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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에 등돌린 인도 민심 … 40년 집권 간디 가문 위기

인도 암아드미당(AAP) 지지자들이 9일 뉴델리에서 당의 상징인 빗자루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지난해 설립된 암아드미당은 델리 하원의원 선거에서 70석 중 28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뉴델리 신화=뉴시스]

인도의 케네디가에 비유되는 정치명문가 ‘네루-간디’ 가문도 민중의 분노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9일 개표가 완료된 5개 주 하원 선거에서 소냐 간디가 이끄는 집권 국민의회당(INC)은 참패했다. 총선을 불과 5개월 정도 앞두고 수십 년 동안 인도를 이끌어온 이들이 받아든 참담한 성적표는 독립 이후 6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인도 정치 지형의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은 델리와 라자스탄, 마디아프라데시, 차티스가르주 등 네 지역에서 하원의원 590석을 놓고 각 정당이 경합을 벌인 결과 제1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이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집권당은 그나마 미조람에서 40석 중 28석을 건져 체면치레만 겨우 했다.

 델리 등 주요 지역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내년 총선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전초전 격으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만큼 집권당의 타격도 클 수밖에 없었다. 소냐는 개표 결과가 발표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와 총선은 유권자들이 기대하는 리더십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며 애써 이번 결과의 의미를 축소하려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집권당의 차기 총리 후보였던 소냐의 아들 라훌은 당장 발등에 불똥이 떨어졌다. 그는 인도 초대 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의 증손자이자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손자다. 아버지는 라지브 간디 전 총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0년 동안 간디 가문의 일원이 인도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왔다”며 라훌이 간디 집안의 네 번째 총리 배출이라는 사명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었다.

내년 총선 전초전 … ‘라훌 총리’ 구상 흔들

 하지만 이번 선거운동 총책임을 맡았던 그가 보여준 능력은 기대 이하였다는 것이 인도 언론들의 공통된 평가다. 기존의 ‘선심성 복지 공약’을 되풀이할 뿐 유권자들에게 개혁과 변화의 믿음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앞서 수십억 달러를 들여 국민의 70%에게 곡물을 거의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보조금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집권당의 관례적인 공약들이 더 이상 젊은 층과 도시 거주 유권자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집권당은 국민이 진정 원하는 때에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선거 직후 당 내부에서 라훌을 총리 후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신분 및 계층에 따른 차별이 뿌리 깊은 인도에서 정치 명가 간디 가문의 위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도 언론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카스트 제도에 대한 도전”으로까지 해석하는 이유다.

 민심이 등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 위기 등으로 극심해진 생활고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식재료로 꼽히는 양파 가격은 지난 한 해 278% 올랐다. 이런 경제 불안정성의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부패한 정부였다. 자원 개발 등과 관련된 이권을 둘러싼 정치권의 뇌물수수 스캔들이 연일 보도되고, 정부의 지지부진한 경제개혁 조치로 외국인투자자들은 발길을 돌렸다. 설상가상으로 여대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으로 부각된 정부의 무능은 유권자의 ‘심판 심리’에 부채질을 했다. 인도 뉴스 채널 NDTV는 이번 선거에서 여성의 투표율은 72%로 이례적으로 높았다고 전했다.

경제통이 이끄는 제1 야당 4개 주 압승

 때맞춰 등장한 ‘대안 세력’ 역시 이번 선거의 판도를 크게 흔들었다. 첫 번째 다크호스는 BJP의 차기 총리 후보인 나렌드라 모디다. 2001년 구자라트주 장관(주지사에 해당)으로 선출된 뒤 지금까지 연임에 성공해온 모디는 과감한 ‘기업 프렌들리’ 정책으로 지역 경제성장을 견인해 왔다. 다국적기업들이 구자라트로 몰려들면서 10%대 고성장을 달성했다. 10대 시절 버스 정류장에서 형과 함께 차를 팔며 생계를 꾸리던 가난한 소년이 이뤄낸 기적은 ‘경제 지도자’를 바라는 유권자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강경 힌두 민족주의자인 그가 2002년 무슬림 집단학살에 관여했다는 의혹조차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모디와 BJP에 대한 기대감은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9일 루피화 가치는 외환위기 재연까지 언급됐던 지난 8월 이후 최고치로 올라 달러당 60.85루피를 기록했다. 이날 뭄바이 증시의 센섹스 지수는 전날보다 1.57% 상승했다.

 하지만 모디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은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창당한 지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은 암아드미당(AAP)의 아르빈드 케즈리왈 대표다. 당명인 암아드미는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다. 암아드미당의 상징인 빗자루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정치권의 부패를 모두 쓸어버리겠다는 약속만을 내세웠다. 케즈리왈은 국세청 등에서 근무하다 썩을 대로 썩은 관료사회에 염증을 느껴 시민운동에 투신한 인물이다. 2년 전 인도 전역을 휩쓴 반부패 운동에 동참한 것을 계기로 암아드미당을 만들었다.

 이들이 처음 후보를 냈을 때만 해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취급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기득권층에 염증을 느낀 ‘보통 사람들’의 힘은 막강했다. 해외에서까지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다.

1년 된 ‘보통사람당’ 부패 청소 내세워 돌풍

이번 선거에서 델리에만 후보를 낸 암아드미당은 전체 70석 가운데 무려 28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BJP(32석)에 이어 둘째로 많은 의석을 획득했고, 8석을 얻는 데 그친 집권당을 가뿐하게 눌러 15년 동안 델리에서 주 장관을 역임했던 정치 거물 셰일라 디크시트를 물러나게 했다. 양당이 독식했던 델리에서 과반을 얻은 정당이 없어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고, 이제 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빗자루 탄 사나이’ 케즈리왈이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이제 케즈리왈은 반부패 정책을 실제로 어떻게 구현할지 현실 정치의 시험을 치르게 됐다”고 보도했다.

유지혜·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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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