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팥죽·팥시루떡엔 소금만 넣어야 고소한 게 제맛

1 옥루몽의 단팥죽. 견과류·떡을 올린 놋그릇에 나와 향수를 자극한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 팥은 늘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별식과 간식을 대표하는 곡물이었으니까요. 간식으로 먹는 온갖 떡과 팥죽은 물론 팥을 둔 붉은 찰밥도 가끔 맛보는 별식이었죠. 부엌에서 엄마가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팥을 삶을 때는 뭔가 별식이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러니 가슴이 들뜰밖에요.

동짓날 팥 이야기

나이 들어 생각해 보니, 이런 체험은 동아시아 사람들에게만 있을 듯해요. 모찌·화과자·풀빵·팥빙수·양갱·팥소 넣은 중국 빵 등 팥과 설탕을 버무린 맛을 기본으로 하는 간식이 동아시아에서 흔하지만 서양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들지요. 서양 빵들은 버터와 우유가 많이 들어간 느끼한 맛이 많다면 팥과 설탕이 어우러진, 약간 팍팍하면서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은 아시아 사람의 취향입니다. 서양의 빵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단팥빵이 한국 빵집의 중심을 차지한 것도 이런 문화 때문일 거예요.

겨울은 유달리 팥을 많이 먹게 되는 계절입니다. 시루떡과 팥죽 때문이기도 하지만 콩에 비해 팥은 잘 상하기 때문에 냉장고가 시원찮았던 옛날에는 여름에 팥으로 무언가를 해먹을 생각을 잘 못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어릴 적 동짓날 팥죽을 먹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집에선 반드시 하루나 이틀 정도 엇갈려서 팥죽을 끓였기 때문이지요. 조상 중에 무슨 병을 앓아 돌아가신 분이 있는 집안에서는 동지에 팥죽을 먹으면 안 된다네요. 그게 무슨 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여튼 대대로 동짓날에는 팥죽을 끓이지 않았고 저희 대에까지 그 금기는 지켜졌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지요. 겨울 초엽에 뜨끈한 팥죽이 먹고 싶으니, 동짓날을 피해서 끓여 먹었습니다.

2, 3, 4 새로 생기는 팥 디저트 카페들은 매장에 가마솥을 두고 직접 팥을 끓인다(옥루몽). 5, 6 팥을 소로 넣은 카페앙의 앙빵과 앙소보로.
통팥을 무르게 삶아 주걱으로 으깨고, 그것을 체에 내려 끓이는 팥죽은 참으로 번거로운 음식이었습니다. 체에 내린 걸쭉한 팥물에 쌀을 넣고 죽을 끓일 때에는, 밑바닥에 눋지 않도록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합니다. 하루 종일 엄청난 노동을 해야 하는 거지요.

이제 저는 좀 쉬운 방법을 씁니다. 이렇게는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팥을 압력솥에 삶아 물을 조금 넣고 껍질째 믹서에 곱게 갈아 팥물을 만듭니다. 이렇게 하면 껍질의 거친 맛 때문에 맛이 좀 달라지기는 합니다. 할머니는 “이건 팥죽이라고 하는 게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셨지만, 그래도 어쩝니까. 안 해먹는 것보다는 낫지요. 이렇게 만든 팥물을 슬로 쿠커에 쌀과 함께 넣어 끓입니다. 슬로 쿠커는 낮은 온도로 오래 가열하여 눋지 않으므로 그저 긴 시간 놓아두기만 하면 죽이 완성됩니다. 예전 방식에 비하자면 거저먹기지요. 하지만 새알심을 넣는 방식으로 끓이려면 어쩔 수 없이 나무주걱으로 젓는 노동을 감내해야 합니다.

팥시루떡도 겨울에 한 번은 꼭 해먹는 음식이었어요. 뒤꼍에서 검은색 시루를 꺼내다 씻고 팥을 구수하게 삶으면, 식구들이 설레기 시작합니다. 우리 집의 팥시루떡은 대개 세 가지였습니다. 멥쌀가루와 삶은 팥을 켜켜이 넣은 ‘기본적인’ 시루떡, 멥쌀가루에 채 썬 무를 섞어 팥과 켜켜이 안친 무시루떡, 그리고 찹쌀가루와 늙은 호박오가리를 섞어 팥과 켜켜이 안친 찰시루떡.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무시루떡을 구수하다 하시며 잘 드셨지만 어린 저는 물컹하고 삶은 무 냄새 풍기는 그건 별로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건 달착지근한 호박오가리가 든 찰시루떡이었죠.

집에서 만든 이런 떡은 쌀가루와 팥에 설탕을 넣어 달착지근하게 만든 요즘 떡집 떡과는 맛이 달랐습니다. 오로지 소금으로만 간을 한 통팥은 고소한 팥의 풍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죠. 솔직히 말해 요즘 떡은 너무 달아요. 사실 팥시루떡은 물론 송편의 팥소, 수수경단과 인절미의 팥고물에 이르기까지, 설탕은 하나도 넣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소금으로만 간을 한, 구수한 팥떡을 다시 먹고 싶습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