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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무차별 도청과 동굴의 시대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론 정보 감시를 어느 정도는 견딜 수 있다는 입장이다. 테러 같은 극악한 범죄를 막을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떳떳하면 뭐가 문제될 게 있느냐는 생각도 한다. 특히 9·11 테러를 겪었고 지금도 무장집단의 주 표적인 미국의 경우 더 관용적인 자세로 바라볼 자세가 돼 있다.



 하지만 미국의 사찰 실태를 폭로하고 망명 중인 스노든 전 중앙정보국 요원의 자료가 계속 공개되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다. 국가에 지고지순한 선(善)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아서다.



 미국·영국 언론이 지난 한 달 사이 폭로한 내용만 봐도 사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든다. 누군가 내 e메일을 엿보고 전화 내용을 엿듣는 건 기본 중의 기본.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누구랑 몇 번 만나는지 인간관계망까지 갖고 있었다고 한다. 온라인 게임들까지 감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첩보요원들이 게임기를 조작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인터넷에서 야한 단어를 검색하는 것까지 노출됐다. 혁명투사가 실은 골방에서 ‘야동’을 즐기는 사람이란 걸 공개해 망신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 수집의 범위가 테러 대상자에 국한되지 않고 무차별적이라는 점이다. 위치추적만 해도 매일 50억 건 이상의 정보가 모였다. 문건을 입수한 영국 가디언지의 편집국장은 “공개된 건 단 1%”라고 말했다. 나머지 99%의 문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을지 섬뜩해진다.



 기자 역시 정보를 다루는 직업이어서 비밀 하나 캐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남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을 경험하지 않은 기자는 많지 않다. 정보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더 편리하게, 더 많은 내용을 얻으려다 보니 미국 정보기관들도 조금씩 금단의 선을 넘게 되지 않았을까. 확실한 건 오바마 미국 대통령조차 자기네 정보기관의 활동에 크게 놀랐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IT 업체들이 지난주 ‘반(反)정보감시 연합체’를 출범시킨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당장 60조원 이상을 투자해 해킹을 막을 장치를 갖춘다고 한다. 방패가 견고해질수록 창 역시 날카로워지겠지만 최소한 정보기관들에 경각심을 주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정보 수집을 해야 한다는 초심 얘기다. 갈 길은 멀지만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역시 활발하다는 점에서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 있다. 시민자유연맹의 기술 전문가 크리스 소고이언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는 전자기기를 버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도망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다시 동굴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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