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책과 지식] 지휘봉을 든 제왕 … 권력의 출발점은 교감

헝가리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이반 피셔. [사진 아트북스]


마에스트로의 리허설

톰 서비스 지음

장호연 옮김, 아트북스

360쪽, 2만원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교회를 가본 적이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27년간 칸토르(합창감독)로 근무한 곳이다. 바흐는 매주 일요일과 루터교 축일에 그의 악기였던 토마스합창단과 시 악사들을 지휘해 칸타타와 수난곡을 연주했다. 그는 의욕적으로 곡을 만들고 연주했지만 삶은 늘 숨 가쁘고 고달팠다. 바흐는 기본적으로 음악노동자였다.



 그런데 바흐가 서서 지휘를 하던 자리에 서보니 토마스 칸토르가 어떤 자리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요즘의 콘서트홀 무대보다 훨씬 높은 합창단석에서 회중석과 멀리 떨어진 제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발아래 있었다. 라이프치히 시민이든 도시의 권력자든 예배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모두 칸토르를 우러러봐야 했다. 바흐는 18세기의 권력자였다.



 20세기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진짜 권력자였다. 마에스트로 토스카니니, 무당 같은 푸르트벵글러, 지휘의 황제 카랴얀, 열정의 카리스마 번스타인 같은 인물들이다. 이들은 오디오와 음반산업의 발달과 함께 정치권력을 능가하는 위세를 떨쳤다. 언급한 네 사람은 모두 죽었지만 그들의 연주는 아직까지도 난공불락이다. 토스카니니가 연주한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는 여전히 경쟁자가 없다. 푸르트벵글러의 슈만 ‘교향곡 4번’은 열악한 음질에도 너무 뜨거워 뒷걸음치게 만드는 난로와 같다.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조너선 노트. [사진 아트북스]
 책은 이런 특별한 사람들,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 톰 서비스는 음악평론가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클래식 평론가를 지냈고 BBC라디오에서 음악프로를 진행했다. 어릴 때 우연히 갔던 콘서트에서 지휘자가 만들어내는 음악을 듣고 인생행로가 결정된 사람이다. 지휘에 꽂혔던 만큼 아마추어 지휘자이기도 하다.



 직업상 아무나 볼 수 없는 리허설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대 뒤 현장에서 본 음악의 탄생’이란 부제가 붙었다. 책은 현역 지휘자 6명을 다룬다. 요즘 들어 ‘죽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이 퇴조하고 있지만 몇몇 지휘자들은 여전히 세계의 문화권력이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모습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전해준 모습과 다름이 없다. 지각대장에다 리허설이 극도로 짧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만난 발레리는 리허설이 짧은 이유를 설명한다. “공연이 열리기 전에 오케스트라의 힘을 빼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하고야 맙니다.”



 단원들도 이런 지휘자에 어울린다. 바이올린 주자는 “텔레파시로 그가 원하는 걸 안다”고 맞장구 친다. 게르기예프는 실제상황에서 단원들과의 순간적인 감응으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지휘자다.



 다뉴브 강변에서 벌어지는 리허설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저자가 지켜본 이반 피셔와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은 음악수업 같다. 오케스트라의 조율은 오보에 주자가 내는 A음에 맞춰 연주자들이 각각의 악기를 미세하게 맞추는 것인데 여기서는 지휘자가 직접 조율을 이끈다.



 현악기 주자들에게 어떤 현을 얼마의 세기로 연주할지 지시하면서. 피셔는 저자에게 말한다. “민주주의가 예술적 목적을 성취하는데 적합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단원들이 불만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타악기주자의 육성이다.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듭니다. 나처럼 똘끼 있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인 사실도요.”



 아바도는 성공적으로 베를린 필을 이끌었으나 퇴임 이후에 더욱 인상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말러의 교향곡들은 베를린 시절보다 호평을 받는다. 2010년 78세의 아바도는 교향곡 9번 연주에서 소리가 증발하듯 사라지는 마지막 부분을 연주하고는 홀을 침묵에 빠트렸다. 무려 3분이나. 무대에는 불도 꺼진 상태였다. 작곡가가 ‘죽어감’이라고 지시한 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현장을 지켜본 저자는 교향곡 연주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루체른은 세계 최고의 독주자들을 모은 짧은 역사의 단체인데도 그렇게 정밀한 순간을 빚어냈다.



 지휘라고 하면 지시·독재·권위 등을 떠올리지만 저자가 본 지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지휘자와 단원간의 교감이 더 중요하며 지휘는 결국 협력과 정치라고 결론 내린다. 토스카니니는 고함을 질렀지만 단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토마스합창단은 바흐의 무덤을 100년이 넘도록 돌봤다.



최정동 기자



관련기사

▶ 이래도 얕잡아 볼건가…세상을 바꾼 칼과 솥

▶ 영웅인가, 악당인가?…『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개혁, 개혁, 그리고…『리커창:중국 대륙 경제…』

▶ '사기'가 말하는 정치의 ABC…『사마천과의 대화』

▶ 반항아·섹스를 주목하라…『베스트셀러는…』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