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박보균 칼럼] JP 말, 3김정치의 언어

박보균
대기자
김종필(JP)의 기억력은 녹슬지 않았다. 목소리 기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격정을 드러낼 때 허스키한 음성은 그대로다. 그는 40분쯤 말했다.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이겨낸 뇌졸중의 후유증이다. 10일 국회헌정기념관, 운정(雲庭)회 창립총회 장면이다.

 운정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아호다. 운정은 구름 위 정원이다. 흰 구름 정원은 아늑하다. 바람이 거세면 먹구름이다. 풍운(風雲)은 파란과 곡절이다. 풍운은 JP의 정치적 서사(敍事)다. 그 삶은 성취와 좌절의 반복이다.

 풍운은 5·16(1961년)으로 시작한다. 35세 때다. 그는 “이제 내일모레면 구십”이라고 했다. 운정회 회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3김 시대가 있었고, 운정 선생을 빼놓고 현대사는 기록할 수 없다”고 했다.

 JP는 회고했다. 자기 확신이 깔렸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사무사(思無邪)는 터무니없는 생각, 행동을 삼가고 인간다운 도리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거다. 물정을 알게 된 때부터 그 가르침을 어긴 적이 없다”-. 그의 언어 운용 방식은 여전했다. 고사성어, 감성적 비유, 정치 비사의 은근한 회상, 세상 이치의 주입.

 3김 정치의 요체는 언어다. 말은 무기다. 말은 정곡(正鵠)을 찌른다. 적재적소의 말은 상황을 선점하게 한다. 3김은 언어의 효용과 위력을 터득했다.

 김영삼(YS) 언어는 직설이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민주화 의지 표출이다. 그의 비유는 대체로 거칠고 둔탁했다. 하지만 명쾌한 직설은 복잡하게 얽힌 사안을 단숨에 정리한다. 타이밍 갖춘 간결한 말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평정한다. 언어의 간결성이 갖는 묘미다.

 김대중(DJ) 언어는 대칭과 대비다. “서생(書生)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 그가 꼽은 정치인 자질이다. 그의 말들은 논리의 여러 단계를 거친다. 그 속에 복선이 깔렸다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말했듯 “기질 같은 완벽주의” 때문이다. 그 방식의 설득력은 정연하다.

 김종필 언어는 향기와 여운이다. 그는 프로 화가다. 그는 2001년에 탁상용 달력을 내놓았다. 그의 화폭에 담긴 풍경화들로 꾸몄다. 표지에 이런 글귀가 있다. “화심(畵心)… 순리를 거르지 않는 천심.” 언뜻 그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JP는 천하를 뒤집은 거사의 주역 아닌가. 그 후 그는 달라졌다. 그는 순리의 정치를 찾았다. 순리의 언어는 극단을 배격한다. 그는 시적 정취를 넣으려 했다.

 ‘자의반(自意半) 타의반’은 절묘하다. 박정희 시대에 JP는 여러 번 권좌에서 물러났다. 그때 그가 쓰던 어휘다. 그 말은 1인자의 심기를 거세게 건드리지 않는다. 권력 2인자의 자존심을 지켜준다. 그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정계 은퇴 뒤 포착한 어휘다. ‘허업’은 넘치는 회한이다. 하지만 경지에 오른 정치 9단의 용어다. JP의 정치는 허업이 아니다. 실업(實業)의 경제를 뒷받침했다.

 운정회에서 그는 맹자의 “무항산(無恒産)무항심(無恒心)”을 언급했다. “요샛말로, 민주주의와 자유도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으면,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유지될 수 없다. 5·16 직후 박정희 대통령께서 정확한 정치 노선을 정립했다”-. 그것은 ‘선(先) 산업화→ 후(後) 민주화’의 국가개조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 그 반대(선 민주화) 순서로 나간 다른 후진국들은 실패했다.

 3김 정치는 지역감정을 깊게 했다. 줄 세우기, 금권정치도 어두운 유산이다. 하지만 그들은 “가능성의 예술로 정치”를 추구했다. 그들은 상대편을 허접하게 자극하지 않았다. 어설픈 말싸움을 경계했다. 3김은 침묵을 활용했다. 그것은 소모적 정쟁을 잠재운다. JP의 소이부답(笑而不答·미소 짓고 답하지 않는다)은 절제의 언어다.

 2013년 한국 정치는 어설프다. 보잘것없는 말들로 가득하다.

 새누리당의 말들은 간절함이 부족하다. 말의 치열함이 떨어지고 짜임새는 허술하다. 그런 말투는 대중의 열정을 동원하지 못한다. 황우여 대표는 자주 웃는다. 그 웃음에 얹힌 말들은 공허하다.

 민주당에는 운동권 말투가 득세한다. 이념과 역사관의 표출은 치기 어리고 우격다짐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말의 속성이다. 김한길 대표는 결의를 자주 드러낸다. 그 표정은 강렬하지 못하다.

 안철수 의원의 말은 애매하다. 모호함의 반복은 신중함과 다르다. 그것은 자신부족이거나 기회주의다. 그런 말투도 정치 불신을 깊게 한다. 정치는 선택이다.

 정치가 민생을 고통스럽게 한다. 나쁜 정치는 치명적이다. 국회가 경제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 정치는 새롭게 재생해야 한다. 정치언어의 순화와 정비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보균 대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