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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배우고, 집 고쳐 짓고 … 쪽방촌에 희망의 미소

영등포 쪽방촌의 임시 거주시설. 서울시는 올해 225가구에 대한 리모델링을 완료했다. [안성식·김경빈 기자]

서울에 첫 대설예비주의보가 내려졌던 지난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동 426번지 일대 쪽방촌. 500여 명의 주민이 1평 남짓한 쪽방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이곳에 어김없이 겨울 추위가 찾아왔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벅찬 좁은 쪽방촌 골목엔 칼바람이 몰아쳤다. 골목을 걷는 주민들의 입에선 연신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1990년대 초 쪽방촌에 들어와 스무 번째 겨울을 맞는 권석오(79)씨는 이런 겨울이 반갑지 않다. 권씨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7세 때 피란 도중 앞서가던 사람이 밟은 지뢰 파편에 오른팔을 잃고 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팔을 잃은 그날도 요즘처럼 추위가 매서웠다. 그에게 겨울은 끔찍한 기억을 상기시키는 계절이었다.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쪽방에 누워 있으면 온몸이 저려 왔다. 하지만 권씨는 “올해엔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가 올해 말 쪽방촌 441가구 중 225가구에 대한 리모델링을 마쳤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에 든 공사 비용 11억원은 모두 서울시가 부담했다. 서울시는 영등포 쪽방촌의 나머지 216가구도 내년까지 순차적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리모델링 공사로 우중충했던 쪽방엔 새 장판이 깔리고 깨끗한 벽지가 발라졌다. 방마다 전기 난방시설과 이중창이 설치됐고, 벽엔 스티로폼도 덧대 앉아만 있어도 코가 시렸던 지독했던 외풍이 거의 사라졌다. 특히 겨울철 화재 발생에 대비해 화재 감지기, 자동 소화기, 누전 차단기 같은 소방시설도 설치됐다. 권씨의 방도 새롭게 단장됐다. 권씨는 “쪽방촌에 들어온 뒤 첫눈 소식만 들어도 걱정부터 앞섰다”며 “예전엔 자고 일어나면 방안에 둔 슬리퍼가 꽁꽁 얼 만큼 추위에 시달렸지만 이제 걱정을 덜 게 됐다”고 말했다.

 옆집에 사는 이병남(55)씨도 올겨울이 특별하다. 이씨는 한때 전남 나주의 한 건강관리원에서 환자 돌보는 일을 하며 풍족하진 않지만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80년대 말 주식투자로 전 재산을 날렸다. 92년 영등포 쪽방촌에 들어왔지만 세상과 등지고 1년 넘게 방안에서만 숨어 지냈다. 우울증까지 겹쳐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2007년 한강대교에서 투신을 시도하고 이듬해 관악산에서 목을 맸다. 그러나 모진 인생은 죽는 것마저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마다 지나던 행인이 이씨를 발견하고 구해줬다. 그런 이씨에게 쪽방은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울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쪽방촌 분위기에 이씨도 희망을 얻고 있다. 사방이 꽉 막혔던 이씨의 방엔 30㎝ 폭의 창문이 새로 달렸다. 바깥에서 한 줄기 빚이 들어온다는 것은 그를 방바닥에서 일어나게 했다. 이씨는 “새로워진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 알게 됐다”며 “과거 우울했던 기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번 리모델링엔 건축가 등 20여 명의 전문가가 무료로 재능 기부에 나섰다. 재능 기부 참여 단장인 홍익대 한영근(건축학) 교수는 “단순히 추위를 극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삶의 공간으로서의 쪽방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산뜻해진 분위기에 잃었던 삶의 의욕을 되찾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향후 5년간 리모델링 쪽방의 임대료를 일방적으로 올리지 못하도록 건물주와 협의했다.

지난 20일 서울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이 강사(왼쪽)로부터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다. KT에선 올겨울 쪽방촌을 방문해 정보기술(IT)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안성식·김경빈 기자]

 서울역 근처의 동자동 쪽방촌에도 올겨울엔 따뜻한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0일 방문한 이곳에선 정보기술(IT) 공부방 모임이 한창이었다. 성인 남성 2명만 들어가도 꽉 찰 만큼 비좁은 쪽방이지만 주민 4명이 붙어 앉아 강사로부터 아이패드와 컴퓨터 사용 교육을 받았다. KT가 운영하는 봉사단체인 ‘KT IT서포터즈’에서 주민들에게 아이패드·컴퓨터 등 사용법을 교육하고 있었다. 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쪽방이지만 주민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추위도 녹일 만큼 뜨거웠다. 결핵성 늑막염을 앓고 있는 주민 임수만(55)씨는 겨울만 되면 기침이 심해져 하루 종일 쪽방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올겨울엔 교육을 받고 정보기술 활용 능력을 평가하는 정보기술자격(ITQ)시험 자격증까지 획득했다. 임씨는 “여러 컴퓨터 자격증을 획득해 관련 분야에서 일자리를 얻겠다는 목표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 강동근(59)씨도 올겨울을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 평생 컴퓨터 마우스 한번 손에 쥐어본 적 없는 강씨였지만 이젠 인터넷으로 공공근로 일자리를 검색하거나 지인들에게 사이버 연하장을 만들어 보낼 수준이 됐다. 강씨는 “그동안 쪽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는데 컴퓨터를 배우며 예전엔 몰랐던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됐다”고 했다.

 KT는 겨울철 추위를 대비해 동자동 쪽방촌 공용 목욕탕을 리모델링하고 세탁방·샤워부스 등 새로운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동자동 드림 프로젝트’를 내년 2월까지 마칠 계획이다. 조창희 KT 서포터즈 팀장은 “추운 겨울철 공용 목욕탕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쪽방촌 주민들의 현실에 맞춰 편의시설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IT 북카페, 청년일러스트 창작소도 설치해 쪽방촌 주민들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따뜻한 공용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글=손국희·장혁진 기자 <9key@joongang.co.kr>
사진=안성식·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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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