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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베팅을 요구하기 전에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우리 부모님은 늘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미국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면 언젠가 부통령은 될 수 있을 거라고….”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지난해 5월 오하이오주 유세장에서 한 말이다. 폭소가 ‘빵’ 터졌음은 물론이다. 대통령이 아니라 차라리 개그맨이 되기를 원했다면 어땠을까. 데이비드 레터맨을 능가하는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이 되지 않았을까.

 지난주 연세대 연설에서 바이든은 타고난 재담 능력을 과시했다. 한·미 관계를 주제로 약 40분간 연설하는 동안 열한 번의 폭소가 터졌다. 박수를 유도하는 기술도 노련했다. “우리는 한반도의 영구분단이란 개념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뒤 “(이 대목에선) 박수를 쳐도 좋다”고 덧붙이는 식이다. 그는 여덟 번 박수를 받았다.

 그는 에두르지 않는 직설 화법으로 유명하다. 원고에 없는 애드리브를 마구 쏟아내는 바람에 말실수가 잦다. “바이든은 프롬프터를 똑바로 읽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조언 아닌 조언을 했을 정도다. 지난주 한·중·일 3국 순방에서도 그는 본능을 억누르지 못했다. 베이징에서는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대사관 앞에 줄을 선 중국 학생들에게 “완전하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옛것을 깨부수는 것”이라며 ‘혁명’을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일본의 한 인터넷 기업을 방문해서는 여직원에게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을 남편이 좋아하느냐”고 물었다가 ‘성차별주의자’로 찍혀 몰매를 맞았다.

 한국에서는 묵직한 ‘돌직구’를 선보였다. 청와대를 방문한 그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덕담을 나누는 공개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It ha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중학생-요즘엔 초등학생-수준의 영어 실력만 돼도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 또는 “미국이 지는 쪽에 거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로 해석할 수밖에 없는 문장이다. 바이든을 수행한 미국 측 통역도 그렇게 옮겼다. 풀기자를 통해 대화 내용을 전해 들은 일부 국내 언론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을 택할지 잘 선택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받아들이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한·미 양국 정부는 긴급 진화에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재균형 의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 만큼 “재균형 정책에 대한 미국의 추진 의지나 능력이 약화될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란 뜻으로 해석해야 옳다는 것이다. 설마 일국의 대통령 앞에서 그런 무례한 발언을 했겠느냐며 상식선에서 판단해 달라는 부탁도 했고, 어느 미국 언론도 그런 뜻으로 보도하진 않았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영 찜찜하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미국인 몇 명에게 물었더니 부통령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은 안 쓰는 게 맞다며 실언을 빙자해 본심을 밝힌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비록 에피소드일망정 바이든의 ‘베팅’ 발언은 훗날 한국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정부는 균형외교를 내세워 미·중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미국은 확실하게 미국과 일본 쪽에 줄을 서기를 바라고 있다. 중국은 중국대로 박근혜정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어느 쪽에도 ‘풀 베팅’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나누고 쪼개서 걸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 손잡고 일본에 맞서고 있다고 판단한다. 한·미·일 3각 동맹에 목을 매는 워싱턴 입장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애처로운 구애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태도에 짜증이 날지 모른다. 한·중 전략대화가 군사 분야까지 확대되는 상황도 우려스러울 것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도 중국의 눈치를 보다 겨우 막판에야 합류했다. 한·중 밀착을 더 이상 방치하면 곤란하다는 것이 워싱턴의 시각일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 바이든은 “미국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며 아시아·태평양으로의 재균형 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그렇다면 재균형 의지를 조용히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 일본과 힘을 합쳐 근육질을 자랑하는 공세적 재균형이 아니라 이란과 시리아에서처럼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핵문제 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평화적 재균형 말이다. 정작 할 일은 안 하면서 할 수 없는 선택을 한국에 강요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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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