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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때때로 익히라던 공자 … 그밖에 뭐가 있나

황병기 명인은 “가야금 탈 때는 몸에 힘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가수 조용필도, 판소리꾼 안숙선도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감정부터 빼야 한다고. 그럼 힘이 손끝에 떨어진다. 그걸 ‘혼이 손끝에 떨어졌다’고 표현한다. 가야금이 진짜 잘 될 적에는 나 자신이 그냥 신의 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가 제일 좋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5일 서울 북아현동 자택에서 황병기(77·이화여대 한국음악학 명예교수) 명인을 만났다. 방에는 빙 둘러 가야금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와 현(絃), 그걸 켜고, 누르고, 퉁기며 그는 희로애락을 연주한다. 거기에 삶이 있다. 그가 퉁기는 건 가야금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물었다. 그가 보는 행복은 어떤 걸까.

 길 없는 길-. 황병기 명인은 그 길을 걸어 왔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악에 ‘창작’이란 단어는 없었다. 예부터 내려오는 악보만 되풀이해서 연주할 뿐이었다. 그게 참 못마땅했다.

 “미술이나 문학에선 계속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 국악은 안 그랬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통의 의미를 되물었다. “전통이 뭔가. 옛 것을 이어받으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만드는 거다. 재창조해야 한다. 그게 전통이다. 옛 것만 전수하면 그게 골동품이지.”

 황 명인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학교에 다니면서도 가야금을 놓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국악과가 생겼다. 그는 강사로 출강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땅, 창작 국악의 문을 열었다. 선배도 없고, 스승도 없고, 장르에 대한 명칭도 없었다. 작품명은 ‘숲’. 굉장한 파격이었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나.

 “서양 현대음악이 내게 충격을 줬다.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그랬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 차례를 지낸 뒤 가장 먼저 이 음악을 듣는다. 올해도 그랬고, 내년도 그럴 거다.”

 ‘봄의 제전’은 1913년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초연됐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파격이었고, 청중에겐 혼돈이었다. 사람들은 물건을 마구 집어던 졌고, 한쪽에선 “브라보!”를 외쳤다. 조소와 야유가 빗발쳤고, 일부 찬사도 터졌다. 황 명인은 그걸 “서양 음악 사상 최대의 스캔들”이라고 불렀다.

 -국악인으로서 당신에겐 무엇이 파격이었나.

 “이 곡은 서양 고전음악의 정신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음악의 원시성을 추구했다. 음악의 원천으로 내려가려 했다.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내 귀가 열렸다.”

 황 명인의 첫 작품 ‘숲’도 그랬다. 기존 국악의 양식을 좇지 않았다. ‘숲’은 서양 음악과도 달랐고, 전통 국악과도 달랐다. 기존의 흐름에 대한 파괴가 창조의 발판이 됐다. 이 때문에 “작품 하나마다 독자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봄의 제전’에 대해 “20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표현했다. “스트라빈스키를 듣고서 동시대 서양 음악을 훑기 시작했다. 60년대였다. 친구였던 백남준과 함께 서양 작곡가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기네 음악을 흉내 내지 말라고. 독창적인 걸 하라고. 나는 그게 아주 인상 깊었다. 결국 음악에서 ‘나’를 찾으라는 메시지였다.”

 황 명인은 음악을 통해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우리가 말하는 전통 국악이란 조선의 음악이다. 그 이전은 악보가 없다.” 그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전통 이전인 고려와 신라. 우리 음악의 원시적 근원에 닿고 싶었다.

 “미술은 유형(有形) 문화재다. 그걸 통해서는 신라나 고려를 만날 수 있다. 그림이나 불상을 통해 그 시대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음악은 다르다. 무형(無形)의 문화재다. 우리는 신라의 음악, 고려의 음악이 어땠는지 알 수가 없다. 그건 서양 음악도 마찬가지다.”

 -서양 음악은 어떤가.

 “서양은 그리스, 로마를 거쳐 중세로 내려온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의 음악은 전혀 모른다. 서양 음악사를 보면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부터 시작한다. 실은 그게 동양에서 건너간 거다. 중동 지역의 민요 음계를 가져왔다.”

 음악이란 장르에서 신라와 고려는 돌아갈 수 없는 땅이다. 사라진 음악, 사라진 시대다. 황 명인은 74년에 ‘침향무(沈香舞)’를 내놓았다. 가야금을 통해 신라로 돌아가는 음악이었다.

 -지도도 없고, 계단도 없다. 어떻게 신라로 돌아갔나.

 “마음이 간절하면 길이 생긴다. 돌아가는 방법이 있더라. 신라시대의 유명한 불상이 있지 않나. 반가사유상도 있고, 석굴암 불상도 있다. 가령 반가사유상을 보자. 조각상은 움직이는 모습의 한 찰나를 포착한 거다. 다시 말해 움직이는 사람의 한 순간을 잡은 거다.”

 -그 순간에서 뭘 찾을 수 있나.

