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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영웅인가, 악당인가? 우리 눈으로 본 콜럼버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주경철 지음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36쪽, 2만원




국내에서 서양사학을 연구하기는 어렵다. 1차 사료를 접하기 어려운 탓이다. 그 척박한 풍토에서 묵직하면서도 흥미로운 저술을 꾸준히 낸 지은이의 책이기에 일단 믿음직하다. 역사에세이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히스토리아』 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가 하면 새로운 문명관을 틔워주는 『대항해 시대』로 학문적 역량을 과시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아시아행 지름길을 찾다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생애를 파고들었다.



 19세기까지는 영웅으로 대접하는 유럽의 시각이 우세했다. 신대륙 발견 400주년이 된 1892년 시카고 국제박람회는 ‘콜럼버스 박람회’로 명명되었을 정도였다. 모험정신과 창의적 시각의 상징으로 꼽히는 ‘콜럼버스의 달걀’ 일화가 만들어진 것도 그 맥락이다. (이건 근거 없는 ‘창작’이란다) 이런 인식은 20세기 들어 변했다. 인권운동과 인디언을 비롯한 중남미 원주민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콜럼버스는 노예무역, 천연두 유포 등 파괴와 약탈의 문을 연 ‘악당’으로 절하됐다.



역사학자 주경철 교수(서울대)는 콜럼버스를 대서양 항해로 이끈 것은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중세적 꿈이었다고 말한다. 목판화 ‘예수를 업고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퍼 성인’(1423). 콜럼버스는 이 성인처럼 자신이 이교도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주인공이 될 것으로 믿었다. [사진 서울대출판문화원]
 지은이는 콜럼버스를 객관적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근대를 연 선구자로 미화하는 것이나 무조건 악마화하는 것 모두 편견의 결과라며 사실적으로, 입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책은 콜럼버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심성사(心性史) 연구 형태를 취했다. 방대한 독서량, 항해일지와 보고서 등을 분석해 콜럼버스의 모험동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마디로 콜럼버스는 복합적 인물이었다. 원양항해에 나선 동기는 세속적 욕망과 기독교 소명의식이 뒤섞였고, 그 준비과정엔 당대의 첨단 지식과 성서적 해석이 어우러졌다.



 먼저 이탈리아 제노아의 직조공 집안 출신인 콜럼버스는 귀족 지위를 얻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아시아 항해에 성공한 후 스페인 국왕에게 자기 아들이 추기경이 될 수 있도록 교황에게 청탁해 달라는 편지를 쓰기도 했을 정도다. 신앙심도 불탔다. 영적(靈的) 이해력을 가졌다고 자처한 그는 성경 등을 근거로 인류 종말이 150년 남았다고 해석했다. 그리고는 진실한 신도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며 그에 앞서 ‘낙원’을 찾아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스페인 국왕이란 ‘새로운 다윗’을 보좌하는 인물로 자처했다. 이렇게 해서 당시 알카소바스 조약으로 포르투갈에 의해 아프리카 진출이 좌절된 스페인은, 콜럼버스의 제안에 따라 ‘황금의 땅’인 아시아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서진(西進)의 돛을 올렸다는 설명이다.



 콜럼버스가 인류 구원에 관한 서사시를 쓰기 위해 모은 자료집인 『예언서』를 분석하는 데 한 챕터(章)를 할애하는 등 책은 콜럼버스의 정신세계를 탐구하지만 뼈대는 사실(史實)이다. 성장 배경, 결혼 등 가족 관계, 4차례에 걸친 신대륙 항해, 말년의 고단한 생활까지 다루는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지구는 평평하며 먼 바다로 나가면 배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미신을 이겨냈다는 ‘신화’는 콜럼버스 항해 후 300년이 지난 뒤 만들어졌다든가, 원했던 금을 발견하지 못하자 국왕의 반대에도 노예무역으로 수지를 맞추자고 앞장서 제안했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그런가 하면 정규 교육을 못 받은 콜럼버스가 1만5000권의 장서를, 꼼꼼하게 주석을 붙여가며 읽었던 지식인이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대학에서도 책을 사슬로 책상에 묶어놓고 보게 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다양한 ‘첨단’ 지식을 섭렵하고서도 최종 권위는 성경에 의지하긴 했다. 6대 1의 비율로 땅이 바다보다 크다는 ‘에스라 서’를 믿고 서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빨리 갈 수 있다고 주장한 식이었다. 그렇기에 “광범위하게 읽었지만 비판적으로 읽지 못했고,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해 주는 것만 골라 읽고 자신의 편견에 어긋나는 주장은 버렸다”는 평가도 있다고 한다.



 위인전이 아닌 만큼 “금을 소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 그가 원하는 일을 다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혼을 낙원에 보낼 수도 있다”는 콜럼버스의 거슬리는 말도 등장한다. 그럼에도 지은이는 말미에 “콜럼버스는 근대 세계의 도래를 예견하고 준비한 중세의 예언자이자 활동가였다”고 평한다. 유럽 제국주의의 도래, 감자며 토마토의 세계화, 아프리카 노예제 등 세계사적 변화를 끌어낸 것을 의식한 듯하다. 콜럼버스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라는 점에서 의도가 없는 ‘선구자’가 가능한지, 결과가 과정을 어디까지 미화하는지 생각하게끔 하는 노작(勞作)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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