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혁의 와인야담 <6>
하지만 방대한 와인 영역을 모두 실수를 통해 배울 수는 없다. 한번은 보르도를 여행할 때 친구인 샤토 퐁테 카네의 오너 알프레드 테스롱과 시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저녁이었지만 가볍게 먹자는 데 합의하고 생선 요리를 시켰다. 알프레드는 와인 리스트를 한참 보더니 오 메독 지역의 레드 와인을 하나 골랐다. 자신도 잘 모르는 와인이지만 음식에는 잘 맞을 거라며. 필자는 좀 의아했다. 생선에 레드 와인, 그것도 메독 지역의 와인이 과연 잘 맞을 수 있을까?
알프레드는 “레드 와인이지만 산미가 좋고 가벼운 맛을 갖고 있으면 생선과 잘 어울릴 수 있다”고 조언해 주었다. 특히 와인의 온도가 적당히 차면 더 좋다고 덧붙였다. 결과는 훌륭했다. 탄닌이 과하지 않아 생선의 맛을 침해하지 않았고 조금 부딪친다 해도 소스가 잘 보완해 주었다. 덕분에 생선과 레드 와인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사실 보르도의 유명 와인 지역인 메독이나 생테밀리옹에서는 화이트 와인의 생산이 1%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요리는 레드 와인과의 매칭이 기본이다. 특히 갑각류 요리와는 아주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 붐이 일면서 레스토랑마다 자신들의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들을 확보해 팔고 있다. 그러나 유독 일식 레스토랑에서는 와인을 구비해 놓은 곳이 많지 않다. 일식이 와인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음식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을 들고 일식 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 그중 레드 와인은 프랑스 피노 누아로 만든 와인을 선호하는데, 색이 맑고 맛이 깨끗하며 산미가 도드라져 생선회와도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식에 종사하는 유명 셰프들이 와인의 맛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매출 증가뿐만 아니라 일식의 다양화와 고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자신의 분야에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 10년 이상 셰프 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이면 재료를 다룰 때 꼭 형식과 틀에 얽매이질 않는다. 그래서 유명 셰프들은 음식을 창조하기도 하고 때로 있는 음식을 한두 단계 틀고 꼬아 새로운 음식으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통념을 버리는 것은 중요하다. 생선에 화이트를 고집하던 방식을 누군가가 과감하게 레드 와인을 접합함으로써 매칭의 지평선을 훨씬 넓게 했다. 오늘 저녁 생선 요리에 상큼한 레드 와인 한잔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