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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기부도 이젠 깐깐하게 하자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오늘은 성탄절. 그러나 따스함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대표적인 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매년 연말연시에 ‘집중 모금’을 한다. 올해는 지난달 20일 시작했다. 모금 35일째인 어제까지 1998억원이 걷혔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접수된 2061억원보다 63억원이나 적다. 목표 대비 달성률도 64.2%로 지난해(77.2%)보다 낮다.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그렇고, 필리핀의 태풍 재해 때 한 차례 모금운동을 벌인 영향도 있을 거라는 분석이다.

 그 와중에도 눈물겨운 기부 사례는 줄을 잇는다. 지난 17일에는 서울 중구청의 위생원(환경미화원) 9명이 재활용품을 분리 수거해 판 돈 500만원을 기부했다. 여수 미평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매 어린이는 돼지저금통에 모은 28만7650원을 선뜻 내놓았다. 자매의 아버지는 폐지를 모아 파는 기초생활수급자, 어머니는 정신지체 2급 중증장애인이다. 대구의 강효돈(81)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 명예수당으로 나오는 월 3만원을 절약해 31만8300원을 공동모금회에 건넸다. 청주의 노점상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 1억원을 희사했다. 그것도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면서.

 기부는 이제 일상생활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매년 이맘때 우리 집에는 편지가 온다. 나와 아내가 후원하는 말라위·방글라데시 두 어린이의 사진이 들어 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매년 커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TV를 켜면 제3세계 어린이를 돕자는 기부 권유 광고가 자주 나온다. 해외 오지 마을에서 구호활동을 펴는 유명 연예인들의 모습에도 익숙해졌다. 이쯤 됐으면 우리나라 기부 문화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시기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나는 기부자가 자기 권리를 찾는, ‘깐깐한 기부’ 습관이 널리 퍼져야 할 때라고 본다.

 당연히 투명성이 첫째다. 모금 목적이 다양해지고 단체가 많아지면서 어떤 단체에 어떤 목적으로 기부해야 할지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우선은 돈 씀씀이가 맑은 단체라야 한다. 한 회계법인이 재정이 투명한 비영리단체를 선발해 상을 주고 있다. 2009년 대상을 받은 아이들과미래는 이듬해 기부금 액수가 71%나 뛰어올랐다. 2010년 수상한 세이브더칠드런도 2011년에 27%를 더 걷을 수 있었다. 기부자의 눈이 예리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당연하다. 내가 낸 돈이 어느 나라 누구에게 쓰이는지 알 권리가 있고, 모금단체는 상세히 알려 드릴 책임이 있다.

 기부가 늘어나면서 국내 기부단체 간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월드비전·유니세프 한국위원회·대한적십자사·어린이재단 등 200억원 이상을 모은 9개 단체의 총 모금액은 1조549억원이다(2012년 현금 기준). 우리나라의 개인모금 총액이 약 7조900억원인데, 이 중 80%가 종교단체 모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종교단체와 상위 9개 단체의 모금액을 제외하면 불과 몇 천억원이 남는다. 수많은 군소 모금단체들이 이 돈에 의지한다는 얘기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사무총장은 “작지만 특색 있는 목표를 갖고 있거나 서울 아닌 지방에서 활동하는 군소 기부단체들도 주목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건강한 기부 생태계가 조성되는 열쇠는 결국 기부자의 깐깐한 안목이다.

 모금을 위한 마케팅이 정당하고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식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모금활동에 드는 지출을 주저하고 심지어 낭비라는 생각도 해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투명하기만 하다면 적정선의 마케팅 비용은 불가피하다. 최영우 (주)도움과나눔 대표는 “과거 기부금품법(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엔 기부금 모집비용을 2%로 제한했을 정도로 규제가 심했다”며 “건강한 모금단체의 모집비용을 15~35% 선으로 인정하는 게 국제적인 추세”라고 말했다. 모금활동에 드는 비용을 터부시할 게 아니라 활동 자체가 잠재적 기부자를 기부로 이끄는 의미 있는 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의 기부금품법은 모금액에 따라 10~15%의 모집비용을 인정하지만, 아직 글로벌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자. ‘기부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100원 200원씩 기부하는 습관을 쌓아가고 직접 모금하는 경험도 해보며, 어느 단체 어떤 일에 기부할지 잘 고르는 안목을 길러주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 세대만에 원조받다 원조하는 나라가 된 탓에 나 자신부터가 아직 제대로 기부할 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기부의 기본은 개인 기부, 풀뿌리 기부다. 다음 세대마저 몇몇 대기업과 김밥장사 할머니 독지가의 선의에 의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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