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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100개 키워드 분석

‘안녕’.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흔히 쓰는 말이다. 이 평범한 말이 2013년 12월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는 대학가를 넘어 고등학교,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공원, 전봇대, 아파트 단지에도 나붙고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 대자보를 붙인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일부 대학생은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도 대자보를 붙였으나 철거됐다.



'투쟁·혁명' 운동권 표현 대신 '세상·고민' 일상용어 대부분 …
SNS 단문 익숙 20대 "내 얘기 들어달라" 장문 대자보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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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한 대학생이 쓴 ‘안녕들 하십니까’란 제목의 두 장짜리 대자보였다. 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주현우(27)씨가 실명으로 써서 지난 10일 교내 게시판에 붙인 것이다. 전지를 세로로 펼친 뒤 검은 매직으로 한 줄 한 줄 글씨를 써 내려갔다. 강조하고 싶은 문구에는 파란색으로 밑줄을 쳤다. 전지의 네 귀퉁이는 청테이프를 붙여 고정했다. 여기까지는 1980~90년대 대학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대자보와 비슷한 모습이다.



 하지만 80~90년대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차이가 있었다. 말투와 단어였다. 주씨의 대자보엔 비장한 투쟁의 결의나 노골적인 선동의 문구는 없었다. 특정 정치인을 타도하거나 특정한 목표를 쟁취하자고 하지도 않았다. 다만 철도 파업으로 징계 위기에 놓인 노조원 등에 대해 우호적인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였다. 그러면서 대자보의 뒷부분에 차분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주씨의 ‘안녕’이란 말걸기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전국 100개 이상 대학의 게시판엔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자보가 이어졌다.



 본지는 첫 대자보가 붙은 고려대를 비롯해 부산·서울·성균관·연세·이화여자·인하·전남·중앙대, KAIST 등 전국 27개 대학과 일부 고교생들의 대자보에서 100개를 무작위로 골라 자주 사용한 단어를 분석했다. 단어는 사람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란 판단에서다. 100개의 대자보에 담긴 글자 수는 총 12만 자에 달했다.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안녕’으로 모두 730건이었다. 대자보 한 장당 평균 7.3회의 ‘안녕’이 등장했다는 뜻이다. ‘안녕하십니까’라고 말을 거는 것은 공통적이었지만 본론으로 들어가 세부적인 내용에선 ‘백인백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했다.



 안녕 다음으로 많이 쓰인 단어는 ‘세상·사회’였다. 두 단어를 합치면 317건으로 집계됐다. “안녕하지 못한 세상” “미친 세상” “각박한 세상”이나 “몰상식한 사회” “경쟁 사회” “왜곡된 사회” 등의 표현이 많이 나왔다. 마음 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는 세상과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불만을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자보에는 ‘생각·고민·불안’도 많이 나온다. 세 단어를 합쳐 212건이었다. 서울대의 한 대자보는 “저처럼 사는 게 힘들어서 자꾸만 화가 나는 학우가 있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고 적었고, 서울시립대의 한 대자보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항상 고민이 많았지만 제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안녕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고 했다. 중앙대의 한 대자보는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했지만 하여튼 그런 줄 알았습니다”고 썼다.



‘반미·양키’는 한 번도 안 쓰여



 취업 문제는 대자보를 쓴 학생들을 가장 고민하고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취업과 관련된 여섯 개의 단어(취업·취직·노동·일자리·스펙·알바)는 모두 233건이 나왔다. 부산대의 한 대자보는 “모든 현실을 외면한 채 스펙과 취업에만 몰두하고 있던 것은 아닙니까?”라고 물었고, 성균관대의 한 대자보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우리가 취업이 안 되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고려대의 한 대자보는 “어떻게, 어떻게 취업을 해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더 이상 안정적인 직장은 없습니다”고 적었다.



 공부와 학점에 대한 고민도 못지 않았다. 공부와 관련한 단어들(공부·학업·학점·시험·수업·도서관·과제·토익)은 모두 202건이 등장했다. 중앙대의 한 대자보는 “아등바등 취업준비와 시험공부에 매달린 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신가요?”라며 불안감을 드러냈고, 고려대의 한 대자보는 “열심히 시험을 치고 영어를 공부해도 내가 사는 세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습니다”고 썼다. 연세대의 한 대자보는 “세상이 어수선하고 무엇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데도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시험공부를 한다”며 부끄러워했다.



