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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경원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장

나경원 위원장은 지난 서울시장 선거 때 맘고생을 하다 암을 얻은 어머니 얘기, 다운증후군 딸 유나 얘기를 하면서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엄마! 꿈 깨! 장애 아이 가르친다고 보통 아이처럼 되는 줄 알아?”

"스페셜올림픽이 재기 발판? 오히려 정치 자산이 장애 운동 도움"



 다운증후군인 딸을 사립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찾아갔을 때 날아온 호통, 그리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딸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 나오면서 흘린 눈물.



 판사였던 나경원(50)이 정치에 뛰어들게 된 이유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특보로 정치에 입문했고, 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지난해 3월 19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나경원은 2013 평창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장으로만 살았다. 지난 겨울 그가 구석구석 살핀 스페셜올림픽(1월 29일~2월 5일)엔 3000여 명의 전 세계 지적장애인이 참가했고, 17만 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메달 못 딴 친구에게 자신의 메달을 선물하고, 뒤처진 친구를 위해 결승선 앞에서 기다려 주는 지적장애 선수들의 사연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최근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책 『무릎을 굽히면 사랑이 보인다』를 펴낸 나경원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회장을 지난 3일 서울 종로의 스페셜올림픽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그는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2018년 평창 겨울 장애인올림픽에도 참여하게 됐다. 지난달 말엔 새누리당 중구 당협위원장 공모에도 응모했다.



 “책이 나오는 시점에 이런 일들이 겹쳐 책 출간까지 정치적으로 비칠까 걱정이에요. 지난 3월 책을 쓰기 시작해 8월께 출간하려 했는데, 평창스페셜뮤직페스티벌과 IPC 선거 등이 겹치면서 늦어졌어요.”



 - 어떤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지.



 “딱히 어느 세대나 어느 계층이 타깃이라 말하기 어렵네요. 그저 이 책을 통해 스페셜올림픽의 감동을 사람들이 다시 한번 느끼고 간직했으면 좋겠고, 소외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가 공유해야 할 가치는 경쟁이 아닌 협력입니다. 책 내용은 엄마의 마음과 조직위원장의 마음이 반반쯤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책 인세는 전액 스페셜올림픽조직위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어요. 지적장애인들의 경우 지능은 좀 떨어지지만 감정은 일반인과 같아요. 사춘기도 겪고요. 보통 사람들 모두 개성이 다르듯 지적장애인들도 각자 개성이 모두 달라요. 대체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맘이 따뜻하고 남을 배려하는 편인 것 같아요. 우리 딸 보면서 너무 많이 배워요. 엄마보다 생각이 깊어요.”



 - 딸 유나는 어떤가.



 “그냥 다 예뻐요. 저를 꼭 닮았어요. 지는 거 싫어하고, 뭐든 완벽해야 하고. 유나는 기억력 하나는 끝내줘요.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 동 호수나 전화번호 같은 걸 기가 막히게 외웠어요. 근데 계산을 잘 못해요. 그래서 시장 가서 뭐 살 때면 사람들이 자길 속일까 봐 항상 걱정해요.”



 나 회장의 딸 유나는 스무 살이다. 중·고등학교 모두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서 공부했다. 장애인 특례입학으로 성신여대에 들어가 올해 2학년이다. 전공은 실용음악. 그중에서도 드럼을 전공한다.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시켰어요. 발레를 시켰는데 애가 흥이 많아서 동작이 절제가 안 됐어요. 그래서 방송댄스를 시켰는데 관절이 안 좋아 안 되겠더라고요. 피아노는 영 진도가 안 나가고. 두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 사물놀이를 시켰더니 징이나 꽹과리의 쇳소리를 힘들어하는 거라. 그래서 드럼을 가르쳤는데, 그건 곧잘 하더라고요. 유나 덕분에 제가 요즘 유행하는 노래도 많이 알아요.”



 나 회장은 딸 얘기가 나오면 얼굴이 환해졌다. 며칠 전 유나를 데리고 미장원에 가서 빨간색으로 머리 염색해 준 얘기, 딸이랑 옷 같이 입는 재미 등을 풀어놨다. “저한테 좀 작은 듯한 옷을 사면 유나한테 맞거든요. 유나가 좀 작아요. 1m50㎝ 정도. 오늘도 저한테는 약간 짧은 제 패딩코트를 유나가 롱코트로 입고 나갔어요. 예쁘더라고요.”



 - 유나 키우면서 힘들었던 건, 속상했던 건 없었는지.



 “옛날엔 좀 불안한 게 있었는데, 지금은 유나가 제 비타민이에요. 유나만 보면 잘 모르겠는데, 또래 친구들이랑 비교하면 차이가 나니까 아주 가끔은 속상하죠. 어렸을 때는 무조건 열심히 키우려고 했어요. 오후 6시 ‘땡’ 하면 집에 가서 유나랑 뭐든 하려고 했지요. 배우는 게 느려서 밥숟가락 뜨는 것도 단계별로 나눠 가르쳐야 했어요. 그때는 6시 땡 했는데도 퇴근 안 하는 부장판사님이 얼마나 미웠는지 몰라요. 가장 힘든 건 부모로서 죄지은 것처럼 살아야 하는 거였죠. 가령 초등학교에 발달장애아가 전교에 딱 두 명이라고 해 봐요. 그러면 그 장애아의 엄마는 담임선생님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해요. 장애아를 맡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등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으면 장애아 엄마가 당당할 수 있지 않겠어요. 사회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한 거죠.”



