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책과 지식] 이래도 얕잡아 볼건가 … 세상을 바꾼 칼과 솥

포크를 생각하다 :식탁의 역사

비 윌슨 지음

김명남 옮김, 까치

368면, 2만원




올 여름 내내 독일 베를린에 있었다. 거리를 활보하며 주방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다양하고 화려한 식사 도구들은 감탄을 자아낸다. 반짝거리는 금속 광택이 돋보이는 스테인리스 포크와 나이프의 진열된 모습은 꽃처럼 아름다웠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주방용 칼과 가위에서부터 용도를 알 수 없는 온갖 도구들이 넘친다.



 가게 안 손님들은 주부로 보이는 여자들뿐이 아니었다. 남녀노소 넘치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도구의 용도를 묻고 만지작거리고 샀다. 음식을 만들지 않는 한국의 아저씨마저 주방용품에 흥미가 생겼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다. 마늘 다지는 틀은 쪽배처럼 둥글게 휘어 움직였다. 감자껍질 까는 도구는 손잡이에 사자 머리 같은 갈기를 달아 놓았다. 음식 만드는 도구도 먹는 일만큼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만들어 먹느냐가 음식의 종류가 된다. 감자를 찌면 찐 감자, 으깨면 으깬 감자, 튀기면 감자 칩이 되지 않던가. 그 동안 열심히 먹기만 했다. 조금 더 관심이 생겼다면 그 감자가 국내산인지 수입산 인지 따져본 것이 전부다. 먹거리 자체의 품질과 식감 같은 맛의 호불호 말고 뭐가 더 필요할까. 영양 성분이 어떻고 농약의 유해성을 줄줄 읊는 일이 상식이고 세상에 참견하는 묵직한 이슈라 생각했을 뿐이다.



 감자를 먹을 만한 음식으로 만드는 게 요리다. 음식의 재료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만드는 방법은 왜 눈감고 살았을까. 찌는 데 필요한 냄비와 으깨는 데 필요한 절구는 하찮은 물건이라 여겼던 게 분명하다. 튀기는 데 적합한 기름의 종류와 온도는 누군가 조리해 줄 테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아니다. 모든 음식은 누군가 다듬고 찌거나 굽고 데쳐야 만들어지는 것임을 잊었다.



 과거의 귀족들이 직접 요리해 먹었을 리 없다. 하인이나 노예들이 음식 만드는 것은 당연했다. 지저분하고 번거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그들의 주방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귀족들의 바비큐 요리는 부드러운 고기의 맛만 필요했다. 돼지를 굽기 위해 제 살이 익을 듯한 온도를 견디며 하루 종일 꼬챙이를 돌렸던 사람은 보지 않았다.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팔자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바뀐 적 없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이 중대한 문제의 과정과 방법까지 신경 쓰게 된 것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먹는 것의 문제가 모두의 관심사로 바뀌고 손수 음식을 해 먹는 시대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원시시대 이후 음식을 만드는 방법과 조리도구의 발전이 거의 없었던 것을 떠올려 보라. 베를린에서 보았던 주방용품점은 먹는다는 것의 현재를 어떻게 대처하는지 일러준다.



 우리가 먹는 요리는 단순히 재료를 섞어 만든 게 아니다. 음식의 역사는 재료의 맛뿐만 아니라 조리기술과 도구에 좌우되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기술이 합쳐진 결과물인 것이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데 빠질 수 없는 냄비, 불, 칼, 계량도구, 갈고 섞는 도구, 포크와 숟가락, 냉장고, 부엌은 이래서 중요하다.



 저자 비 윌슨은 영국의 전문 음식작가다. 케임브리지의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정치사상사를 연구한 이력을 갖고 있다. 식탁의 미시사를 이토록 치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낸 바탕이다. 책을 읽는 내내 동조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다. 몰라도 별 지장 없을 주방도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점차 묵직한 관심의 문명사로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냄비에 채소를 삶는 그 손쉬운 일이 인류에겐 엄청난 진화였다. 삶은 채소는 치아가 없는 인간을 생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솥은 인간의 기나긴 배고픔의 역사를 증언하는 도구다. 주방에서 칼만큼 많은 일을 하는 게 있을까. 칼로 인해서 서양과 동양의 요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숟가락의 모양을 결정한 것이 영국의 왕정복고라는 대목에 오면 머리를 치게 된다. 포크와 스푼의 절충물인 스포크의 탄생은 또 어떤가.



 세상의 온갖 물건들 또한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이다. 매일 마주치는 내 집의 부엌과 걸려있는 주방용품들을 사랑하기로 했다. 밥 한 끼 먹기 위해 ‘도대체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할까’라는 건방진 생각도 접었다. 기막힌 절삭력의 세라믹 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누가 일러줄까. 별 볼일 없는 물건의 뒷이야기를 즐기는 나의 잡학 수준은 하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류의 전 역사를 뒤져 찾아낸 듯한 주방용품의 종류와 내용의 진지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만은 인용해야 한다. “부엌에는 유령들이 가득하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유령들의 창의성이 없다면 지금처럼 요리할 수 없다. 토기를 만들어 삶고 끓일 수 있게 해준 도공들, 칼을 벼린 대장장이, 전기오븐과 냉장고를 만든 기술자, 저울과 달걀 거품기를 만든 사람들….”



 텔레비전의 홈쇼핑은 별 희한한 솥단지며 과일압착기 등을 지치지도 않고 판다. 수십 년 살림을 한 마누라가 몇 번 쓰지도 않을 새 주방용품을 사들이는 걸 눈감기로 했다. 음식만큼 중요한 조리도구의 유령들을 접대해야 할 테니.



윤광준 사진작가·칼럼니스트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로 잘사는 방법에 대한 관심을 책과 강연으로 풀어내고 있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이 즐거운 삶을 이끈다는 지론은 귀담아 들을 만 하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윤광준의 생활명품』 『내가 갖고 싶은 카메라』 등을 냈다.



관련기사

▶ 영웅인가, 악당인가?…『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개혁, 개혁, 그리고…『리커창:중국 대륙 경제…』

▶ '사기'가 말하는 정치의 ABC…『사마천과의 대화』

▶ 지휘봉을 든 제왕…『마에스트로의 리허설』

▶ 반항아·섹스를 주목하라…『베스트셀러는…』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