 과거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쓰던 ‘진군·애국·단결·혁명·해방’ 같은 단어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진군·단결·혁명이란 단어는 각 1건뿐이었고, 해방은 2건, 애국은 3건에 불과했다. 단어를 사용하는 맥락과 의미도 과거 운동권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진군이란 단어는 중앙대의 한 동아리 이름에 붙은 게 전부였다. 한 고려대생은 ‘링컨의 노예 해방’을 언급하며 해방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애국이란 단어를 쓴 성균관대생은 “우리는 모두 다 너무 애국자인데, 하다못해 일본한테 축구라도 지면 화가 나서 잠도 안 오는데 말이에요”라고 했다.



 운동권 용어 중에선 ‘투쟁’이란 단어가 17건으로 비교적 많이 쓰이긴 했다. 하지만 글을 쓴 학생들이 직접 투쟁에 앞장선다거나 누군가의 투쟁에 동참하자는 뜻은 아니었다. 고려대의 한 대자보는 “대정부 투쟁, 이런 건 옛날에 다 끝난 줄 알았습니다”고 적었고, 경원대의 한 대자보는 “투쟁·노동자·시위·집회라는 이름에 막연한 거부감을 갖게 하는 색안경을 빼고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반미나 양키라는 말도 보이지 않는다. 반면 ‘종북’이란 단어는 19건 사용됐다. 대부분 ‘종북 딱지’ ‘종북 몰이’라는 식으로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종북으로 낙인 찍는다며 꼬집는 내용이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인 남록지(21)씨는 “과거 진보단체 등에서 쓴 대자보를 보면 과격한 단어를 선택한 경우가 많아 읽기에 불편했다”며 “이번 대자보는 정권을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어서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대자보를 쓰진 않았지만 친한 선·후배 중엔 직접 자보를 써서 붙인 사람이 있다”며 “최근의 각종 사회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이지 진보와 보수로 갈라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인상 깊었다”고 덧붙였다.



 대자보를 쓴 학생들은 정교한 논리로 누구를 설득하기보다 정서적 공감을 나누고 싶어했다. 일방적 주장을 펴기보다 같이 생각해 보자는 ‘물음(129건)’을 던지는 쪽을 선택했다. 그들 사이에선 ‘침묵(47건)’과 ‘무관심(45건)’에 ‘불편(35건)’해하고 ‘부끄러워(40건)’하는 정서가 강했다. 지금부터라도 ‘현실(43건)’ 문제에 ‘관심(42건)’과 ‘용기(21건)’를 갖고 자신들의 ‘목소리(62건)’를 내고 싶어 했다.



 100건의 대자보에는 구체적이고 공통된 목표가 드러나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적은 에세이나 잡문에 가까웠다. 특정한 이념이나 철학·사상에 끼워 맞춘 해법이나 행동 방침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80~90년대 대학생이라면 공개적인 장소에 대자보로 붙이기보다 학과방이나 동아리방에 놓인 공책에 적어뒀을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많았다. 한 고려대생은 ‘즐거운 일기’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나는 이 글을 쓰는 것이 즐겁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어제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고 했다.



 전우영 충남대(심리학) 교수는 “그동안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대학생들 사이에선 뭔가를 말하고 싶은 욕구가 분명히 존재했다”며 “이런 잠재적 욕구가 대자보라는 형식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대자보를 보기 전에는 혼자 힘든 줄 알았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고민으로 힘들어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대자보가 한두 군데 대학에 그치지 않고 전국 대부분 대학으로 확산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자보에선 단체명을 쓰지 않고 주로 개인의 실명을 적는 것도 특징이다. 80~90년대 대자보는 단체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공안 당국의 추적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었겠지만 여러 사람의 토론을 거쳐 단일한 대오를 형성했다고 내세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자보 행진에선 처음부터 실명을 공개했다. 익명도 없진 않았지만 실명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부분 학과·학번은 물론 이름까지 밝혔다. ‘경영 08 현우’ ‘철학 12 혜진’ ‘전기공학 08 최아’ 하는 식이다. 개인적인 의견을 솔직하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다.



