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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같은 기술의 힘! 뻔한 이야기가 뻔하지 않은 감동으로

대부분의 영화는 상영된 지 10년 정도 지나면 내용도 가물가물, 주인공의 모습도 희미해지기 마련. 하지만 단언컨대 이 영화만큼은 예외다. 페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주연했던 ‘고스트(사랑과 영혼)’.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내용은 물론 죽은 애인의 영혼과 마주 선 데미 무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까지 다들 기억할 것이다. 1990년 극장 전체를 눈물바다로 만들며 168만이라는 사상 최다관객을 동원했던 전설의 영화가 뮤지컬로 환생했다. 2011년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뒤 곧바로 미국 브로드웨이를 섭렵하고 이탈리아·헝가리를 거쳐 아시아 최초로 선보이는 따끈따끈한 작품이다.

뮤지컬 ‘고스트’, 11월 24일~ 2014년 6월 29일 디큐브아트센터

사실 ‘고스트’의 뮤지컬화 소식을 접하고 기대가 크지 않았다. 인기 영상물로 만든 무대의 감상은 보통 두 가지. 다 아는 이야기라 별다른 긴장감을 느낄 수 없거나 새로운 느낌을 주지만 원작의 감동과 동떨어진 경우다. ‘고스트’는 달랐다. 이미 알기에 시작부터 내내 안타깝고, 뻔히 예상한 장면에서 더욱 긴장되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무대였다.

지난해 말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열풍이 일자, 무대와는 다른 영화만의 특별한 감동의 비결을 ‘클로즈업의 마술’이라고 보는 분석이 많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화가 무대가 되었을 때 생산된 고유한 감동의 비결은 뭘까? 라이브로 듣는 노래일까?

영화의 감동을 더했던 ‘언체인드 멜로디(Unchained Melody)’가 양념처럼 뿌려지긴 했지만 노래가 지배하는 무대는 아니었다. 뮤지컬 ‘고스트’만의 감동은 ‘마술’ 그 자체에서 나왔다. ‘매지컬’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첨단 무대 메커니즘의 충격은 ‘LED 영상을 사용한 첨단 멀티미디어와 마술을 이용한 특수효과’라는 건조한 설명만으론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

영화에서 시작되었음을 고백하듯, 무대는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잔잔히 강물이 흘러가는 풍경을 비추다 직접 그리로 날아가는 듯한 영상과 함께 막이 오른다. 평평한 3면의 벽 여기저기서 팝업북처럼 펼쳐지고 접히는 무대장치와 사람들도 평면(2D)인 영화에서 입체(3D)인 무대로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사방 30㎝짜리 LED판 7000피스로 감싸진 트러스 구조물과 트러스 속을 빼곡히 채운 실제 세트가 최첨단 오토메이션 장치로 이동하며 완성하는 다양한 장면 전환은 21세기 무대기술에 더 이상 한계는 없음을 선언한다. 달리던 지하철이 갑자기 90도 회전하는 장면은 단연 압권. 관객은 특수안경도 쓰지 않고 흡사 유니버설스튜디오에서 4D 놀이기구라도 탄 듯, 순식간에 마법처럼 바뀌는 공간감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까진 기술이다. 뻔히 아는 이야기가 주는 뻔하지 않은 감동은 기술과 마술의 완벽한 합에서 나온다. 샘이 문을 통과하거나 저승으로 떠나는 장면, 배신자 칼을 들었다 놨다 희롱하는 장면 등 영화 ‘해리포터’의 마술 감독을 맡았던 일루셔니스트 폴 키에브가 구현한 마술 효과는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다. 최고의 순간은 샘의 영혼이 심령술사 오다메의 몸을 빌려 몰리 앞에 선 순간. 영화 속 몰리의 눈물이 클로즈업되던 바로 그 장면이다. 오다메가 몰리와 관객의 눈앞에서 살아있는 샘으로 화(化)하는 순간, 우리는 무대 메커니즘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맛보게 된다.

“디지털 이미지와 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생생하고 본능적인 감정과 공존할 수 없다는 통념에 대한 반증이 되기를 바란다”는 무대 디자이너 롭 하월의 말처럼, 이미 고전이 된 이야기가 생생한 감동으로 살아날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첨단 테크닉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고스트’가 현란한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가슴까지 와 닿는 무대가 된 건 삶과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한 콘텐트의 힘이다. 영화 ‘고스트’가 만들어진 1990년은 지금의 첨단 디지털 기술과 무관했던 지극히 아날로그한 시절이었다. 사랑 고백도 이별 통보도 카톡의 경박한 알림음이 대신해주는 요즘과 달리 “Ditto(동감)”라는 말을 즐기던 샘처럼 차마 가볍게 입에 올리지 못했던 게 그 시절의 사랑과 이별이었다.

20여 년을 뛰어넘은 디지털 세상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사랑을 말하는 오늘, 이 이야기가 더욱 가슴 벅찬 이유는 새삼 마법처럼 실감하게 되는 사랑의 무게 때문 아닐까. 디지털 기술과 마술은 표피일 뿐 껍질을 뚫고 나왔기에 더 돋보이는 것은 세월의 흐름과 세상의 변화 따위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위대한 사랑인 것이다. 정신 없이 깜박이는 LED판 뒤로 묵직한 실제 세트가 굳건히 버티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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