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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교황은 좌파인가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풍경1 : 2010년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만났습니다. 한국의 각 종교 지도자들이 교황을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일렬로 줄을 서 교황에게 인사를 한 뒤 악수를 했습니다. 일행 중 천주교인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채 교황의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교황은 말이 없었습니다.



 다 같이 앉아서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교황은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짧고 핵심적인 메시지. 한마디는 하시겠지’. 촬영이 끝나자 교황은 천천히 좌우를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했습니다. “굿 바이!” 좌우에 선 추기경들이 교황을 모시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봤습니다. 연로한 데다 빡빡한 일정, 짐작은 갔습니다. 그래도 한마디는 할 줄 알았습니다. 예수의 메시지가 담긴 딱 한마디. ‘현문우답’은 그걸 기다렸습니다. 교황의 한마디는 “굿 바이.” 참 허탈하더군요.



 #풍경2 : 올해 새 교황이 선출됐습니다.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 그가 택한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지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권력과 세속적 욕망으로 교회가 타락했던 중세에 프란치스코(1182~1226)는 청빈과 수도를 통해 “예수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가지고 교회를 찾는다면 어떡하겠습니까?” 추기경 시절,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낙태와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에 분명하게 반대했습니다. 교황은 당황하지 않고 답했습니다. “내가 누구길래 그들을 심판할 수 있겠습니까?” 동성애 결혼 합법화에는 반대하지만, 인간에 대한 심판은 하지 않았습니다.



 ‘현문우답’은 거기서 ‘교황의 한마디’를 들었습니다. 교황청에서 듣지 못했던 교황의 딱 한마디. 그게 뭐냐고요? “내가 누구길래”입니다. 자아를 부정하며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려는 그의 걸음걸이가 보였습니다.



 #풍경3 : 프란치스코 교황은 탱고를 좋아합니다. 탱고의 역사, 탱고 가수의 이름도 줄줄이 뀁니다. 서민적입니다. 대주교 때는 멋진 관저에 머물지 않고, 시내 주교관 2층의 작은 아파트를 숙소로 썼습니다. 추기경 때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습니다. 평범한 검정 사제복 차림으로 신문도 보고, 옆자리의 시민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이 “각하(His Exellency)”라고 부르면 손을 내저으며 “그냥 호르헤 신부로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 소문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쫙 퍼졌습니다. ‘현문우답’은 여기서도 “내가 누구길래”를 봅니다.



 #풍경4 : 아르헨티나는 가슴 아픈 현대사를 안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 때 수만 명이 살해당했고, 경제위기 때는 중산층이 처참하게 몰락했습니다. 빈곤층의 고통은 더 참담했습니다. 그는 이걸 적나라하게 지켜봤습니다. 최근 교황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게 이념의 눈일까요, 아니면 인류애의 눈일까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좌파”라고 단정합니다. 그걸 통해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려 합니다. 역으로 보수 측에선 “마르크스주의자”라고 공격합니다. 그건 착각이 아닐까요. 교황은 좌파가 아닙니다. 물론 우파도 아닙니다. 마르크시즘이 녹아든 해방신학의 폭풍이 남미를 휩쓸 때도 그는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의 기준은 이념이 아니라 예수입니다. 거기서 좌·우를 뛰어넘는 혜안의 가능성을 봅니다. 그에게 이념은 에고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할 겁니다. 왜냐고요? 좌파는 결코 “내가 누구길래”라고 말하지 않으니까요. 이념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이들은 “내가 누구길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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