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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세계경제구조 변화와 경제정책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출근길에 지하철역 상가에 걸려 있는 스웨터와 바지의 가격이 5900원이라고 쓰인 것을 보았다. 20년 전에 비해 훨씬 싼 값이다. 품질은 아마 더 좋아졌을 것이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생산자물가 지수를 보면 TV는 8년 전 가격의 절반, 냉장고는 20년 전 가격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인구 13억을 가진 나라가 지난 30년 동안 평균 1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 경제, 세계 최대의 제조공장, 세계최대 수출국이 되었다. 인구 12억의 인도도, 6억의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도 지난 20년간 평균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과거 유럽과 미국이 산업화할 때 보여준 연평균 2~3%의 성장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국이 일인당 소득을 배로 올리는 데는 150년이, 독일은 64년, 미국은 53년이 걸렸으나 중국·인도의 경우 각각 14년, 1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이 값싼 노동력으로 제조한 물품들을 세계시장에 쏟아냄으로써 1970~8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팽배해 있던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이제는 디플레에 대한 우려로 바뀌었다. 사람이 만들어낼 수 없는 금·석유·구리 등 자원가격과 배에 실어 수입할 수 없는 부동산·서비스 가격만 크게 올랐다. 지난 20년간 세계경제는 일찍이 경제사에서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구조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변화의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다. TV가 5000만 명에게 보급되기까지는 13년, 아이팟이 4년, 인터넷이 3년, 페이스북 1년, 트위터가 9개월이 걸릴 정도로 세계시장은 빠르게 통합되고 기술과 제품의 사이클은 짧아지고 있다. 유튜브의 3개월 콘텐트가 지난 100년간 미국의 ABC, NBC, CBS, CNN 방송의 콘텐트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하니 앞으로 또 어떤 기록들이 날마다 출현할지 궁금하다. 과거에는 지구 한쪽의 경제가 자연재해나 위기를 경험하면 다른 쪽의 경제는 풍작이나 호황을 맞았으나 이제는 세계시장의 통합으로 경기변화도 동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통계가 집계된 후 처음으로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동조화 때문이다. 2012년 중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87위에 머물러 있으나 만약 지금 우리와 비슷한 30위대로 올라온다면 이 나라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물품들을 세계시장에 쏟아내게 될 것인가?



 전체 세계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급속히 산업화되면서 서구에서 발전한 전통적 거시경제학 이론들의 설명력이 약해지고 있다. 특히 금리와 실물경제 변수 간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위기 이전 미국 연준이 저금리정책을 오래 지속해도 인플레 압력이 없어 소위 ‘골디락스’라는 최장의 경제호황을 구가했으나 이것이 결국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위기 이후에는 금리를 아예 영(零)으로 내려도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쓰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갚고 소비를 줄이고 있다. 양적팽창을 통해 억지로 돈을 풀어도 시중에서는 돈이 잘 돌지 않는다. 70~80년대에 있었던 높은 인플레 경험에 기반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도입한 물가안정목표제도(inflation targeting)는 이제 선진국들에서 물가를 잡기 위한 목표가 아니라 물가를 높이기 위한 목표제로 사용되고 있다.



 값싼 제품들이 쏟아져 나와 시민들의 실질구매력을 높여주는 것은 오늘날 세계경제가 가져온 축복이나 급속한 세계경제구조 변화로 인해 경제정책이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저주라고 해야 할까?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포럼에서 전 하버드대 총장 로런스 서머스는 세계경제는 수요보다 공급이 과잉인 상황이며 오늘날 세계경제는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가 오히려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인 시대로 접어들어 실질균형금리 수준이 마이너스일 것이라 주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번 주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생산자물가가 14개월째 연속 하락했음을, 연준은 양적완화 축소계획을 발표했다. 이 시대의 경제정책은 많은 모험과 모색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숲길처럼 지금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로 인도할지 그 누구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없다. 종래의 이론과 경험은 믿을 만한 길잡이가 되지 못하고 앞길을 예측하기에는 진행되는 변화가 너무 빠르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정책은 결국 유연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갈 수밖에 없다. 찰스 다윈이 그의 명저 『종의 기원』에서 내린 결론은 오늘날 경제정책의 운용에 있어서도 유효해 보인다. “결국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지적인 종도 아닌, 변화에 가장 유연하게 적응하는 종이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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