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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들은 행복하게 일하는 엄마다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소주 몇 잔을 드신 아버지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몇 초간 정적이 흘렀다. “우리 딸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지 몰랐네”라며 아버지는 말끝을 흐리셨다. 지난달 이 지면에 썼던 ‘나는 일하는 엄마다’라는 칼럼을 읽은 아버지의 반응이었다. 나는 내심 놀랐다. 아이 키우며 일을 하는 이 고단한 직장맘의 생활을 적어도 가족 정도는 알 줄 알았다. 그런데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내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고는 아무도 그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했다. 아, 이 절대고독이여!

 사실 그 칼럼을 본 주변의 반응이 뜨거웠다. 몇몇 독자는 e메일을 보내와 동감을 표했다. 일하는 엄마라면 다들 겪는 일이다 보니 일종의 동질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없는 지인들의 반응은 좀 달랐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나 심정적으론 잘 모르겠다”고들 했다. 절대고독을 또 한 번 맛봤다.

 이 와중에 반가운 뉴스를 하나 접했다. 지난달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이 제도의 확산을 독려한 것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란 개인 생활에 맞춰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정규직 일자리를 말한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것이야말로 일하는 엄마에게 필요한 사회 제도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 제도 속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엄마를 여럿 봤다. 영국에서다. 내 친구인 조한나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런던시청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첫 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노동법에 명시된 탄력근무제도 중 ‘일자리 나누기’ 방식을 택했다. 조한나의 연구 업무를 다른 직원과 나눠서 하는 것이다. 조한나는 월, 화, 금요일에 출근하고 동료는 수, 목요일에 출근한다. 그 동료직원도 두 아이의 엄마였다. 조한나는 일주일의 3일은 아이를 유치원에 맡긴 채 일을 하고 나머지 날들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럼 월급은 어떻게 받을까? 아주 깔끔하게 조한나가 5분의3을 받고, 동료 직원이 5분의2를 가져간다. 물론 정규직 신분으로 휴가나 각종 혜택을 누린다.

 4년간 이 제도를 통해 일과 육아를 병행한 조한나는 2년 전 셋째 아이를 낳았다. 그녀는 이번에는 ‘일자리 나누기’ 대신 ‘유연근무제’를 택했다. 유연근무제는 법적 근로시간을 채우는 대신 본인이 정한 업무시간에 맡은 일을 다 처리하는 제도다. 월급은 전과 똑같다. 조한나는 근무시간을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로 정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두 아이의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유치원에 들러 셋째를 데려온다. 약 두 시간이 줄어든 업무시간 안에 일을 모두 처리하는 게 빠듯하긴 하지만 그녀는 무척 만족해하고 있다. 전문직 여성이, 아이 셋을 낳아가며, 직장에서도 손을 놓지 않고, 육아를 주도하고 있는 셈이다.

 조한나뿐만 아니라 영국의 직장맘들은 노동법에 적시된 각종 탄력근무제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어떤 이는 일주일 중 며칠만 직장에 나와 일주일 치 업무를 한꺼번에 처리한다. 어떤 이는 업무의 시작과 마침 시간을 따로 지정하는 ‘시차 출근제’를 쓴다. 직장 동료나 상사는 이들을 경쟁력이 없다고 폄하하거나 불편한 시선으로 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직장맘이 그렇게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업무에 파격을 줘도 회사가 잘 굴러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의 매뉴얼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하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박람회에서 “여성들이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통해 가정을 잘 돌보고 자아실현도 할 수 있어야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고 역설했다. 100퍼센트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제도가 우리나라에 잘 정착할지는 미지수다. 상사 눈치 보고 퇴근해야 하는 회사 분위기도 그렇고, 본인이 맡은 업무를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도 아직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 있는 여성을 사회에서 끌어안기 위해서는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아이가 눈에 밟혀 이 땅의 일하는 여성들이 사표를 쓰는 국가적 손실을 멈춰주길 바란다. 우리는 정말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싶다!

박지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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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