 그는 발달장애아의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동반 자살한 사건을 언급했다. “우리 사회의 제도가 너무 열악해 장애인이나 소외된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떼법을 쓸 수밖에 없게 되는 면이 있어요. 지원이 더 빨리, 더 충분히 이뤄져야 사회적 비용이 줄어요.” 한 명이라도 더 스페셜올림픽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지적장애인 3000명이 축제 로 끝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사람이 장애인 문제를 ‘당신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느끼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 스페셜올림픽을 정치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는 시각도 있는데.



 “그 반대예요. 스페셜올림픽에 제 정치적 자산을 모두 쏟아부었다고 하는 게 맞아요. 정치 하면서 알게 된 정·관계, 언론계, 재계 인맥을 총동원했죠. 정치적 평가를 바라거나 칭찬을 받고 싶어 한 일이 아니에요. 정치인 나경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높이 평가 안 해요. 그냥 ‘또 쇼 하나 보다’ 하지. 가끔 ‘판사 그만두고 정치한 거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이제는 분명히 답할 수 있어요. 제가 정치를 안 했으면 이 일을 어떻게 해냈겠어요. ‘판사 나경원’이 나선다고 누가 도와줬겠어요. 판사는 판례를 통해 개인의 삶을 바꿀 수 있지만 정치인은 사회를 바꿀 수 있어요. 장애운동은 제 정치 발판이 아니고, 정치가 장애운동의 발판인 셈이죠.”



 - 중구 당협위원장에 응모했는데 정치 재개를 뜻하는 것 아닌가.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아니에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지역구 국회의원 임기를 다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에서 지원했을 뿐이에요. 아직 중앙정치에 나설 생각은 없어요. 정치를 하더라도 천천히 작은 일부터 하고 싶어요.”



 -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회비 1억원 피부클리닉 출입 논란이 있었다. 실제 회비가 얼마였나.



 “그 얘긴 다시 하고 싶지 않은데. 살림하는 여자가 자기 얼굴에 어떻게 그런 거액을 쓸 수 있겠어요. 애들 것, 남편 것은 사도 내 것은 몇 번 생각하는 게 주부들 아닌가요. 일주일에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아무 때나 와도 되고 비타민 주사도 놔주고 하는데 연 500만 정도라고, 아는 이가 ‘여기는 한꺼번에 다 해주니 좋다’며 권해서 갔죠. 그런데 사실 인테리어가 너무 화려해 좀 찝찝했어요. 찝찝한 일은 하면 안 되는 건데. 억울하긴 했지만, 내가 뭘 잘못해 이렇게 됐나 반성했어요. 일이 잘못됐을 때 남의 탓을 하면 미래가 없잖아요. 남은 바꿀 수 없지만, 나는 바꿀 수 있으니까.”



 -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되돌아본다면.



 “아픈 기억이지만 그 역시 긍정의 에너지로 바꿔야 그 다음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약이 됐죠. 정치 입문 이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으로 너무 빨리 성장했어요. 한 타임 쉬는 게 더 큰 일을, 더 힘 있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정치를 한다면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하고 싶어요.”



 - 뛰어난 외모, 유복한 집안, 최고의 학벌 등 부족한 게 없는 ‘엄친딸’ 캐릭터인데.



 “속사정은 안 그렇다니까요. 그리고 다 상대적인 거 아닌가요. 또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아닌 척할 수도 없고. ‘몸뻬’ 입고 다닐 순 없잖아요. 그런다고 바뀌나요. 자기가 아닌 걸 맞는 척할 수는 없잖아요. 배경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아닐까요. 언젠가는 제 진정성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해요.”



 나 위원장은 자신이 외모와 달리 굉장히 용감한 편이라고 했다. “유불리 안 따지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끝까지 소신을 지켜요. 이를테면 쇠고기 촛불시위 때 다들 TV토론 안 나간다고 버티는데 전 나갔어요. 열심히 얘기해서 한 사람의 생각이라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역구에서는 ‘제발 나가지 말아 달라, 나갈 때마다 표가 뚝뚝 떨어진다’고 만류했지만요. 무상급식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그랬고요.”



 최근 정치에 대해서는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올림픽 같다”고 평했다. “국회가 국회로서의 역할을 외면한다면 결국 국민이 국회에 등을 돌리게 되고, 새로운 것에 기대게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전화가 걸려왔다. “응, 유나야, 할머니 오늘은 열 안 나신대. 걱정돼 전화한 거야? 우리 딸 착하다. 밥 먹었어? 몇 시에 오는지 엄마한테 카톡해.” 전화를 끊은 뒤 나 위원장이 말했다. “이렇게 착하다니까요. 유나가 할머니가 걱정돼 전화했잖아요.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했어요. 서울시장 선거 끝나고 난소암 3기 판정을 받으셨거든요.”



 - 유나한테 바라는 게 있다면.



 “커갈수록 걱정이에요. 지금은 엄마가 보호해 주니까 괜찮은데 앞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 할 텐데 말이죠.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기 바랄 뿐이에요.”



글=박혜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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