 친척 장례식장에 갔는데 가족들 모습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가 왜 혼자 숨져야 했는지 의문을 풀고 싶었다.”(이수진)

 -취재 과정에서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구청 홈페이지에 실린 사망자 이름과 주소만 들고 무작정 찾아 헤매야 했다. 멀쩡한 거리를 걷다가도 골목으로 꺾어지면 갑자기 쓰러질 듯한 집들이 나타났다. 서울에 그렇게 많은 쪽방이 있는지 몰랐다.”(성유진)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한국 사회에선 건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거다. 일용직 일마저 못하게 되면 가정이 해체되고, 결국 술에 빠져… 열심히 살려고들 했지만 한 번의 사고, 실직, 사업실패로 희망의 끈을 놓아버렸다.”(이수진)

 “여자들은 혼자 살아도 가족과 만나고 이웃과도 어울리는데 남자들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짐이 되기 싫어서…이웃에서 밥도 주고, 동사무소와 연결도 시켜주려 했지만 삶의 의지가 꺾인 상태였다.”(성유진)

 무연생(無緣生). 취재팀원들이 만든 용어다. 무연사(無緣死) 이전에 연고 없이 표류하는 삶이 있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정부가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그땐 이미 늦는다. 실패의 늪 앞에서 가족과 발버둥을 칠 때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주변 분들이 ‘(사망자에게) 미안하다’고 하셔서 ‘할 만큼 하셨다’고 위로하다 함께 울곤 했어요. 저희 도 알 수 있는 문제에 사회는 왜 관심이 없는지….”

 언론에 몸담은 나는 무엇을 했나. 기성세대는 어떤 노력을 해왔나.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던 목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나. 부끄러웠다. 한 대학 교수는 “한국은 각자 알아서 생존하라는 주의(主義)”라고 했다. “기껏해야 10만원, 20만원인 기초연금 갖고 그 난리였는데, 복지라는 게 우리에게 가능할까요? 기본적인 민주주의 문제로 한 해를 보내고 있으니….”

 오늘 불우 이웃을 위해 지갑을 열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당신이 가진 것들이 요행일 뿐이며, 당신도 하루하루 불안에 쫓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이 확인한 우리의 현안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과 당신 가족의 미래가 걸린 문제일 수도 있다.

 “이제 크리스마스예요. 당신은 무엇을 해왔나요(So this is Christmas. And what have you done).” 존 레넌의 노래 ‘해피 크리스마스’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장관들에게 묻고 있다. 진정 국민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냐고.

권석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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