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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화된 공포 그 속에서 실존을 묻다

또 불륜이야? 라고 말하려다 보니 드라마는 언제나 불륜을 이야기해왔다. 드라마만 보면 대한민국 부부가 온통 바람만 피우는 것 같다고 비난하고 싶겠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그것의 유혹과 그것이 낳은 파국이 결코 드라마 속의 현실일 뿐이라고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주부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고민의 키워드 역시 불륜과 바람이다. 배우자의 불륜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사는 우리의 가장 큰 현재형의 공포이며, 그 현실이 닥치면 가장 큰 내면적 분열과 실존적 파멸을 가져온다. 드라마가 늘 불륜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컬처#: 불륜 드라마의 진화

오랫동안 불륜을 이야기해온 드라마 역시 진화해 왔다. 과거의 드라마들은 조강지처, 청순가련한 아내를 피해자로, 욕망과 열정에 사로잡힌 남편과 상간녀를 가해자로 설정해 천재지변처럼 가정에 닥친 재난에 맞서 서로 적이 되어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위주였다. 주부들은 피해자인 아내에게 감정이입해 가해자를 욕하며 얼른 이들이 죗값을 치르고 공포 요인을 제거한 뒤 안정된 상태로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시간이 흐르며 좀 더 당당해지는 가해자 상간녀의 이미지가 등장하고 불륜을 계기로 자신의 가정의 현재를 돌아보는 모습이 담기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불륜이 음습하고 지저분하기만 한 재난이 아닌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륜을 정당화하고 양지로 내놓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공포가 일상화된 현실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된 형태로서의 적대적 대치보다는 자신의 실존적인 내면을 돌아보고 더욱 현명하게 이 사태에 대처하려는 모습을 반영하려는 변화라고 보고 싶다.

JTBC의 ‘네 이웃의 아내’는 맞바람이라는 상황으로 한 걸음 더 나갔다. 가까이 살고 있는 이웃과의 맞바람 가능성은 어느 한쪽의 바람이라는 것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예전 같으면 일방적 피해자로 그려졌을 신은경의 캐릭터다. 현모양처의 전형이라 할 만한 신은경이 평소에는 분을 꾹꾹 누르고 얌전히 있다가도 자신을 무시하는 남편의 밥그릇에 침을 뱉으며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는다거나 심지어 살의를 느끼는 모습을 그려내는 것을 보는 주부들로서는 어쩐지 모를 통쾌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동안 단선적 캐릭터 속에 갇혀 있었던 신은경은 이번에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복잡하고 풍부한 입체적 캐릭터를 맡아 배우생활에서 최고라 할 만한 가능성을 활짝 꽃피우고 있다. 그것을 통해 피해자 이미지를 극복하고 바람이란 것이 실질적으로 가해자인 남편에게도 큰 위협과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SBS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상간녀 한혜진을 만난 아내 김지수가 의도하지 않게 그녀와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둘 사이는 죽일 듯이 밉지만 미워할 수만은 없는 복합적인 관계가 돼버린다. 이미 바람을 피웠던 남편에 대한 복수처럼 혼외 관계를 시작했던 한혜진 역시 불륜을 통해 남편과의 애정, 그리고 남편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스럽게 다시 바라보게 되면서 단순히 불륜 관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의 옛 감정을 돌아보고 가정의 존재 유무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네 이웃의 아내’가 불륜이 시작되는 로맨스의 과정을 담는, 보다 일반적인 전개인 데 비해 여기서는 아예 불륜관계를 끊으려고 하는 데서 출발해 그 과정에서 새롭게 생겨나는 기존의 관계와 새로운 여자들의 관계를 그리려고 하는 점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새롭게 그렸다 하더라도 불륜은 불륜일 뿐이다. ‘네 이웃의 아내’ 속 네 명의 두 부부나 ‘따뜻한 말 한마디’의 두 부부 모두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파국과 엄청난 갈등과 심리적 분열을 겪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결국 이 불행한 가정들이 위기를 봉합하고 안정을 되찾기를 바라면서 그 과정의 서스펜스를 즐기게 되겠지만, 보는 시청자들 역시 어쩔 수 없이 그 주인공들 모두 상처받고 회복할 수 없는 아픔을 간직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잠 못 들고 괴로워하면서 살아야 하는 불안한 토대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현실 속의 가정을 비춰보며 서글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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