 “멈추어 있는 조각상을 보면 이전의 움직임과 이후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 그게 신라인의 움직임이다. 또 저런 움직임에는 어떤 음악이 있어야 할까. 결국 신라 시대의 미술을 통해 신라의 음악을 찾아내는 거다.”

 ‘침향무’를 구상할 때 그는 경주로 내려갔다. “먼저 신라인의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들의 심미감을 지녀야 했다. 밤에는 별을 봤다. 경주에서 바라보는 별, 그건 1000년 전 신라인이 봤던 별과 똑같으니까.” 왕릉과 고분들 사이도 거닐었다. 발을 떼고, 발을 디디며 신라의 무드를 느꼈다. 신라의 소리도 들었다. 직접 가서 신라 때 만든 에밀레종도 쳐봤다.

 -어떤 소리였나.

 “기가 막혔다. 전세계 종소리 중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게 에밀레종 소리가 아닐까 싶다. 종에 새겨져 있다. ‘일승원음(一乘圓音)’. 진짜 큰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으니, 소리를 한 번 들으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한국전쟁 와중에 가야금을 처음 배웠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 옆에 고전무용실이 있었다. 우연히 친구 따라갔다가 가야금을 봤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역사 시간에 가야금에 대해선 배웠다. 나는 삼국시대에 있다가 이미 소실된 악기인 줄 알았다. 전설 속의 악기 같았다. 소리를 들은 적도, 사진을 본 적도 없었다.”

 그는 바로 가야금을 배웠다. 부모는 반대했다. 1년 뒤에 어머니는 군산을 거쳐 전주까지 가서 가야금을 사왔다. 그날은 자다 깨서 밤이 새도록 “애인을 보듯이” 방안의 가야금을 바라봤다. 고3 때는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사람들이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어영부영 보내는 시간이 있다. 그런 시간을 뽑아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궁중이나 상류층에서 연주되던 정악과 서민의 가락인 민속악(산조)을 모두 섭렵했다. 그가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정악이면 정악, 민속악이면 민속악. 둘 중 하나만 하던 시절이었다. “정악은 느리고, 단순하고, 명상적이다. 그림으로 따지자면 ‘문인화(文人畵)’다. 반면 민속악은 감정적이다. 희로애락의 물결치는 감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양쪽을 다 익힌 그는 가야금으로 창작 국악의 새장을 열었다. 지금껏 다섯 장의 음반을 냈다. 모두 성공적이었다. 요즘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황 명인은 “세상을 살다 보면 가장 기쁠 때가 뭔가를 배울 때더라. 그게 내겐 행복이다. 삶에서 딴 게 뭐가 있나. 나는 공자의 행복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논어』의 한 대목도 꼽았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열심히’가 아니라 ‘때때로’라는 말이 참 좋다. 의무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아니다. 네가 할 수 있을 때, 네가 하고 싶을 때 하라는 말이다.”

 그는 가야금도 때때로 익혔다. 60년째다. 때때로의 힘은 깊고 강하다. 그를 ‘명인’의 반열에 올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때때로가 왜 강할까. 거기에는 우러나서 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그가 쥔 행복의 열쇠였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황병기 명인=1936년 서울 출생.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던 해 신설된 동 대학 국악과에 4년간 출강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역임. 현재 이화여대 한국음악학 명예교수이자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 음반 ‘침향무’ ‘비단길’ ‘미궁’ ‘춘설’ ‘달하 노피곰’ 등. 저서 『논어 백 가락』 『깊은 밤, 그 가야금 소리』 『오동 천년, 탄금 60년』 등.

황병기의 추천서 3권

1999년 황병기 명인은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비참한 상태였다. 밤에 병실 창 밖으로 시계탑이 보였다. 악상이 떠올랐다. ‘탁, 탁, 탁, 탁’하는 시계 소리와 소녀들이 좋아하는 오르골 소리가 겹쳤다. 비참한 상황에 처할수록 동경하는 삶의 순수. 그는 링거를 꽂은 채 곡을 썼다. “간절함이 일 때 악상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래도 작곡가에겐 막다른 벽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해도 돌파구가 떠오르지 않을 때 말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까. 그는 “그건 간절함이 덜하기 때문이다. 정말 간절하면 벽을 뚫을 수 있다”고 답했다. 퇴원을 한 뒤 그는 한동안 기저귀를 차야 했다. 그런 처지에서 전국을 돌며 연주회를 했다. 이 또한 그의 간절함이었다.

◆노자와 융(이부영 지음, 한길사)=신경정신과 의사가 노자의 『도덕경』을 풀어낸다. 정신분석학 대가인 칼 융의 무의식이론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융의 입장에서 노자를, 노자의 입장에서 융을 돌아본다.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의 만남.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승효상 지음, 컬처그라퍼)=이른바 ‘빈자의 미학’으로 유명한 건축가 승효상이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건축물을 보고, 거기에 담긴 삶과 사유를 읽어낸다. 건축 공부는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이고, 건축은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붓다의 치명적 농담(한형조 지음, 문학동네)=철학교수인 저자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불교경전 『금강경』 해설서다. 불교의 정수를 쉽고 깊이 있게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사실은 자아의 구성물임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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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