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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평화 지키는 헌법으로 지금 일본 일궜다"

23일 팔순을 맞은 아키히토 일왕과 왕족들이 도쿄 왕궁에서 축하 인사를 하러온 시민들 앞에 섰다. 역대 일왕 가운데 재위 중에 팔순을 맞은 것은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이 두 번째다. 왼쪽부터 나루히토 왕세자, 아키히토 일왕, 마사코 왕세자빈, 미치코 왕비. [도쿄 로이터=뉴스1]

팔순을 맞은 아키히토(明仁) 일왕과 취임 1년을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전쟁과 군대 보유 금지’ 등을 규정한 일본 평화헌법에 대해 다른 방향의 언급을 했다.

 23일로 80세가 된 아키히토 일왕의 헌법 관련 언급은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회견은 18일에 미리 진행돼 23일에 맞춰 일본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왕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대한 소회를 밝히던 중 “전후 연합군 점령하에 있던 일본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할 소중한 것으로 삼아 일본국 헌법을 만들고 다양한 개혁을 통해 지금의 일본을 일궈냈다”고 강조했다. 평화와 민주주의가 일본 재건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평화헌법의 의미를 되새긴 것이다. 일왕은 이어 “전쟁으로 황폐했던 국토를 다시 세우기 위해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쏟은 노력에 깊이 감사하며 당시 지일파였던 미국인들의 협력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헌법에 대한 일왕의 인식은 26일로 취임 1년을 맞는 아베 총리와는 차이가 커 보인다. 22일 NHK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한 질문에 “나의 라이프 워크(Life Work)”라고 답했다. 헌법 개정이 ‘일생의 과업’이란 뜻으로 그는 “내가 무엇 때문에 정치가가 됐느냐”고 반문하며 “어떻게든 해내고 싶다”고 했다. 비록 “(차기 중의원 선거 때까지) 3년의 임기가 남아 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정치가는 차분하게 일을 해야 한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전제를 달긴 했다. 하지만 개헌을 향한 숨길 수 없는 의욕을 재차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일왕이 아베 총리와 다른 뉘앙스의 언급을 한 것이 향후 일본 정계의 헌법 개정 논의에 영향을 줄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게 됐다.

 일왕은 회견에서 ‘80년을 돌아볼 때 특히 인상에 남아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난번의 전쟁”이라고 답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한 일본인 희생자가 약 310만 명이라고 한다”며 “다양한 꿈을 갖고 살던 많은 사람이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참혹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땐 이미 중국과의 전쟁이 시작됐고 이듬해(1941년) 12월 8일에는 중국 이외에 미국·영국·네덜란드와 개전을 했다. 종전을 맞은 것은 소학교(초등학교) 마지막 학년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미치코(美智子·79) 왕비에 대한 고마움도 직접 표현했다. “천황이라는 입장에 있는 것은 고독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결혼으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함께 소중하게 여겨주는 반려자를 얻었다”며 “황후(왕비)가 내 입장을 존중하면서 곁에 있어줘 편안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아키히토 일왕은 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 일왕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재임 중 팔순을 맞게 됐다. 또 역대 일왕의 장수 순위로는 네 번째다. 그럼에도 그는 “ 가능한 한 역할을 해나가고 싶다”고 집무에 의욕을 보였다. 일왕 부부는 23일 오전 장남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부부 등과 함께 도쿄 왕궁의 베란다에 서서 몰려든 시민들의 축하 인사에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아키히토(明仁) 일왕=1933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5세 때인 1959년 왕실 전통을 깨고 평민 출신인 미치코 왕비와 결혼해 2남1녀를 뒀다. 도쿄 가쿠슈인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89년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 뒤 즉위했다.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다. 28편의 논문을 일본어류학회지에 발표한 어류학자이기도 하다. 2003년 1월 전립선암 수술, 지난해 2월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았음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5년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를 기리는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하고, 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한국인 유학생 고 이수현씨를 소재로 만든 영화를 관람하는 등 한국에도 상당한 관심을 표명해 왔다. ‘국민과 가까운 왕실’을 표방해온 그는 최근 사망할 경우 350년간 계속돼온 매장 대신 화장을 하기로 결정했고, 내년엔 왕궁의 내부를 최초로 일반에 공개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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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