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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처형] "최용해·김원홍 포함 보위일꾼 6인방이 숙청 주도"

노동신문이 지난달 21일자에 공개한 보위일꾼대회 주석단. 김정은(앞줄 가운데) 중심으로 좌우로 포진한 인물들이 장성택 체포와 숙청을 주도한 6인방으로 꼽힌다. [사진 노동신문]


최용해와 김원홍을 위시한 6인방이 포스트 장성택 시기의 평양 권력구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13일 장성택을 체포하고 처형에까지 이르게 한 주도세력으로 여섯 명을 지목했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자리한 군부의 보안통과 노동당의 핵심 간부들을 말한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김정은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열린 보위일꾼대회가 장성택 숙청 드라마의 서곡이었다”고 말했다. 보위일꾼(우리 기무사령부 요원 해당)은 국가안전보위부를 주축으로 한 공안기관에서 체제보위 문제를 담당한 사람들로, 북한에서 ‘일꾼’은 간부를 의미한다.

대북 정보통이 본 평양 권력
보위파와 숙청 논의한 삼지연 멤버
김정은 호위하며 체제 끌어갈 듯
일각선 "다음 표적 최용해" 주장도



 11월 21일자 노동신문은 1면과 2면 전면에 걸쳐 4·25문화회관에서 열린 북한군 제2차 보위일꾼대회 소식을 전했다. 북한은 이 대회를 1993년 첫 개최 이후 20년 만에 다시 열었다. 갑작스러운 행사 개최에 촉각을 곤두세운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 권력 내에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감지되는 게 대회와 관련이 있는지에 주시했다. 이례적으로 보위업무 담당자들을 대거 한자리에 모이게 한 건 장성택과 그 계파를 제압한 직후 김정은이 보위 부문 간부들을 격려하고 충성서약을 받는 자리였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보위일꾼대회가 열린 시점은 지난 3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장성택의 최측근인 이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 등 2명의 공개처형이 이뤄졌다고 지목된 지난달 하순과 겹친다.



 6인방은 당시 회의장 주석단에 김정은을 중심으로 세 명씩 좌우로 포진했다. ‘좌(左)성택, 우(右)용해’로 불리는 최용해 군 총정치국장이 김정은의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그 옆으로 북한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 김원홍 부장과 염철성 군 상장(上將)이 앉았다. 반대쪽으로는 조경철 상장과 김수길 중장이 위치했다. 그 옆에는 노동당 내에서 군부 조직·인사를 담당하는 황병서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있었다.





 최용해는 개회사를 했고, 조경철은 행사 보고를 맡았다. 특히 염철성의 경우 11일자 노동신문 1면에 이례적으로 ‘혁명의 총대는 변심을 모른다’는 기명 글을 싣고 “장성택 일당의 처단을 우리 인민군대에 맡겨 달라”고 했다. 군부를 대표해 장성택 처형 여론몰이의 총대를 멘 것이다. 그의 요구대로 장성택은 이튿날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이 집행됐다.



 김정은은 보위일꾼대회를 마친 뒤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군을 찾았다. 동계스포츠 시설과 군부대 참관이 드러난 공개일정이지만 실제로는 특각(전용별장)에서 장성택 사태의 후속대책을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에는 보위일꾼대회에 참석한 김원홍 보위부장과 황병서 당 부부장이 드러난다. 또 김양건 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정은 시대 들어 부상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박태성·김병호·마원춘 당 부부장 등도 포함돼 있다.



 이를 감안하면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는 보위일꾼대회 주도세력과 김정은이 장성택 숙청 직전 열었던 백두산 삼지연 회의 멤버가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보위파가 체제보위와 김정은 경호를 맡고, 삼지연파는 장성택 처형에 따른 민심 수습 등 후속대책 마련 등을 분담하는 방식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최용해, 김원홍의 경우 보위일꾼대회와 삼지연 회의 모두 김정은 지근거리에 있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두 그룹의 교집합에 자리한 최용해와 김원홍이 김정은 주변에서 투톱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최용해에 관해선 이견도 나온다. 대북 사업가들 사이에선 “시간을 예상하긴 힘들지만 장성택 다음은 최용해일 것”이란 말이 돌고 있다. 실각했던 장성택이 2006년 복권돼 가장 먼저 챙긴 사람이 최용해였다는 걸 근거로 들고 있다. ‘좌성택·우용해’는 권력을 놓고 다투는 관계였다기보다 ‘코드’가 맞는 ‘협력적 경쟁관계’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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