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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왜 '붉은 벌레'가 됐을까

캄보디아 작가 아니다 요유 알리는 종교 문제로 고뇌하는 자신을 붉은 벌레로 묘사했다. 왼쪽 위 붉은 몸통에서 솟아오른 얼굴이 작가 자신이다. [사진 한-아세안센터]

여동생이 오빠 작업에 모델로 나선 줄 알았다. 인도네시아 작가 크리스나 무르티(56)의 ‘데(De)-컬렉션’에 등장하는 여성이 너무 예뻐서 물었더니 직접 분장을 하고 찍은 셀프 카메라였다.

 “서구에서 날아온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영웅 아이콘이 인도네시아의 전통 문화를 밀어내버렸어요. 바다로부터 뭍에 오른 다양한 문명의 신화가 사라지고 막강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우리 몸을 점령한 겁니다. 내가 모델이 되어 나부터 비판하자는 뜻을 담았죠.”

크리스나 무르티
 ‘한-아세안 현대 미디어 아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네모에서 만난 무르티는 “한국도 비슷한 상황 아니냐”고 되물었다.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한 ‘일곱 마리의 사자’란 작품에서 인도네시아의 정치 현실을 풍자했던 작가답게 그는 한국 사회 변화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제가 한국을 알게 된 건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 덕이었지요. 그 분에게서 큰 영감을 얻었어요. 현대미술사에서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려준 거장이죠. TV라는 새 매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 정신을 제 작업에도 불어넣고 싶습니다.”

 한-아세안센터(사무총장 정해문)가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국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이 손꼽는 현대사진작가 18명의 작품으로 각기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화 현상을 돌아보는 자리다.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을 방문해 작가를 선정한 신수진 연세대 연구교수는 제목을 ‘시차: 변화하는 풍경, 방랑하는 별’이라고 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들 나라에서 과거와 현재, 동양적 정신과 서양적 외형, 전통의 계승과 미래적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살폈어요. 근·현대사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뒤틀린 사람들 중에서도 예술가는 가장 민감하며 방황하는 고독한 별이죠.”

 캄보디아의 여성 작가 아니다 요유 알리는 자신을 ‘불자 벌레(Buddhist Bug)’에 비유했다. 이슬람이 지배하는 풍토에서 자랐지만 불교에 끌리는 마음을 스스로 거대한 붉은 벌레로 변신하는 행위예술로 표현했다.

 사진기자 출신 태이 캐이친은 수십 년 살아왔고, 살아가야 할 싱가포르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옆으로 길쭉한 파노라마 사진에 담아 드러냈다. 객관적 보도를 위해 찍어야 했던 과거의 사진 대신 이제는 제 감정에 충실한 현재와 미래의 사진을 포착한다. 가로로 긴 사진의 공백 속에는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많은 이야기가 한숨처럼 담겨 있다.

 필리핀 작가 마리아노 몬테리바노는 낚시하는 남자의 뒷모습과 자동차 경주의 소리를 접붙인 동영상 작품으로 미친 듯 달려 나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소외된 인간을 응시한다. 원시 시대부터 있어왔을 낚시와 자본집약적 스포츠의 하나인 F1 경주의 조합은 기묘하면서도 착잡한 상념을 자아낸다.

 신수진 교수는 “서로 닮은 듯 다른 역사와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이 이 전시에서 발견한 마음의 빛으로 모두들 이해하고 돕는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6일까지 블루스퀘어 네모갤러리에 이어 13일까지 서울시청사 시민청 시민플라자에서 열린다. 19일부터 2014년 1월 10일까지 하남문화예술회관 전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02-2287-113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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