질문 던지며 자연스러운 공감 유도



 현재의 20대는 인터넷·스마트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지만 종이에 손으로 직접 쓴 대자보라는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러나 80~90년대처럼 교내 게시판에서 같은 학교 학생들만 볼 수 있는 아날로그 대자보에 머물지 않는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어 SNS로 퍼나르고 인터넷 게시판에도 대자보에 쓴 글을 올리고 있다. 아날로그적 글쓰기에서만 풍기는 ‘살결 냄새’와 디지털의 빠른 속도·전파력이 결합된 형태다.



 이택광 경희대(영미문화학) 교수는 “80년대 운동권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20대에겐 대자보가 SNS의 변형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짧은 SNS에 담기 어려운 긴 글을 담는 수단으로 대자보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자보는 개인적인 의견을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데 효과적”이라며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실명 공개는 SNS에서 유래한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또 이번 대자보에선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하는 축약어나 이모티콘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드러나지만 특정 정치인을 비꼬거나 조롱하는 표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대자보에는 ‘박근혜 대통령님’이라는 정중한 표현도 있었다. ‘나는 꼼수다’ 같은 인터넷 방송이나 정치색이 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자극적이고 거친 표현과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2008년 5~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던 촛불집회에서 쓰였던 가볍고 장난스러운 문구들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촛불집회에선 ‘미친 소 반대’ ‘2MB OUT’ 등의 피켓이 등장했고 “광우병에 걸리면 동방신기 오빠와 결혼할 수 없잖아요”라는 얘기도 나왔었다.



 ‘88만원 세대’(비정규직 20대의 평균 월급이 88만원이란 뜻),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불리는 20대의 사회적인 불안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표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인구 630만 명 중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한 취업자는 360만 명(고용률 57%)에 불과했다. 20대 중 270만 명이 자의 또는 타의로 미취업 상태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통계청이 조사한 대학생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2008년 46.1%에서 지난해 69.2%로 급증했다. 5년 전에는 스트레스를 느끼는 대학생이 절반에 미치지 못했던 반면 지난해에는 세 명 중 두 명 꼴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는 얘기다.



 고려대 첫 대자보에서 주씨는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 한다”고 썼다. 20대가 처한 현실을 세상이 잘 몰라준다는 소리로 들린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의 출처는 2007년 출간된 『88만원 세대』다. 그 책의 저자들은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라고 했었다. 이번 대자보에서 그 같은 선동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하대의 한 대자보는 “어떠한 선동이나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고, 개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는 말까지 했다.



 이 교수는 “20대 학생들은 각종 선거에서 투표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이들이 대자보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20대의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고교에서도 ‘안녕하세요’라고 묻는 대자보가 잇따른다. 고교생들은 대부분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충북의 한 여고생은 대자보에서 “어제까지 저는 안녕했습니다. 저는 지금 창피합니다”며 “‘하 수상한 시절’에 제가 좋은 대학을 가 많은 스펙을 쌓는다 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경남의 한 여고생은 “정치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무관심입니다. 이 자보를 외면하고 지나치는 순간 여러분들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23·본명 김종현)은 자신의 SNS 프로필 사진을 대자보 인증샷으로 바꿨다. 그는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강은하씨가 작성한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안녕하지 못합니다’는 제목의 대자보 사진을 등록했다. 강씨는 “저는 성소수자입니다. 트렌스젠더(성전환자)이고 양성애자입니다. 여성입니다”며 “저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에도 안녕하지 못합니다”고 했다. 종현은 “제 트윗으로 원치 않는 주목을 받으시거나 이슈화로 피해를 입으실까 봐 메시지를 보내요. 건강과 따뜻한 연말이 함께 하시길 빌게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최근 대자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사회에 대한 불만·좌절감을 반영해 젊은 세대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현상으로 읽힌다”면서 “그동안 젊은 세대도 뭔가 속깊은 얘기를 하고 싶어도 SNS에선 글자 수 제한으로 한계가 분명했었는데, 한 사람의 대자보가 단초를 제공하니까 너도나도 하고 싶었던 얘기를 쏟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정완·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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